열매
마당에 열매가 열릴 때마다 바구니에 열매를 한아름 담았다.
한아름 담은 열매를 골목에 내놓으면 필요한 이들이 그 열매를 가지고 갔다.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열매 바구니를 모두 가져가지 않고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갔다. (고 난 믿는다.)
열매는 모두 붉은 계열의 열매 들이었다.
사과, 체리, 산수유, 고추와 같이 붉은 계열들의 열매
다양한 붉은 열매들이 바구니에 가득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런데 꿈의 끝의 어느 날은 소출이 시원찮았다.
다 따도 마당의 열매들은 몇 되지 않았고 바구니의 바닥 부분을 조금 채울 뿐이었다. 하지만 종류는 여전히 다양했다.
‘이번엔 열매가 별로 없네.’라고 생각했다. 아쉬웠다.
그렇지만 난 그날도 어김없이 열매를 담은 바구니를 길가에 내놓았다.
그것이 몇일 전 꾼 꿈의 한 장면이다.
그간 물, 열매와 같이 먹을 것
즉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 꿈에 나온다.
열매를 바구니에 담는 꿈을 꾸기 이틀 전에는
하얗고 곱게 빚어진 도자기 주전자에 물이 가득 있었다.
물 주전자는 뚜껑도 있었지만 난 뚜껑으로 주전자를 채우지 않고
주전자 옆 금인지 은인지로 된 무늬가 새겨진 동그란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돌려 주전자의 물을 채웠다.
물을 채우기 위해 열어 본 주전자는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런데도 또 채울 수 있었다. 신기했다.
더 채우면 총량이 늘어나 주전자가 넘쳐야 하지만
더 채워도 총량이 늘어나지 않았다. 즉, 넘치지 않았다.
그리고 따라내도 총량이 줄지 않았다. 즉, 부족하지 않았다.
신기했다. 그건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난 그 뽀얗고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는 가득 채워진 주전자의 물을 앞에 놓여진 뽀얀 잔들에 물을 따라줬다.
사람도 말도 나오지 않았고,
주전자를 잡고 따르는 손과 잔들만이 나왔다.
그런데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꿈속의 그 주전자가 내 것이고
잔은 내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물을 나누는 꿈을 꾸더니 이틀만에 열매를 나누는 꿈을 꾼 것이다.
꿈을 꾸고 생각했다.
꿈의 끝자락에선 열매가 적었다는 것이 나의 촛점 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열매가 적음에도 그것을 내놓았다는 것이 나의 촛점으로 변화 되었다.
그날 꿈을 생각하고 바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은
나란 사람의 삶에서 나오는 소출이 많건 적건 내가 움켜쥐지 않고 그걸 내놓을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그렇게 살고있다.
때론 넉넉치 않음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것이 맞는 방향인가? 싶은 현실적인 고민이 잠시 들때도 있다.
그럴때 나의 머리는 산술적으로 계산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그 산술적 계산을 넘어서는 선택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 삶이 고운 주전자 속 물처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늘 부족했다. 어딘가는 부족했다.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선 어느 한 영역도 넘침은 없었다.
그러나 정서적 풍요에 있어서는 넘침이었다. 결과적으론 그러했다.
오늘도 난 또 그렇게 열매에 관한 꿈을 꿨다.
마지막 꿈이 열매의 양이 적음에 관한 것이었는데 마치 그것에 대해 대답이라도 하는 듯한 꿈이었다.
오늘의 꿈속에는 귤이 나왔다.
한 알맹이였다.
고작 한알맹이지만 화면 가득 그 알맹이가 굉장히 가까이 보였다.
알맹이 속 알알이 한 입자들이 정말 크게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저 감탄하듯 바라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채로운 색이었다.
주황빛, 노란빛, 보라빛,
그런데 알알이 입자들의 특성이 투명하게 빛이나 영롱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보석과도 같았다.
감탄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봤다.
작은 알알이의 한 입자가 나보다 크게 꿈의 화면을 구성하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꿈은 몇일 전에 적음에 대해 “봐봐. 적어도 결코 작은게 아니였어.”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나의 눈에 작고 적음이라 생각 된 그 안에 이렇게 영롱한 아름다움이 각기 작은 입자마다 커다랗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출의 작고 적음이 중요한게 아니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소출의 작고 적음과 관계 없이 바구니안에 담겨진 생명의 가치 같은 것은 다른 부분이라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지 않는 영역, 혹은 계산되지 않는 영역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려 노력했으니 잘했다고 앞으로도 그런 너를 응원하노니 위축되지 말라고 누군가 내게 대답해 주는 거 같다.
그 누군가가 내게는 하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