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20210.목 / 요 12:1-11
> 요약
유월절 엿새 전 예수님은 나사로가 있는 곳에 가신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는다. 이를 본 유다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냐고 나무란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 뿐 아닌 나사로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오고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도 죽이려 모의한다.
> 묵상
부활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결정적인 열매인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다는 것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야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해도 나사로는 위협도 되지 않는데 그 존재를 이렇게까지 지우고 싶어 한다는게 너무 폭력적이다. 그들의 원함대로 예수님은 결국 죽게 될 것이고 마리아의 행동은 일종의 미리하는 장례의식이 된다.
이 본문도 이전의 본문도 마리아와 마르다가 참 많이 비교가 되는데, 난 성경이 마르다를 나무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아가 가장 아끼는 향유를 예수님께 드렸다면 마르다의 섬김과 수고가 있었기에 이들이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가사노동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고 값이 싼 것도 아니다. 물론 마르다가 습관적으로 성향상 그러한 일을 했다는게 과연 예수님을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습관적이건 어떻건 간에 그녀의 행동이 있기에 이들이 함께 대화를 나눌 쾌적한 환경이 제공되었을 것이다.
난 마르다는 마르다의 모습대로 예수님을 섬겼다고 생각한다. 마르다 또한 자신의 가족인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았고 예수님을 믿었을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녀가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에 한계는 있었지만 나사로가 죽자 예수님과 소통하며 ‘예수님이 있었다면’하고 가정하며 소통하는 것도 마르다이고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11:22)’ 것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해하고 믿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 모두가 다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여겨지고 본문의 구성은 말씀을 듣지 않는 마르다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 곁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나사로, 향유를 붓는 마리아, 그리고 손발로 섬기는 마르다와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데 마르다가 뭔가 늘 해석할 때 홀대 받아서 안타깝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르느냐가 아니라 따르고 있는 마음의 중심이 무엇인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본다. 그 예가 본문의 가롯유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예수님의 제자고 행동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중심엔 결국엔 (그가 늘 그랬는지는 알 수 없기에) 다른 선택이 되어진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가 결국엔 예수님의 삶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제사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들이 생각해 온것과 다르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고 그리고 결국엔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이려 한다. 우리의 출발점은 어디이고 그로인한 방향성은 어디인가가 중요하다.
마르다가 섬기면서 말씀을 듣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씀을 기억하며 삶에서 살아내려 부단히 애썼을지도 모를일이라 생각하는데 왜 이 무리 중 유독 마르다만 늘 홀대되는 해석이 되는지 안타깝다.
> 삶
1. 예수님을 따르는 다양한 모습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것이라는 걸 잊지 않도
2. 나의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내 삶의 전반에 미치는 예수님의 삶과 방식 또한 최선을 다 할 수 있길 기도 (일단 오늘은 가계부 정리하고 홈스쿨 프로젝트 진행하자)
> 기도
하나님, 부활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나사로까지 죽이려 한다는 게 정말 잔인하고 끔찍합니다.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의 모든 요인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그들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을 어떻게 할 순 없어도 예수님의 능력을 확실하게 증거하는 나사로는 눈에 걸렸겠지요. 때로는 우리가 하는 판단이 무언가의 좋고 싫음으로 분별력을 잃을 때가 참 많은 거 같습니다. 주님, 내가 무언가가 싫다고 혹은 좋다고 다른 부분까지 싸잡아 묶어 판단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나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그들에게 반응하셨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게 하시고 마리아와 같은 헌신과 마르다 같은 섬김과 나사로 같은 교제가 제 안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필요할 때에 필요에 맞게 쓰임받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