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모르겠다.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시간을 지나야만 하나?

by 김혜진


220307.달


막내 별에가 유치원에 갔다. 별에가 유치원에 다니면 남은 시간에 난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나 생각은 생각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거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건 계속 생각안에 있게 된다.


지난 첫 주엔 별에가 유치원에 가고 나의 일상은 거의 비슷했다.

추가되는 것이라곤 아이를 등원시키며 매일 운동을 하는 것 외엔 여전히 난 아침루틴에 맞춰 큐티를 했고,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렸으며 그쯤 되면 점심이 되니 홈스쿨을 하고 있는 숲에, 뜰에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서 설거지를 한 후에는 읽고 있는 책을 읽고 작고 소소한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어있다.


신기했다.


아이가 있건 없건 난 하는 일 없이 아이를 맞이한다는게 신기했다.

마치 아이가 없다면 우주라도 정복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우주정복은 커녕 특별히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작고 소소한 살림들과 독서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책을 읽는걸 좋아하지만 책 읽는 것 외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쓸거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나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번주에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매일 매일 하고싶은 무언가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난관에 부딪혔다


‘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그건 바로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왠지 이 시간에 그림이라도 그려야 할 거 같고, 작업도 해야 할 거 같고, 글도 써야 할 거 같고

그렇게 왠지 모르게 해야할 거 같은 것들이 있었을 뿐이지 내가 정말 그것들을 좋아하나? 그건 모르겠다.

차라리 이럴 때는 직업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는 편이 나을거 같다 싶다.

이것이 일이 될 때까지 스스로 해내가야 하는 시간들을 난 잘 꾸리지 못하는 거 같다.


그래서 오늘은 어찌되었던 뭐라도 해보자 싶어 종이와 펜을 찾아 내 책상에 앉았다.

따뜻한 홍차도 가져와서 앉았다.

그렇지만 도무지 난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내 아이디어 수첩을 뒤적였다.

이곳에 하고 싶은 것들이 분명 적혀 있는데 막상 그걸 하려니 하고싶지 않았다. 이상도 하지.

그당시에 하고 싶었던게 내가 늘 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보다.

그리고 아이디어 수첩에 기록된 것들을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 낸단 말인가?

그 과정들을 겪으며 몰입해 가야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시작하기가 싫다.


그래서 시작한게 결국엔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 동력을 느끼는게 선물 이었으니까. .


오랜만에 한 작업이니 몰입하는데도 오래 걸렸고, 기존에 작업 방식대로 진행하며 몰입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게 작업할 수 있는거야?

난 그것조차 모르겠다.


작년에 전시회를 한번 마쳐 놓고 보니 분명히 알겠는건 단 한가지 뿐이었다.

그건 바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 드는 작품, 아닌 작품.’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어떤 작품은 ‘내가 왜 이걸 그렇게 힘들게 해놓고 고작 이렇게 밖에 못했으며 왜 이딴식으로 한거야?’란 생각이 든다. 액자를 맞춘 값이 아까울 정도였고, 내 그림은 저 액자의 가치 만도 못한 거 같아서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가 한 작업인데 어떤 건 짜증나게 싫다는게 놀랍다.

그당시는 그렇게 싫지 않았는데 지금은 싫다. 후에 싫을 줄 알았다면 절대 전시에 올리지 않았을텐데 당시는 몰랐다는 게 안타깝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봐버렸지 뭐.


그러니 모를 일이었다.


그냥 해보는 수밖에 없는 거다.

시작을 해봐야 과정이 막히건 풀리건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는 거고, 시작을 해봐야 끝을 낼 수 있는 거며 끝이 나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봐야 나는 뭐가 싫고 좋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가로막아 버리고 정말 하고싶지 않은 채로 있으면 난 영영 하고 싶지 않은 것들로 그것들을 치부해 버리게 될까?


분명 몇 몇 작품들은 ‘하길 잘했어. 이게 이렇게 풀릴 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이 지나고 두고두고 봐도 좋다. 정말 너무 좋다.

내가 했지만 이렇게 좋을 수가 없지. 싶은게 있다.

어떤 건 이미 판매되어 버린 건데 돈을 돌려주고서라도 가져오고 싶은 작품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 작품은 정말 ‘하,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시작했던 거다.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 작업을 제안 받았을 때

‘도대체 어떻게 할까? 도무지 모르겠네.’ 하면서 시작했던 거다.

기억해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보면 볼수록 너무 좋았던 그 작품은 바로 이전에 계절마다 계간지 표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하기 싫어도 계획하고 시도하고 결과물을 받아본 과정을 1년 넘게 경험한 후 2년째의 작업들 이었다.

앞의 1년의 작업들은 의도는 좋았지만. 막상 후에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부족했다고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데 2년째의 작업들은 그 해 전체가 시리즈가 되게 그렸었는데 처음엔 그냥 ‘흠, 귀엽고 사랑스럽네.’ 정도의 감정이었고 원화를 액자에 맞춰 집에 걸어 두면서 몇 년을 봤는데 볼수록 너무 좋았다.

보고 있으면 평안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신기했다.

우리 가족은 처음에는 ‘거기 그림을 걸었네?’의 반응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이 그림 말야. 볼수록 좋은 거 같아. 마음이 편안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차이를 모르겠다 아직은.

시간이 지나서 좋고 안좋은 작품의 차이.


내가 지금 아는 건 해봐야만 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니 해보면 되는 건데 이렇게 여유로운 일상이 내게 주어졌는데 난 역시나

‘흠, 왠지 별로 하고싶지 않은데?’ 하고 있다.

이슬아 작가의 말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한 것처럼 나또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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