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진 Jan 11. 2024

이제 가서 알리는 거 말야. 어떻게 하는건데?

요한복음 4:27-42

2024년 1월 10일 수 / 요 4:27-42


> 요약

여자는 동네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 말한다. 그 사이 제자들은 예수님께 잡수기를 청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이라 한다. 그 양식은 노력한 것에 참여한 것이 되며 뿌리는 자, 거두는 자 함께 즐거워한다 한다. 마을에서는 여인의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께 왔고 그들은 말씀으로 인해 믿는 자가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 묵상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여자는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간다.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물을 바랬던 여인이 물동이라는 상징적인 것을 버렸다. 

중요한 것이라 여기며 매였던 것에서 자유해졌다.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에겐 용기가 생겨 예수님을 전한다. 

그녀를 통해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더욱 믿는 자가 많게 된다. 


여자와 마을 사람들과의 사이에 양식에 대한 본문이 있다. 

그녀처럼, 그리고 그녀의 이웃들처럼 하나님께로 열매맺는 자들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닌 참으로 세상의 구주를 앎(42)’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연결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노력에 참여하였고 그 노력과 계획은 하나님 으로부터 예수님을 통해 왔다.


인상 적이었던 건 뿌리는 자도 거두는 자도 함께 즐겁다(36) 하는데 이게 세상기준에서 보면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내가 뿌렸는데 다른 사람이 거두면 그것처럼 열받는게 어딨지? 그리고 남이 뿌린 걸 내가 거두면 그것처럼 횡재하는게 또 어딨나?

그런데 서로 다른 역할을 한 두 사람 다 기쁠거라니? 왜일까? 생각해 봤다.


그 열매가 개인의 유익을 위함이 아닌, 나의 사유재산도 너의 사유재산도 아닌 그 열매는 구원이기 때문인거 같다.

주일 설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린 100프로 이룬 구원을 똑같이 받은 자다. 그러니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주일 말씀처럼 구원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기에 아름다운 이를 통해 전해지지 않는다. 오늘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이다. 


Q. 나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제는 전할 용기가 있나?


2023년에는 가족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이 구원하신 이들을 봤고, 

아름다운거라곤 가족들이 보기엔 더더욱 없었을 나같은 이를 사용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그때는 사실 용기랄게 크게 없었다. 할머니도, 어머님도 병상중에 계셨고 조금의 쪽팔림만 참으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가족 아닌가? 가족이야 전해서 내 말 무시해도 그만인거다. 다시 돌아서면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다시 볼테니..


그래서인지 난 여전히 구원을 받은 자로서 이제 가서 알리는 자가 된다는 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 

타인에게 전하는건 진짜 모르겠다. 

그래서 주일 말씀도 사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내 몸은 체득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딱히 뭘 되게 전한게 아닌데 2024년은 가족이 아닌 가족 밖에 있던 친구인 혜림이가 하나님 앞에 오는 것을 봤다.

보는 이로 참여하면서 가족 밖에서도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걸 보는게 사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고 신기하다. 

그리고 무섭다. 내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전도의 열매에 중독될까봐 그것도 무섭다. 


그 안에서 중심을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난 계속 생각할 수 있을까?


분명 기쁜 소식인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어서 사마리아 여인처럼 물동이를 버리고 가서 얘기할 만큼의 용기는 내게 없는 거 같다. 

그냥 자연스럽게 얘기하다 나와서 얘기하는게 좋지. 물동이까지 버려가면서 달려가는건 너무 열정적으로 느껴져서 무섭기도 하다. 

나는 예술도 그렇고 내가 좋아서 지키는 가치관도 그렇고 그리고 복음도 그렇고

그냥 내가 알고 충분히 누리는데 항상 걸려있는 사람 같다. 


올해는 나와 가정을 벗어나 이제 가서 알릴 수 있는 이가 되면 좋겠다.

그게 내 열심으로가 아니였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 좀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싶은데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너무 구원의 열매도 내 사유재산처럼 여기는 사람이라서 이쪽에 무디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사람인걸까? 

그런 생각을 우리들교회 나오고 오랫동안 해봤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잘 모르겠다. 거기서 완벽히 자유한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아뭏튼 모르면 일단 가만히라도 있어야 한다는 건 배웠으니 가만히 있으면서 목장에 잘 붙어가야지. 


확실히 알겠는건 하나님이 나에게 써내려가시는 역사에 내가 모르고 나서는 것은 안되겠다는 건데 목장에 오게한건 써내려가시는 역사 가운데 있음은 알겠으니까.


> 삶

1. 잘 붙어 가겠습니다. 잘 모르니까 뭔가 오버하면서 나서지도 않고요.

2. 지난 것들에 대해 내가 했다 느끼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면 저를 회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 기도

하나님, 사회에서 위축되어 있었을 여인이 주를 영접하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용기가 생긴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저는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용기는 없네요. 용기를 내게되면 내 힘이라 착각하게 될까봐 그게 너무 두렵습니다. 그리고 가족 밖을 나가서까지 꼭 내가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있습니다. 구원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도 그런 편이예요. 주님, 저는 왜 제 세계 안에 갇혀있는 걸까요? 주님 저는 왜 주님을 알리는게 내 열심이 될까 두려울까요?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서 알려주세요. 



https://youtu.be/VhaUjXhY07c?si=IemiIBuM5i2MEEgN


오늘 본문은 유난히 주일설교가 생각나네. 




작가의 이전글 질퍽질퍽할 지언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