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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Jan 09. 2024

질퍽질퍽할 지언정

요한복음 4:15-26

2024년 1월 9일 화 / 요 4:15-26


> 요약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에게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라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남편을 불러오라 하고 그녀는 남편이 없다 한다. 예수님은 그녀의 상황을 얘기했고 그녀는 예수님을 선지자라 한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거라 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


> 묵상

아무도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자, 그것도 참된 남편은 없는 여자. 

당시 사회에서 여자에게 남편이 없다는 것은 그 여자를 지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아닌가. 

여자는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아무도 상종해주지 않고 지킴 받지도 못하는 존재였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에게 진짜 남편이 없었음을 알았을텐데 왜 네 남편을 불러오라며 


Q. 굳이 그 사람의 사연과 상처와 관계된 질문을 했을까?


난 예수님이 ‘직면’을 위해 그렇게 했을거라 생각된다.

두 가지 측면의 직면을 그녀는 할 수 있었을 거다. 


나를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알게 하는 직면, 

그런 나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걸어 굳이 관계를 맺는 예수님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게 하는 직면


예수님은 그렇게 내게도 다가 오셨다.

전남편은 집을 나갔었고 산골 마을엔 나와 아이들만 남았다.

겨울이 오는게 무서웠던 그해를 기억한다. 

다른 여자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모든 것을 전남편에게 의지했다. 그도 나에게 기생한 영역이 있었지만 나는 거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영권이에게 기생했고 의지했다.

나는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정서적 안정감을 남자에게 찾고 싶었고 왜인지 그럼에도 한 남자랑 진득하니 연애를 하지 못했다.

많은 이와 연애를 했던거 같은데 그 중 단 1명만이 진득한 연애였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하면 우리 아빠가 아무리 날 사랑했어도 결국엔 엄마편이 되는 것처럼 내 편이 생기는거라 착각했다.

그리고 평생 나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거라 또 착각했다. 

날 5년이나 짝사랑하던 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 내 결혼생활은 보장 되었다 생각했고 실제 그래보였다.

당시 우리는 많은 걸 함께했고, 신문에 나오고, 방송국에서 촬영을 해가고, 그 스스로도 블로그에 부부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올렸다. 

그걸 본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가정은 깨졌고 모든게 무너졌었다. 그때부터 전쟁같은 날들이 시작되었다.


소장이 날아왔고 나는 원치 않아도 피고가 되어 원고가 주장하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왜 대체 한쪽에서 주장하면 피고는 그저 법원에 강제소환 되는건지 그 구조도 이해 안됐다. 비참했다.

그렇게 가정을 지킨다고 변호사 없이 큐티와 목장 공동체 만으로 소송을 진행하던 내가 연애를 했고 혼외임신이 되었다. 

아이를 지우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전남편과 살던 곳에 가정을 지키겠다고 내 발로 들어왔는데 그렇게 되었다. 일이 그쯤되니 전남편이 날 걱정할 정도였다. 


나는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18)의 여자였다. 

그런 내게 주님은 찾아오셨고, 날 지키고 계셨다.


난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현실을 직면하게 한 것은 이 여자의 과거를 들춰서 이 여자를 고통에 빠트리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런 여인과 관계를 맺은 예수님 덕분에 그를 통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함으로 인해, 

질퍽질퍽할 지언정 생생히 이 여인이 살아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참이 무엇인지 알아가며 예배하고 살아 갈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생각한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여인에게 일어날 회복은, 그리하여 마르는 물이 아닌 마르지 않는 물로 자신을 채우게 될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이치였을 거 같다.


여인은 얼마나 감사했을까? 자신에게 남자는 많지만 남편이 없음이 세세히 예수님 입으로 고백되어 지는 순간

부끄럽지만 안심 되었을 것이다.

‘아, 이 사람은 다 알고도 나에게 말을 걸어 주는구나. 내게 마르지 않는 물을 안내 하는구나.’하고 말이다.


그 시대에 비참했던 이 여인에게도, 그리고 이 시대의 나에게도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비참한 모습이건 알고도 다가오시고 사랑하신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남편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전남편 대신 무언가를 채워서가 아니라

그냥 주님으로 인해 나는 이제 가장 안전한 남편을 둔 자라고 말이다.


> 삶

1. 주님께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2. 내 삶이 어떠하던 나와 예수님은 관계를 맺어 주셨듯이 내 남편이나 이웃의 어떠함으로 인해 그것이 관계의 걸림과 나의 악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일단 여보가 실직시간을 심하게 내 기준에서 답답하게 보내도 재촉을 너무 하지 않을 것)


> 기도

하나님, 그때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은 저와 사마리아 여인같은 이들에게 부지런히도 찾아 다니시네요. 당신의 사랑과 성실이 놀랍습니다. 제게도 분명 사람을 사랑함의 마음이 있었는데 저 살기 바쁘다고 혹은 나는 더이상 곤란하고 싶지 않다고 얼마나 많은 부분을 닫은채 살아 왔는지 모릅니다. 언제고 필요하면 내 손으로 닫힌 마음들을 열 수 있을거라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내 마음을 여는 힘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었구나를 알게 됩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눈이 녹듯이 주님이 제 마음도 녹이시더라고요. 주님, 여전히 상처받고 아프고 그래서 그 늪에 스스로 빠지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그럴때마다 저를 구해주시고 제가 알 수 있게 절 가르쳐 주세요. 타인의 어떠함을 걸림돌로 여기며 그를 미워하고 악을 행치 않게 절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 주님이 다가가 말을 걸어줄 이들에게 찾아가 주세요. 저희 사촌언니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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