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걸어올 수 밖에 없었던

모두를 아프게 했네

by 김혜진


25.08.05(화) / 삿 18:1-20


> 묵상

거주할 기업의 땅이 없는 단지파가 나온다. 원래 단 지파를 위한 기업의 땅이 있었다(수19:40-48).

그 땅은 정복하기 쉽지 않은 땅이어서 믿음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정복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은 오늘 본문에서도 여전히 땅을 정탐하면서 정복하기 쉬워 보이는 땅을 찾고,

그 땅이 정복 가능한지를 미가 집에 있는 에봇과 드라빔을 부어 만든 신상을 활용하는 제사장에게 묻는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5)’

‘…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 땅에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7)’



제사장을 개인이 소유하고, 그리고 필요에 의해 개인에서 지파 제사장으로 옮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아닌 욕망으로 신상, 사제들을 소유하며 하나님을 조종하고자 하는 신앙


올해가 이혼하고 재혼한지 10년차 된 해라는 걸 큐페에 가서 인식했다.

이혼함으로 인해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역사하셔 창조사역을 써내려 갈 수 있는 걸 막았다는 것에 분명 과거에 회개했었는데,

이번 큐페를 통해 이혼한 것에 대한 회개가 계속 계속 계속 나왔다.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나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황폐해진 지금의 가정을 보면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스스로 저지른 것인지
알게 되었다.





눈으로 황폐함이 드러나기 전까지 알던 것과, 눈으로 황폐함이 드러나 일게 된 것의 앎의 질과 밀도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죄가 드러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고통스러워도 축복인 것 같다.


우리들교회에 다시 돌아와 양육교사를 두 번째 받으면서 당시 인도자였던 김수경 평원이 했던 말,

기분이 아주 드러웠던 말인 “집사님은 재혼가정이니 너무 행복하면 안된다.”라는 말이

당시에는 ‘재혼하면 행복도 못하냐?’란 말로 들렸었는데 그 말은 어쩌면 ‘네가 지은 죄가 행복으로 덮혀 가려지지 않게 주의하라’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가 이렇게 회개했는데도 이혼의 회개를 하게 되나. 왜이리 통회하는 심령이 되는가 의문이었지만

나오는 회개를 막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큐티를 하는데

단 지파의 모습이 당시의 내 모습이자 지금의 내 모습이란 걸 알게 되었다.



원래 하나님이 단 지파에게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정복할 수 없는 기업이 있었던 것처럼

처음 가정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 기업이 이리보고 저리봐도 정복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니 그 가정을 기업으로 무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의 단 지파처럼 정복하기 쉬워 보이고, 강대국도 옆에 없고, 연합도 안 이루고 있는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7)’

먹을 것도 많고 평온해 보이는 지금의 남편이 기업을 무르기를 얼마나 바랬는가

‘땅에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7)’


지금의 남편은 전남편처럼 예민하지 않았고, 다정했으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잘 대해줬다.

큐페에서 사단은 차은우 장원영의 모습으로 온다고 하였다.

정말 당시 내가 이전 가정에 가지고 있던 결핍을 채워주는 모습으로 지금의 남편은 다가왔다.


그러니 이 사람이 나의 기업이 되면 처음 주신 기업보다 훨씬 쉽게 그 땅을 정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럴 수 있었나?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못하니 죽을 것 같고 그 죽을 것 같은 것들을 그때도 지금도 해결받고 싶어한다.

해결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제사장을 개인이 소유해 내 뜻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길 바라는 부패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다.



이번 큐페에서 가장 크게 깨닫고 느낀 감사는

나의 이혼과 재혼은 누구 때문도 아닌 그냥 나로 인한 것임을

거기에 공동체에 대한 원망을 한 방울도 할 수 없음을,

그리고 내 자녀가 아파 소리지르며 우리를 저주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나로 인한 내 삶의 결론임을..

이렇게 온 가족이 서로를 미워하고 찌르고 아파하는 눈이 뽑히는 사건이 있어야만 구속사가 보이는 것이었다.



10년전 지금의 남편과 연애한다고 할 때 목자님이 “집사님, 그러다 눈이 뽑힌다.”라고 했다.

그 말이 당시는 협박이고 웃긴다고 생각했다.

목자님한테 했던 대답이 “누가요? 하나님이 제 눈 뽑겠다고 목자님한테 그러시던가요? 눈 뽑으라 그래요.”라고 했는데,

정말 내 눈이 뽑혔고, 너무 아프고 괴로웠고 여전히 아픈 중인데


눈을 뽑아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 죄를 알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다.

눈을 뽑으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수많은 다양한 길이 있는데 이 길을 선택 하셨겠나?


구원에 이르는 길이 이 길 밖에 없으니 날 이렇게 부르신 거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제발, 알려주신 말씀 받은 은혜 까먹지 말고 죄인 된 마음으로 가정에서 십자가 지길 기도한다.



> 삶

1.오늘 집에서 또 무슨 일이 오고가고 남편이 짜증내고 애들이 원망의 말을 쏟아내도 내 죄로 인함을 기억할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2. 남편 먹고 싶다는 짜장해주기 & 피곤하다고 징징대지 말고 목장준비 하는 것



> 기도

주님, 제게 원망을 가져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의 삶의 결론은 누구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단 지파처럼 얻기 힘든 기업을 포기하고 얻기 쉬워 보이는 땅을 찾아 무르고자 했던 저의 죄입니다. 주님, 제 죄로 인해 우리 가족들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남편, 자녀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굳이 고통스럽지 않아도 되는 가족들을 고통에 빠트린 죄인인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모든걸 엄마 탓 하는 숲에가 옳았음을 고백하오니 고통의 소리를 기꺼이 받을 수 있게 성령님 제게 힘을 주세요. 절 큐페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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