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9

마주했다.

by 김혜진

4월 29일. 난 꿈을 꿨다.

꿈은 몇 안되는 인물에 아주 단순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아주 긴 시간 꿈을 꾸고 그 꿈을 바라보았다는 느낌의 꿈이었다.

작고 어둡고 빛이란 거의 들어오지 않는 창문조차 없는 집에서 나와 너 그리고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희망과 미래라곤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넌 언제나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난 그곳에서 알 수 없게 축축해지는 기분이든다.

습해서 축축함이 아닌 그 축축함은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이다.

너의 고유성과 너의 그 고유성을 불쌍해하는 나의 고유성이 만난 축축함 같은 것이었다.

너의 아버지가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이가 보인다.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말한다.

"네가 지금이라도 돌아와야 하는거 아니냐?"

아버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너와 다시 나 그리고 아이들 셋이 남아있다.

네가 내게 묻는다.

"네 생각은 어때?"

나는 대답한다.

"응, 우리만 있다면 좋지. 그런데 우리만 있을 수 있는게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그 말이 뱉어지는 순간 난 그것이 거짓인걸 안다.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에 미소가 하나도 없다.

그곳의 나는 마음의 짐, 너에 대한 동정 그리고 도덕적 책임감 같은것으로 가득차 있다.


꿈을 깨고 알았다.

나의 사랑엔 너의 불쌍함을 불쌍해 하는 동정이 기저에 있었다는것을

나는 그렇게 무언가에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를 선택해 왔고,

너를 선택할때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거 같은 너의 그 불쌍함을 불쌍해 하며 선택했다는 것을

그리고 난 그 선택에 책임을 지기위해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왔다는걸 알았다

20년 이상이 된 나의 악과 연약함 그리고 삶으로 인한 감정의 무게를 통째로 마주했다.



결혼이란, 꼭 사랑해서 해야하는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동정이든, 내 삶의 질의 개선이든, 안정이든 무엇이든 다양한 동기로 인해 할 수 있는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난 내 결혼의 동기 그리고 벗어나고 싶었던 너의 고유성 그 모든것들을 직시하면 안된다는 죄책감으로 날 누르고 살아왔다는걸 알았다.

그리고 넌 내게 명분을 만들어 줬다. 벗어날 수 있는 명분


그리고 또다른 결혼

크게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또다시 비슷하게

무언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너보다 더 불쌍한 누군가를 불쌍해 하며 또다시 결혼을 하게 된다.

내가 날 사랑하는 방식, 내가 사랑을 선택하는 방식, 내가 사랑을 유지하는 방식

그것들은 성숙하지 못한 모양과 색깔이었음에도 나의 그 선택이 그전의 삶과 다른것은 내게 매일 말씀을 걸어 나를 성장시키고 내가 날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선한게 거의 없는 내게 무언가를 채워 부으셨다는 것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인생이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달라지진게 있다면

나의 고유성도 상대의 고유성도 바라보고 관계를 맺는다는거에 있다.

그것을 피하거나 덮어두거나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고유성을 내가 어떻게 하려하지 않고 그것이 내 앞에서 치워져 버리기만을 바라지 않고 그것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을 다루는 것은 내가 아니다.

각자와 하나님의 관계이다. 더 나은 성숙은 내면의 동기로 인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 남편의 고유성을 보고서도 난 그를 사랑할 수 있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거같다.

그 고유성에 날 해치거나 학대하지 않고서 말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 만큼, 타인에게도 그것이 가능해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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