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 비 그리고 갬

부부싸움

by 김혜진

남편에게 심한 말을 들었다.

물론 나도 그에게 심한말을 했다.

그간 그의 태도에 비참함을 느껴와서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그렇지만 으레 그러듯 내가 뱉은 잔인함 보다 상대방이 내게 뱉은 잔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에게 들은 심한말로 인해 일순간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러면서 내 존재, 가정이란 울타리의 존속의 이유 모든것이 한꺼번에 내안에서 무너져갔다.

나의 존재의 이유와 존립의 근거가 상대의 태도와 평가에 있는게 아닌데 기준을 상대방에게 둬버리면 때론 비참함이 찾아온다.


감정이 곤해져도 그 자리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나와 달리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게 더 중요한 남편은 상황을 피하고 싶어한다.

평소에도 그다지 맞는 부분이 없지만 이럴땐 유독 다름이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더이상 얘기해봤자 갈등은 풀리지 않고 그저 또다른 갈등을 낳는 꼴이 된다는걸 숱하게 겪어왔다.

그렇게 숱하게 겪어보고도 또 오기를 부리게 되는게 내 본성인가 보다.

그런데 오늘은 상처가 너무 크기도 했고,

일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탁 놓아지면서 그 오기를 포기하고 자릴 피했다.


피한 그곳에 다른무드와 상황이 연출되면 좋으련만

들었던 말을 되내이며 난 비참함에 자리를 잡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굴며 스스로를 더 비참케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에게 내던진 무자비함과

남편이 내게 던진 비겁한 말들

난 그 비슷한 비겁함을 또다른 이에게서 겪어봤다, 아주 지독히.


가족이란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한 조율과 희생 그에 따른 책임과 수용

그것들이 내가 원하는게 아니라고 이전에 겪어온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

감정이 증폭된 이 순간 너의 희생과 수정의 싫음을 더 크게 느끼며 그것이 내탓인냥 말하는거 그거 너무 치사한거 아닌가?

게다가 아이의 부모를 닮음이 당신이 겪기 싫은 부분이라고 날 닮아간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비겁함이다.


그렇게 비참함에 자리를 잡았던 나는 저녁 가정예배때 읽었던 본문이 생각난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대적이 되어 해하려 해 도망을 가던 다윗 그리고 그를 쫓는 그의 아들 압살롬(시3)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갇히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원수가 되는 그 상황이 떠오르며 지금의 내 상황이 특별히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게 난 한걸음 물러나 나를 보았다.


그리곤 치졸하고 더러운 각종복수를 습관적으로 일순간 떠올리던것을 관둔다.

일을 더 크게 만들지도 않고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줄거 같은 이들을 떠올리며 찾고싶은 생각도 관둔다.

그런데 갑자기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놀라웠다.

지긋지긋한 그 패턴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벗어난게 맞구나 확신이 선다.


그러자 갑자기 내 앞의 두 길이 놓여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이 비겁함을 비겁해하며 비참함에 몸을 떨것인가?

아니면 이 비겁함에 비참해하며 무너지지 않을것인가?


그 비겁함은 옳지 않다.

지금 현재 그 비겁함이 내 남편에게서 발현되었다.

그러나 그 비겁함이 남편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걸 나는 안다.

그리고 나또한 비겁함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라는것도 나는 안다.


화가 난 네가 날 사랑한다는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결혼의 동기가 꼭 사랑일 필요는 없다. 결혼과 사랑이라는 감정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다.

그리고 네가 변화와 성장의 힘듦을 내탓으로 느끼는 비겁함에 언젠간 성숙이 있길 기도하며

무엇보다 중요한건

당신의 감정이 쏟아대는 그 말에 내가 훼손될 이유가 없다.

난 날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도.


어떻게하면 네가 내탓이라 느끼지 않고

내가 널 비겁하다 느끼지 않고

서로를 조율하며 살아낼지 생각해볼게

어차피 난 생각하는걸 좋아하고

당신은 생각하는걸 싫어하니까

서로 각자 잘하는걸 해나가면 되겠지


그리고보니

꼭 나쁘지 않네, 오늘 싸움.


그렇게 난 그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가 주는 상황과 조건의 풍성함보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을 기억하고 신뢰하게 된다. (시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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