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에 대하여. .
병원이란 곳에서 수용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이날 어머님이 뇌출혈로 응급실에 오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다.
어머님은 응급실에서 중환자실 그리고 일반병실을 하루안에 이동했다.
출혈의 양은 적었지만 섬망증이 나타난 어머님을 간호하기 위해 어머님 곁에 있으면서 한 병실안에 다른 환자와 보호자를 보게 되었다.
어머님 베드옆옆 끝쪽 창가엔 작은 목소리를 내는 할머니가 섬망증으로 누워계셨다.
힘없는 할머니 곁은 힘있어 보이는 아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아들은 날마다 큰소리를 내며 엄마를 얼르고 달래고 짜증도 냈다. 대부분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짙은 감정.
그의 호통속에서도 할머니는 작은 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섬망증은 참으로 다양해서 때론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데 창가 할머니 같은 경우는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없으셔서 섬망이 오셔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셨다.
이곳은 병원이고 부축해서라도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상태라는걸 할머니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다.
자꾸만 기저귀를 벗으려하고 기저귀에 변을 누지 않고 참고 참으셨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은 그저 답답해 보였다. 그렇지만 아무 힘없는 어머니를 대하는 그의 말과 태도는 몹시 불편했다. 병실 가득 그가 내뿜은 불편함이 가득해 비집고 나가는듯 했다.
그 맞은편 창가에는 더 나이든 할머니가 목소리조차 거의 내지 못한채 계셨다.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는건 보호자라고 하기엔 어리고 그렇지만 성인이 된듯한 어린보호자로 보였다.
그 할머니 또한 섬망이 있었다.
나이드신 분들이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으레 섬망을 겪게된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속에는 희망이나 길같은건 보이지 않는 심지어 환자와 보호자의 아픔을 조금도 공유하지 못하는 듯한 그저 보고하듯 던져대는 말 뿐이었다.
섬망을 겪어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사는 정작 해줄수 있는게 없었다. 그것들은 오로지 우리들의 몫이었다.
어찌되었든 그 할머니는 밤에 한번씩 소리를 지르는것 외엔 특별히 저항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그런대로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는듯 보이셨다.
그리고 나이든 할머니를 돌보는 어린 보호자는 이 작은 병실 안에서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토를해도 할머니가 열이나도 할머니가 소리를 질러도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해 무언가를 달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고 나직하게
“할머니 그랬구나. 할머니 힘들었어? 할머니 괜찮아. 내가 치우면 돼."였다.
그렇게 어린 보호자는 할머니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 어린 보호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손길이 나의 마음까지 쓸어내리고 있는듯 했다.
지금의 상황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어린 보호자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힘있어 보이는 보호자를 보면서
몇일 있지 않았지만 그 병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됐다.
그들을 향한 시선은 결국 돌아와 어머님과 내게 향하게 되었다.
우리 어머님은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와 남편을 찾았다.
섬망증으로 인해 헛것을 보고 저항을 하고 욕을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어머님께서 가장 집착하는 것은 ‘집’이란 공간이었다.
집에 갈 수 없는 본인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셨다.
섬망이 온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그 어린 보호자처럼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몇일을 있던 대학병원에서는 뇌출혈로는 더이상 해줄것이 없다며 섬망증은 집에가서 치료하라고 했다.
작은 병실안에서 밤마다 어머님이 부리는 난동에 간호사도 병원도 그리고 간병사 선생님도 우리도 지친부분이 있었다.
어머님은 밤이되면 증세가 심해지셔서 갑자기 몸을 뒤로 떨어트리거나 침대 밖으로 떨어지려고 하셨다.
보이는 이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려 하시는 듯 보였다.
내뱉은 말들에선 지난 삶들에 대한 후회, 그리고 그 삶들이 쌓여서 온 여기 지금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한탄을 하셨다.
혼자 계시기도 누군가 모시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녀들은 어머님을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한것이 결정된 그날 난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울음이 나왔다.
커다란 사건을 마주하면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해내느라 나는 잘 울지 못한다.
보통 짧아야 2년이 지나야 지나버린 그때를 기억하고 후에야 감정을 느끼는 내가 그날은 왠일인지 눈물이 났다.
어머님의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 시점이 그날 그자리 였던거 같다.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내 안에 온전히 모든걸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걸리는거 같았다.
나는 그후로 종종 멍하고 눈물이 난다.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벽이 무언가를 가로 막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벽은 무엇일까?
이제는 예전의 어머님을 만날 수 없을거라는 두려움일까?
언제쯤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나의 몸은 여기있는데 나의 정신의 일부는 그 벽앞에 서있다.
벽 너머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