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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Dec 13. 2023

평소 안 먹던 것도 그리워지는 스위스의 먹거리들

아시아의 먹거리가 그립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음식사진들을 보면서 이렇게 먹는 게 풍족하고 저렴했나, 평소 먹지도 않던 것, 쳐다보지도 않던 것마저 그리워지려고 합니다.


슈퍼마켓 가격도 싸고, 편의점 도시락도 맛있고, 늦은 저녁에는 할인도 되고,

라면집에서는 항상 파를 가득 토핑하고, 반찬가게에서 몇 가지랑 돈가스집에서 몇 조각 사서 집에서 밥만 해서 먹어도 좋고, 그마저도 귀찮으면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가정식 밥집에 가고, 집 앞 편의점 들려 오뎅이나 핫도그, 호빵을 사 먹고, 달달이가 땡길 때는 먹음직스럽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를 사 먹던, 그런 날들이 너무 그립네요.


스위스에 와서 한 달 만에 2kg이 빠졌습니다.

1kg 빼려면 지구를 백 바퀴 돌아야 하는 저인데, 원체 먹을 게 없으니 순식간에 2kg나 빠져 버리네요.

뭔가 먹고 싶어도, 군것질하고 싶어도, 주위에 사 먹을 만한 곳이 없어요.

있다고 해도 돈을 주고 살만한 정도의 퀄리티가 아니라 선뜻 손이 안 가는 것도 있네요.


임신했을 때 잘 먹지 못해서 생전 처음 내 자신이 불쌍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었습니다.

아귀찜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구할 방법도 없고, 구할 수도 없었고요.

이마트 순대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그걸 팔리도 없고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닌데 못 먹는 게 서러웠던 적은 제 평생 저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는 반찬가게도 없고, 편의점도 없고, 밖에서 먹는 음식은 항상 똑같고, 그다지 맛도 없어요.

제가 하도 맛없다고 하니까 시어머니가 맛집이라고 산속 어딘가 데려가 주셨는데 제 점수는! "별 3.5개 정도"였습니다.

와~ 너무 맛있다! 또 와야지! 저장해 둬야지! 사진 찍어야지! 이정도는 아니였어요.


미그로레스토랑 같은곳에 키즈메뉴가 있는데 소시지나 너겟, 감자튀김이 전부입니다.

다른 메뉴는 없어요. 우동, 카레, 볶음밥, 새우튀김, 동그랑땡, 함바그 이런 거는 상상도 못 하죠.


볼품없는 저런 게 한 만원쯤 합니다. 맥도널드 키즈메뉴에 당근이 있길래 선택했더니 생당근을 슬라이드 해놓은 거더라고요. 최소한 대치기라도 한 줄 알았어요.


아침은 안 먹거나 간단히 크로와상같은 빵을 먹는다 치고, 매일 하루 두 끼를 다른 메뉴로 요리를 해야 합니다.

왜 두 끼냐고요?

점심을 집에 와서 먹거든요. 학교는 급식이 없고, 도시락도 가져가지 않아요.

출근한 남편이 점심때 집에 오는 가정도 있어요. (우리 시아버지도 그랬대요.)


몸이 아파 죽겠는데도 배달이 있나, 도시락 집이 있나, 우야든둥 주방에 서서 뭔가 만들어 먹여야 합니다.


일요일은 모든 가게가 문을 닫지만 맥도널드, 버거킹 이런 데는 영업합니다.

무슨 가족단위로 와서 특별한 외식이라도 하는 양 득실거려요.

맥도널드.... 저 일본 살 때 거의 안 가던 곳 중 하나인데,  여기선 갈 곳이 원체 없으니 저기라도 갑니다.


스위스의 치즈, 초콜릿이 세계적으로 유명할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밥은 아니잖아요?

감자 치즈가 주식인 스위스인들은 먹다 남은 빵에 치즈를 찍어먹는 퐁듀, 거기다 고기를 곁들인 라클렛, 구운 소시지와 감자전(뢰스티), 치즈돈가스같이 생긴 꼬르동 블루를 즐겨 먹습니다.

강원도 감자 버금가는 나라라 감자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팝니다.


감자 치즈 우유

낙농업국가다운 음식의 조합이죠.


채소중에는 파프리카 샐러드는 싸고 맛도 좋은데, 파 양배추 이런류는 텁텁한 맛이고, 부드럽거나 단맛은 아예 없어요.

딸기는 쓰고, 달달하고 과즙 가득한 배는 팔지도 않아요.

배추는 한국배추의 1/4크기의 알배추 크기고, 무우는 없는 날이 더 많아요.

생닭은 털이 숭숭 그대로 있습니다. 닭요리를 할 때 털 뽑는데 하루종일 걸릴 지경이에요. (프랑스에 살 때도 그랬는데 유럽은 전체적으로 이런가 봅니다.)


쇠고기 돼지고기 버펄로 토끼 칠면조 양 이런 건 부위별로 팝니다.

베이컨이나 햄 치즈는 종류가 엄청나서 저는 뭐가 뭔지 잘 모르니 대충 아무거나 삽니다.


또한 바다가 없기 때문에 해산물은 냉동으로 대부분 태국수입산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배타적이라 해산물을 아예 안 먹는 사람도 많아요. 제 남편과 주위 몇 명 스위스인이 딱 그렇습니다.

그래서 슈퍼의 해산물코너는 우유코너보다 작아요.

그나마 먹는 건 연어인데, 노르웨이산만 먹더라구요. 확실히 맛은 좋아요!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해물피자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주문했더니, 이네들이 왜 안 먹는지 바로 알겠더라고요. 너무 맛이 없어요. 오징어, 새우같이 맛있는 재료로 어쩜 저렇게 맛없게 만들 수 있지. 신기할 따름이였습니다.


그러니 회 매운탕 아귀찜 해물찜 가리비구이 꼼장어 이런 게 있을 리도 없고 스시라고 해봐야 롤스시와 연어스시가 주류고, 한국식당도 닭볶음정식 불고기정식 이런 고기류가 메인입니다.

한 번은 한국식당에서 "자장면"이라는 걸 보고 눈 뒤집어져서 바로 주문했는데 소면도 중면도 아닌 정체불명의 희한한 면에 인스턴트 짜장소스는 건더기가 하나도 없이 검은 액체, 그대로 였습니다. 너무 맛이 없어서 반정도 먹다가 남겼는데 가격은 대략 2만 5천 원 정도였어요. 돈 아까워서라도 다 먹고 싶었지만 도저히...


여기 사람들 특징인가요.

매우 대단히 심플하게 먹습니다.

토스트에 이것저것 넣지 않고 달랑 햄과 치즈만 넣더라고요.

한 번은 제가 양배추에 계란 풀어넣은 한국식 길거리 토스트를 해줬더니 뭐가 너무 많이 들어 있다며 싫어하더라고요.

참치 롤초밥이라고 파는데, 그 안에 아보카도, 오이, 참치마요네즈에 버무린 거. 이렇게 세 개 넣으면 많이 들어 있는 거고, 보통은 연어하나 달랑, 오이하나 달랑 이렇게 넣고 작게 잘라서 한 조각 당 2~3프랑에 팝니다. 한 조각에 4천 원이란 얘기예요.

이거 한 세 조각에 연어스시 두 개 정도 포장된 게 거의 만원 넘어요.

10개 들어있고 9.5프랑이니까 한 1만3천원은 넘겠네요

조각케이크 같은 것도 일본이라면 파기 수준인 것들을 비싼 가격으로 팔고 있어요.

전 이렇게 무너져있고 엉망이 된 케이크를 진열해놓고 파는게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모든 걸 집에서 만들어먹는 게 싸고 맛있다는 생각이 들만 하죠?

여기오니 장금이 되어가네요. 생전 안 하던 요리라는 걸 척척 해냅니다.

저같이 "요알못"도 케이크, 쿠키, 머핀 같은 것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게 되었고, 스파게티도 잘 만들고, 심지어 김치 담가서 팔기도 했습니다.


아이 생일에도 집에서 만든 쿠키나 케이크를 학교에 가져가서 돌리는 게 보통이니까, 안 만들 수가 없더라구요.

어디 무슨 가게에서 캐릭터생일케이크이나 케이크떡 이런 걸 사는 건 전혀 없어요.


한 번은 한국을 잘 아는 스위스인 친구랑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팔아볼까?"라는 얘기가 나와서 양념과 프라이드를 만들어 시식하게 해줬더니 양념은 달아서 인기가 없을 거 같고, 프라이드는 극찬을 하더라고요.

치킨 싫어하는 남편도 한국에서 프라이드 먹고는 진짜 맛있다고 해서, 진심으로 테이크아웃치킨집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몇 년 더 살면 시리얼에 심플 토스트 먹는 입맛으로 변하게 될까요?

저는 이나라 저나라 외국생활만 20년도 훨 넘었지만, 김밥이 그립고, 길거리 토스트가 좋고, 케첩 가득 핫도그가 맛있고, 겨울에는 오뎅국물 후후 불어먹고 여름에는 호로록 냉면 먹고 주말에는 친구들이랑 바닷가에 가서 조개구이랑 소주 먹는, 그러는 게 여전히 너무 좋기만 하네요.



vanillekipferl
크리스마스 때면 집에서  쿠키를 만들어서 주위에 돌리거나 나눠 먹는답니다.

번외로...

제가 이걸 친한 한국인 여자애에게 줬더니 한입 먹고 안 먹더라고요.

더 먹으라니까 "음... 이런 걸 먹고 살았어요?" 스트레이트 한방 크게 먹여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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