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류 Nov 09. 2023

독일어 하나도 모르는 우리 아이

초등학교 4학년으로 들어가다

5살 때 일본으로 갔다가 10살, 즉 일본소학교 4학년 중간에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다.




우리 애는 스위스에서 태어나서 4살 유치원 입학한 후 한 학기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5년 후, 10살 하고 7개월 되던 해에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는데 완벽하게 독일어(스위스어)를 까먹은 후였다.



일본은 4월에 학기가 시작되니 3월에서 다음 연도 2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 된다.

한국은 이게 없어졌다고 하는데 일본이나 스위스는 아직 남아있다.

스위스는 8월 마지막주에 학기가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6월생까지가 커트라인이다.


우리 아이는 스위스에서 원래라면 5학년이 되는 건데, 5학년부터는 프랑스어가 수업에 추가되기 때문에 언어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한 학년 내려서 4학년으로 들어가게 했다.


일본에서 중1 된 아이가 학업 부담 때문에 초등6학년으로 오는 경우도 우리 동네에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그런 "학년"이라는 개념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 예전에 다니던 유치원이 초등학교와 같이 있어서 그 학교로 배정을 마쳤다.


10:20-11:55분까지는 학교 옆 건물에서 1년 코스로 독일어 집중수업을 한다.


마침 3주 전쯤에 일본에서 온 세 자매와 알바니아인 꼬맹이랑 우리 애, 이렇게 5명이 함께 독일어수업을 듣게 되었다.



스위스 아이들은 대부분 방과 후나 주말에 학교에 가서 논다.

학원은 보이지도 않는다.

수영, 축구교실, 태권도 같은 스포츠 관련은 간간이 보이는데, 보습학원, 외국어학원, 웅변, 서예학원, 어학학원 이런 건 어디에 숨어있는 건지 아예 없는 건지 보이지도 않는다.

최소 우리 동네는 한 군데도 없다.

애들은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대충 팽개쳐두고 삼삼오오 모여서 축구하고 딱지치기하고 논다.


스위스에 도착한 다음날, 아이와 축구공을 가지고 골대가 있는 학교로 갔다.

평일이고 마침 쉬는 시간이라 애들이 우루르 나오더니 순식간에 축구팀이 만들어졌다.


처음 우리 애는 독일어를 몰라서 같이 놀라고 하니 우물쭈물했는데 한 일주일 지나니 금세 친해져서 내가 조금만 옆에서 통역해 주면 어떻게든 잘 어울렸고 한 달도 안 되니 내가 옆에 없어도 될 정도였다.


축구로 대동단결이다.


그러다 한 애가 축구선수카드를 한 50장 정도 꺼내 들자 우리 애는 또 눈이 반짝거린다.

거의 포켓몬 카드 수준의 위력이다.


독일어 하나도 모르던 우리 애가 첫날 이렇게 터득한 말은


축구하고 논다 Fussball spielen, 같이 놀자, 이 카드 어디에서 사?


였다.


그리고 다음날은 언제 같이 놀 수 있어? 이 카드랑 교환하자, 화장실 간다. 등등을 말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놀기 위한 언어, 생존에 필요한 언어, 놀면서 하는 언어란 바로 이런 거다.


월, 화, 목에는 독일어 집중코스에 가는데, 아래의 시간표 바로 그것이다.


집중코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너무 띄엄띄엄 있고 시간도 고작 1시간 반이다.

숙제도 뭔가 너무 간단하고 수업시간도 거의 그림 그리고 놀면서 한다고 한다.

독일어 집중 코스 수업표 색칠된 부분만이다

등교 첫째 주는 저 시간에만 학교에 갔고, 둘째 주부터는 정식으로 자기 반에서 수업을 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수업은 8:20에 시작해서 11:55분에 끝난다.


시간표

그리고 점심시간(Mittag)이 한 시간반정도 있고, 13시 30분부터 오후수업이 시작되서 15시 05분에 마친다.

월. 화. 목 오전수업시간에 수업을 빼먹고 독일어집중코스에 가서 독일어를 한다는 얘기다.


월, 화, 목 10:20-11:55에 하는 수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스러운 것이다.

독일어, 역사, 지리, 수학, 영어, 이런 건 빼먹고, 공작, 축구, 음악 이런 시간만 참여한다.


이 과정이 보통 1년이라고 하니, 그럼 공부는 언제 해?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사실상 일본이나 한국은 스위스보다 공부량이 많기 때문에 아마 4학년 산수나 영어를 빼먹어도 어쩌면 이미 더 앞서 간 상태 일 수도 있다.


독일어집중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이에게 물어봤다.

놀면서 한다고 한다.

주입식 같은 것은 없다. 의미를 잘 몰라하면 옆에 친구가 설명하도록 유도하고, 아이가 스스로 입을 때기를 기다려준다고 한다.


첫날 어버버거리던 우리 애도 점점 시간이 지나자 간단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애 말에 의하면 학교 가는 게 재미있단다.


일본은 쉬는 시간 5분 동안 다음시간 준비, 화장실 가기, 물 마시기정도인데, 여기애들은 5분 동안에도 밖에 나가서 축구한다.


25분 정도 되는 쉬는 시간에도 일본은 축구는 금지인데 여기애들은 공만 보면 쫓아가고 무리 지어지고 팀이 만들어진다.

쉬는 시간에는 교실 안에 있을 수가 없다. 비가 오면 지붕밑에 모여 있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교실 밖으로 나와야 한다.

아직은 일본 돌아가기 싫단다.

일본에서 친구들이랑 헤어질 때 너무 슬프게 울어서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프다며 펑펑 울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진 듯하다.


축구와 놀이로 독일어가 금방 늘 거 같아 기대 중이다.


스위스 온 지 하루 지난날









                    

매거진의 이전글 평소 안 먹던 것도 그리워지는 스위스의 먹거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