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은 남편의 웃는 얼굴을 힐끔 보았다.
옆모습이긴 했지만 살기가 느껴졌다. 확신하건대, 손에 나이프라도 들려져 있었다면 그 여자를 찔렀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눈과 입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그 눈은 살기가 차올라 끔찍했다. 웃고 있는 입 속은 시꺼멓다 못해 무한의 칠흑이었고, 입술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뾰족한 이빨 사이로 검붉은 피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웃고 있는 얼굴은 화내는 얼굴보다 끔찍하고 공포스러워서 차마 앞모습을 똑바로 처다 볼 수 없어 그만 고개를 떨궜다.
편의점 점원여자는 남편을 보지도 않은 채, “잘 몰라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래요?”
남편은 활짝 웃으며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지하철 표 사는 곳이 어딘지 모른다고요?”
은진은 남편의 얼굴과 점원을 번갈아보다가 점원이 남편을 피하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가자. 모르나 봐.”
그리고 남편의 소매를 끌고 나가려고 했다.
남편은 은진의 손에 이끌려 나오고 나서야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 여자가 내 얼굴을 보길 바랬어.”
“봤을 거야. 무서워서 고개를 못 든 거겠지.”
부산으로 여행와서 지하철 티켓을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물어봤는데 편의점 점원이 모른다고?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무성의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해야만 하나?
은진은 아주 오래전 지하철에서 남편과 똑같은 얼굴을 본 적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얼굴이다.
러시아워의 북적대는 지하철 문 옆 구석에 끼인 채로 위태롭게 서 있는데 그녀 맞은편에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곧은 자세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갸름하고 몸은 호리호리하고 마른 채형의 그 남자는 은진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입술을 양쪽으로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여전히 뚫어져라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그 미소가 은진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단순한 인사치레의 미소가 아니다. 눈은 어둡고 끝없는 터널과도 같고 행여라고 양쪽 끝으로 살짝 올라간 입을 벌리기라도 하면 금세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미소다.
오금이 저린다는 게 이거구나. 억지로 문을 열고 경찰서로 달려가 “살인자예요!”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살인자?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 사람은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오감이 그를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지하철 다음정류장까지 2분 거리가 20분, 아니 2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2분 안에 살해당할 것만 같은 기분에 꼼짝도 못 하고, 그렇다고 남자의 눈을 피하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채로 서 있기만 했다.
눈동자를 피하거나 내리 까는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를 덮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사방에서 주먹이 날아와 그녀의 뒤통수를 치고 머리통을 내동댕이 쳐 버릴지도 모른다.
숨도 못 쉬고 부동의 자세로 얼어붙어 있는 그 잠깐의 순간이 공포심으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내리실..., 입니다."
드디어 지하철 알림 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문이 열렸다.
공포심이 서서히 걷히면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잡음이 섞이더니 이내 선명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이번 정류장은 선릉, 선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인파에 떠밀려 지하철에서 내려 참았던 숨을 몰아 뱉으며 플랫폼에 있는 의자를 찾아 털썩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등뒤와 겨드랑이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봤지만 남자가 내린 것 같지는 않았다.
며칠 후 지하철 칼부림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범인은 역시나 그때 그 남자였다.
티브이 앞에 서서 아침 뉴스를 보며 칫솔질을 하던 은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세면대로 빠르게 돌아가 물을 틀어 놓은 채 한동안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남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 남자는 나를 죽이고 싶었을까? 왜 그런 섬뜩한 표정을 지었을까?”
남편은 “글쎄.”라며 애매한 대답을 하더니, 곧바로
“그건 그 사람이 감정에 맞는 표정을 못 짓는 걸 거야. 자신의 기분에 맞는 표정을 짓는 법을 모르는 거지.”
남편은 택시 안에서 자고 있는 지우를 쓰다듬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그 대답으로 남편이 그 살인자를 이해하고 있다는 걸 은진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재현 역시 감정에 맞는 표정을 짓는 데 서투른 사람, 어쩌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