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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하철]에서 자리양보해 주면 실례인가요?

by 소류

"여기 앉으세요."


아기띠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이 손을 잡은 애엄마가 비틀거리면서 버스에 탔다.

내쪽으로 다가오길래 자리를 양보했더니 깜짝 놀라며 사양한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기는 개뿔. 내가 더 안 괜찮아 보인다.

"여기 앉아야 해요!"라며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팔을 살짝 잡아끌어 겨우 앉혔다.

애엄마는 나의 행동에 당황해하더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발하고는 자리에 앉아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나만한 키에 여리여리한 몸의 애엄마가 애 둘을 데리고 힘들어하는데 왜 괜찮다고 사양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아, 감사합니다. 앉게 돼서 다행이에요."

라고 한다고 해서 누가 돌팔매질이라도 하나?


도쿄에서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내가 실례를 범하고 있는 건가? 내가 비정상인가?

노! 전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실례는 내 쪽이 아니라 쓸데없이 거절하는 상대 쪽이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서 있는데 앉아 있는 사람이 그걸 보고도 무심하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가시방석일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일본은 자리 양보에 인색하다?


아기띠를 하고 있어도, 임산부여도, 고령자여도, 몸이 불편해 보여도, 어린아이를 동반했어도,

그 누구라도

자리 양보는 꿈도 꿀 수 없다.


한 번은 우리 아이가 다섯 살 때 집에 가는 길에 잠이 들어서 안고 탔던 적이 있다.

집에 가는 도중에 잠들어서 안고 탔는데 내릴 때까지 아무도 안 비켜줬다.


이 상황에서 자리 양보를 바란 내가 이상한 건가?

양보가 의무가 아니니 안 해줘도 되는 거고,
그걸 바라서는 안 되는 거라면, 세상 참 야박하다.

의무가 뭐며 양심은 무엇인가?
양심은 선택일 뿐 의무는 아니니까 괜찮은 건가?
임산부를, 고령자를,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배려해서 양보해 주는 게 의무가 아니니 무시해도 되는 사회가 언제부터 있었나?

배려는 의무가 아니니 안 해도 되는 거고, 배려받고 싶은 마음이 민폐로 치부되는 세상이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일본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배려조차도 "타인의 호의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마인드로 고착화된 것만 같다.

그래서 자리를 양보해주면 양손을 휘저으며 극구 사양하는 문화가 있다.

애처로울 따름이다.


スクリーンショット 2024-12-28 8.40.20.png

사진을 보면

1. 노약자 석임

2. 애들 양쪽으로 젊은 직장인 남성이 스마트폰을 하고 앉아있음

3. 그들 앞에 임산부뱃지를 단 여자가 서 있음. (빨간 동그라미)

이거, 현실이다.


スクリーンショット 2024-12-28 1.31.17.png 임산부 마크와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호소하는 포스터

제발좀 비켜주고 도와주고 하라고 온천지에 포스터를 붙혀놔도 씨알도 안먹힌다.



일본에서 자리 양보, 실화인가요?


일본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한국인 포함)도 임산부 마크를 달고 있어도 실제로 자리를 양보받는 건 체감상 20%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외국인이 양보해 줌)

젊은 사람들이 優先席(노약자석)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모습은 흔하고, 잠든 척, 스마트폰에 몰두, 못 본 척이 기본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눈에 띄게 배가 불러 있는 임산부에게 이렇게 야박할 수는 없다.

한국인은 보통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은 비워두는 게 일반적이고, 일반석라도 임산부나 노약자에게 자리를 잘 양보해 주는 모습에 일본 사람들이 큰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그럼 너네도 하면 되잖아.)


특히나 외국물을 먹어본 일본인들이 모국으로 돌아가면 이런 부분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한다.

スクリーンショット 2024-12-28 7.45.41.png

해석해 보자면,

이거 진짜 느끼고 있어요. 전철을 타고 있는 사람, 특히 통근할 때, 모두 굉장히 짜증이 나고, 굉장한 무관심감을 느낀다. 저번에 신주쿠역에서 문 열리자마자 밀려서 홈에 쓰러졌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던데? 다들 나를 밀치고 갔네. 일본 끝났다고 생각했어.(웃음)


덧붙여서, 도쿄에서는 부상자, 임산부, 노인, 유아를 동반한 어머니 등에 대해서도 차가운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노약자석에 젊은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글씨를 읽을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있거나, 버기를 눌러 힘들 것 같은 여성이 전철을 타려고 하면, 도와주기는커녕 성가신 듯한 얼굴을 하거나.



일본인의 "친절"이라는 이미지, 어디 갔나요?


일본인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배려를 받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
그 배려해 줄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한 것.

이게 일본에서 자리 양보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자리 양보는 단순한 호의나 배려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작은 실천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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