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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등학생들의 부카츠(部活動) 이야기

슬램덩크는 왜 그렇게 뜨거웠을까

by 소류

"슬램덩크, 하이큐!!, 케이온, 골 때리는 연극부... 사실은 부활동 이야기입니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 하이큐!!, 케이온, 골 때리는 연극부를 아시나요?

이 만화들의 공통적인 소재는 바로 "고등학교 부활동(部活動, ぶかつどう)", 일명 부카츠입니다.

일본의 학원물 만화는 거의 부활동 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얘네들은 체고도 아니고 특기생도 아니고, 프로 선수도 아닙니다.

그저 수업을 마친 뒤 학교에 남아 부활동, 서클, 동아리를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일 뿐이죠.

그런데 이 부활동 이야기에서 인생을 걸고 어록을 남기고, 감동을 줄 수 있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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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부카츠는 인생의 꽃 (高校の部活は人生の花)"

일본에서는 고등학생의 부활동이 단순한 취미나 여가 활동이 아니에요.

그건 작은 사회이자 인생 훈련장, 때로는 첫 번째 진심의 무대가 되기도 하죠.

전국대회(인터하이, 고시엔 등) 출전이 걸려 있고, 부장이 되면서 책임도 커지고, "인생의 마지막 클럽활동"이라는 인식에 더 애착이 강해지기도 합니다.

새벽에 등교해서 연습하고, 방과 후에도 남아서 연습하며, 주 6일 활동에 주말 시합과 합숙까지. 그 모습은 마치 작은 프로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부카츠를 통해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고,

처음으로 팀을 위해 울고,
처음으로 ‘함께’라는 걸 배우거든요.



"부카츠를 하는 진짜 이유"

1. 집보다 학교 중심인 문화

일본은 집보단 학교가 중심인 문화입니다. 부카츠는 그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증거가 되고, 그 안에서 인간관계도 배우고 사회화되는 거죠.

예를 들면 선배에게 인사하는 법, 팀워크, 눈치 보는 법 등 말이에요.


2.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가치관

일본 사회에는 "がんばれば報われる(열심히 하면 보상받는다)"는 식의 근면·성실 문화가 강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잘하는 것보다 '성장하는 것'에 감동을 받고, ‘하드하게 노력하는 과정’을 미화하는 경향이 크죠.


3. 입시, 취업에서의 어필 요소

"3년간 계속한 활동"은 일본에서는 끈기와 책임감의 증거입니다. 대학 추천서나 취업 면접에서도 부카츠 활동은 강한 어필 포인트가 되죠. 그러니 학생들도 쉽게 포기하지 못해요.



"한국의 부활동과는 좀 달라요."

부활동을 안 하면 어떻게 되죠?

강제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눈치 엄청 보이는 경우가 많죠.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만화부였어요.

물론 재미는 있었지만, 일본 고등학생의 부카츠에 비하면 특활 수준도 아니었어요.

일본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주 1회 클럽활동이 있긴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서야 비로소 '진짜 부카츠'가 시작된답니다.


한국 고등학생은 대체로 공부가 생존이죠.

방과 후엔 곧장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야 하고, 있던 체육수업마저 자습으로 돌려서 공부해야 하는 판에 부활동이 웬 말입니까.


그럼 일본 학생들은 입시가 없을까요?

물론, 한국 못지않게 빡세게 합니다.

『2월의 승자(二月の勝者)』라는 만화를 보면 그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어요.


다만 입시 시스템이 조금 달라요.

수능 같은 센터시험도 있지만, 학교 추천, AO입시(적성 중심), 내신, 면접, 논술 등 다양한 루트가 있고, "공부만 잘하는 학생보다, 꾸준히 성실하게 부카츠를 해온 학생"이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하죠.

그리고 대학이나 기업에서는 인간관계, 협력, 성실성 같은 걸 더 중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공부를 조금 못 해도 사회성 좋고 부카츠 경력 좋은 학생이 취업을 잘하는 경우도 많아요.


실제로 제 일본인 지인 중에는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주장을 맡은 친구가 있어요.

좋은 학교도 아니었고 성적도 보통이었지만, 야구부가 있는 오릭스에 사무직으로 입사했어요. 야구부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은 거죠.



"부카츠의 그림자: 블랙부카츠(ブラック部活)"

물론 부카츠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일본에서 사는 한국 엄마들은 "낼모레 입시인 울 애가 공부는 안 하고 새벽부터 부활동 하러 간다. 이거 꼭 시켜야 하는 거냐!"라며 답답함과 걱정이 뒤섞인 분노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전통을 중시하다 보니 여전히 지도교사나 선배의 폭력, 군대식 시스템, 강제 참여도 있고, 과도한 시간 소모로 학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해요.

그래서 "부카츠 개혁"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고, 최근엔 사카츠(サークル: 서클 + 부카츠)라는 더 자율적인 활동 형태도 점점 증가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부카츠는 그들의 전부일지도"

세대가 바뀌며 조금씩 유연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 고등학생에게 부카츠는 학교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업보다, 시험보다, 오히려 더 깊이 인생을 바꾸는 경험.

그들은 어떤 순간엔 공부보다 더 소중한 걸 부카츠에서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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