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33] 남아있는 나날 - 이시구로 가즈오

by 소류

어쩐지 책이 잘 안 넘어가더라 했다.

배경은 영국이지만 진짜 오리지널 일본인이 쓴 책이다. 확실히!!!!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집사 스티븐스가 평생 ‘품위, 의무, 충성’만 붙잡고 살다가 정작 "자기 인생, 감정, 사랑, 판단을 다 놓쳤다"는 내용





영국 대저택 + 집사 + 2차 대전 전야 + 정치적 분위기가 있어서 은근 역사물이고 권력암투도 나오나? 재미있겠는데? 싶었는데, 이 모든 건 스티븐스의 맹목적 충성과 자기기만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일 뿐이었다.


망할... 속앗!


독자는 자신의 감정에게 솔직하지 않은 스티븐슨에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그처럼 사는 게 "편한"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다. 특히 일본에는...


나는 스티븐슨이 책임회피의 전형적인 일본인이라는 느낌이 더 컸다. (영국이 배경이긴 하지만)


일본회사는 수직사회라 충성, 자기 자신을 하나의 부품으로 생각하고, 조직의 논리를 먼저 앞세우는 게 많아서 회의할 때도 자기 의견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책임지기 싫어서 매뉴얼도 많고, 도장도 많이 찍고, 의견도 내세우지 않는 일본회사...

그런 조직과 문화, 일본인의 성향을 비판하는 작품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다른 생각도 들었다.

니 맘대로 하세요. 소심한데 어쩌겠어요. 책임회피하는 사회에서 모두 본인이 선택한 거잖아요?


냉정하게 보면 스티븐스는 아무 생각 없는 인간인 것도 아니다.

좋은 집사가 되는 걸 인생의 최고 가치로 삼고, 달링턴 나리를 잘 섬기며, 역할수행은 엄청 잘해왔잖아.


한마디로 말하면 한 회사에 평생을 일하면서 충성을 다했고, 회사가 원하는 직원상인건 확실하다.

감정 표현이 적고, 일과 책임에서 보람을 느끼며, 부품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생각보다 꽤 많다.

그러니까 스티븐스가 그렇게까지 안쓰럽지는 않다는거다.

그는 자기 나름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사람이고, 그 결과를 맞이한 것뿐이다.


다만, 내가 이 책을 고구마 백만개라고 느낀 이유유가 있다.

스티븐스의 삶을 마치 엄청난 비극처럼 포장하고 있다는 것!


“에, 뭐랄까,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
하는 식의 구절들이 보이더군요.”


스티븐슨이 켄턴 양에게 받은 편지에서 이 내용을 읽고, 자신도 공허함을 느꼈기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그녀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찾아오면 뭐 하나. 정작 해야 할 말은 못 하는데!

다 지팔지꼰이고, 지 선택이고, 지 성격인 거다.

어쩌겠어. 평생을 이렇게 살아 왔는데...,


결정적으로 스티븐슨이 또라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주인이 유대인 하녀 두 명을 해고한 후, 좀 지나서 걔들 어디 있는지 알아봐라. 내가 잘못한 거 같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관해서 스티븐슨이 켄턴 양과 대화하는 부분이 있다.

졸라 비겁한 새끼. 저 말이 사실인지 믿지도 못하겠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벤 부인이 된 켄턴 양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기 직전에 그녀가 "당신과 잘될뻔했는데 아쉽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때도 이 비겁한 놈은 이러고 있다.

아, 마, 치아라!


울면서 떠나는 켄턴 양

다시 한번 더 말하겠지만

자기 나름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사람이고, 그 결과를 맞이한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부커상 수상작이고, 영화도 있고, 문학적 완성도는 알겠는데, 상 받을 정도인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