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문윤희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평생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붙잡으 려고 애쓰고 영원히 친구이기를 갈구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곁에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가기 마련이 다.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줄을 한쪽에서 놔버리면 잡은 쪽은 넘어진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늘 줄을 잡고 넘어지는 쪽 이었다.
줄다리기 게임에서 이겼다 한들, 넘어진 나는 느슨해진 줄을 붙잡고 허망함에 눈물 흘리기를 반복해 왔다. 느슨해진 여러 개의 줄을 과감 하게 놔버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여전히 얇은 실 한 가닥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걸 줄을
놓고 떠나간 많은 친구는 알고 있을까, 하지만 모두가 떠나간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이 팽팽하게 줄을 당겨주는 친구도 분명 있었다.
지금도 내 옆에서 더 열심히 당기라고 응원해주는 그녀처럼.
중학교 시절부터 방송부 생활을 해오던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 자연스레 방송부 오디션에 지원하고 방송부원이 되었다. 학교에 교실이 아닌 어떠한 내 공간이 생기는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그런 공간을 나는 중 학교 3년간의 방송부 경험으로 탄탄하게 다져놓았다.
방송부 이름을 만들 고, 문패를 새로 달고 사연함을 만들고 방송을 시작했다.
그렇게 애정과 시간의 노력이 듬뿍 담긴 공간이었는데, 같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친구들이
하나둘 나가게 되고 방송부가 흔들리고 있을 그즈음, 2학기 시 작 무렵이었다.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등교와 동시에 교실에 가방을 던지고 방송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던 방송실, 혼자지만 왜인지 모 를 어색한 기류가 흘러던 그때 여태 다져놓은 방송실이라는 공간에 새 멤 버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그 친구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결심한 듯 꾹 다문 입이 내비치는 듯했고 또렷하게 뜬 눈은 나의 표정과 분위기 에 지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세 알 수 있었다. 마스크 속에 숨 겨둔 입은 어떤 인사를 먼저 건넬까 고민하며 떨고 있었다는 것을, 또렷 하게 뜬 눈은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힘들게 다져놓은 공간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나는 모든 것이 달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시작되었고 나는 경계를 더 올린 방면,
그녀는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고, 의 견을 낼때도 그저 조용히 피력할 뿐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의욕이 넘칠까 걱정했던 나에게 갈수록 큰 숙제같던 그녀였다.
반대로 의견이 없고 의욕이 없었기에.
그러나 그것은 뒤에서 조용히 모두의 생각을 적어 정리 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던 그녀의 특성이란 것을 알았다. 묵묵히 의견을 수렴하고 주도하던 그녀였다.
어쩌면 방송부의 분위기를 이 끌어 간건 폭발적인 열정으로 뭉친 나보다는 조력자 역할을 하던 그녀 였 을 것이다.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고 본인의 의견을 전달하여 상대를 안심 시키는 것은 사실 쉽게 느껴지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도 잘 못하 는 것 중에 하나고. 그녀는 그것을 늘 해냈고.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여전히 방송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녀와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졸업 전 마지막 학교 축제기간, 우리는 방송제를 준비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욕심과 열정으로 만들어낸 결과였지만. 학교에 남아 동영상을 찍고 편집을 하고 굉장히 바쁜 작업이 이어졌지만 어쩐 일인가 그녀는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왜인가 보니, 축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놀라움에 당황한 내 표정이 그대로 전해졌으리라. 단연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조용히 또 묵묵히 본인의 자리를 지 키며 작은 일탈도
아끼던 그녀였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축제에 오르기 전 강당에서
오디션을 진행하던 때 마이크와 장비 세팅, 음향작업을 위해 강당 방송실에서 지켜보던
그때 얼마나 떨렸을까 모르겠 지만 그녀는 알까 좁은 강당 방송실에서 내가 더 떨고
있었다는 것을. 오디션에 합격하고 축제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 그녀는
그날부터 축제 기간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방송제 준비로 아주 바빴지만, 같이 노래방도 가고 방송실 한편에서 관객이
되어 노래도 봐주고 당시 참 바빴지만 흥미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축제 당일, 오후에 있을 축제 공연을 위해 체육관으로 가서 세팅하고,
음향을 정비하고 리허설을 하고 일이 정말 많았는데 그 와중에도 내 손에선 땀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참가자도 아닌데 더 떨어서였다.
공연이 시작되고 당당히 첫 번째 무대에 오른 그녀는 쥐색의 원피스를 입고 담담히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를 틀던 내 손이 엄청나게 떨고 있었는데 실수 안 해서 참 다행이다.
방송부원으로서 축제에 참여했던 일이 행복했고 선물 같은 추억으로 남아 여전히 떠오르는 그것조차 감동으로 전해오는데 한쪽에서 노래를 틀던 나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녀도 서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그 노래를 흥얼거렸고 여전히 그 얘기를 한다. 지금은 놀림거리 아닌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당시 조용함 속에 있던 그녀 의 당당함은 그때를 시작으로 아직도 빛나고 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 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당당하게 추억하라고 다시 말해주고 싶다. 계속 친구로 지내고 있음이 정말 감사한 그 친구에게 말을 강하게 뱉어 상처 주는 일도 많았고 서로 서운한 일도 많았을 테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히
버티고 서 있는 그녀 를 보면 존경스럽고, 대견함도 공존한다.
사회생활 5년 차에 접어든 그녀 는 내 친구 중에 가장 먼저 운전을 시작했는데,
운전도 5년차로 차 운전은 잘하지만 여전히 자기 앞길 운전은 서툴러 가끔은 운전대를
나눠 잡아야 하는 사람이고 당당함이 빛나지만, 눈물이 너무 많아서
때론 다독거림 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서로 팽팽하게 잡은
밧줄을 놓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 또한 놓지 않을 것이다.
일상에 지쳐 고향의 따듯한 바람을 느끼고 싶어 내려가면 누구보다 먼저 와 반겨주는,
못다 한 얘기 나누며 공감을 주고 안심을 시켜주며 또 꿈을 주는
그녀는 내가 고향에 내려가는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고등학교 방송실,
2학기 시작의 그즈음부터 지금까지 서로를 바라 보는 친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