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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현 Jan 30. 2023

이심전심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이현주

복학하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을 때, 중국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공부했었는데, 그때 엄청난 흥미를  붙여서 그 어떤 과목보다 반가워했었다. 또 학교가 끝나고 특별 강의도  신청해 중국어를 배우고자 노력을 했다. 

그 정도로 중국어에 엄청난 흥미 를 느끼고 매력을 느끼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중국에 갈 수 있는 프로그 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이미 그전에 학교에서 한 달간 단기  체험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한 달간의 꿀 같은 맛보기는 성에 차지 않 았다. 꿀을 통째로 가지고 찍어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한 달 동안 다녀왔던 지역에 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아서 바로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청 후에야 알았다. 우리 과는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가 없 었다. 

학교에 특성화된 학과가 있었는데 해당 학과 친구들만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나는 정말 놓치기 싫은 기회여서 중국어 교수님을 찾아 가 설득을 하고 수업도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렇게 얻은 너무도 값진 기 회였다. 장기간의 어학연수 경험이라니 대학생이니까 

더 여유롭게 가능하 다고 생각했고, 내 인생에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오겠나 생각했다.  

너무나 행복했다. 그렇게 떠나게 된 타국에서의 생활, 우리 학교에서는 나까지 14명이 중국에 갔지만 나 혼자 남자라서 중국 학 교 4인 1실 기숙사에서 다른 학생들과 방을 쓰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다 른 학교 학생들과의 동침이 시작되었다. 

중국 학교에서 학교생활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정말 이게 꿈이라면 깨어나 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더웠던 한여름의 쿵후수업시간, 그날도 수업을 겨 우 마치고 기숙사로 향했는데, 

남자 기숙사인 우리 방 거실에 처음 보는  여자 두 명이 앉아있었다.

 방의 누군가와 같은 학교 학생이겠거니 별생각  없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내 할 일을 했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 세 시간 이 지나도 거실에서의 웃음소리는 끊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나까지 거실로 나오게 하는데 충분했다.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과자를 먹으며 

중국에 오게 된 계기라던가 공부를 얼마나 했다던가 요새 학교에서 생활이 어떠한가 

중국 어디에 가보았는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 는데, 중국어라는 또 중국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뭉친 우리였기에 더욱더  즐거웠던 것 같다. 


그중 그녀가 섞여 있었는데 그녀와 나는 웃음 코드가  비슷했다. 

모두가 웃지 않을 때도 서로만 웃고 있었고 대화 또한 너무 잘  통해서 중국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싶었다. 첫 만남부터 이렇게 즐거 울 일인가. 

첫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수차례 또 모여 기숙사에서 이야 기꽃을 피웠고, 

그녀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눈만 마주쳐도 서로 배가 찢어져라 웃었고, 그 넓디넓은 학교에서 

(너무 넓어서 후문에서 택시 타고 정문에서 내려  등교한 적도 많았다) 

우연히 마주치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특히나 방과 후 운동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학생 속 

마주치는 일이 많았는 데 같이 운동장을 돌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타국에서의 학교생활에 

활력 소라고 해도 충분했다. 후에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시내에 있 는 호텔에 실습하러 가게 되었을 때, 거리가 제법 멀어지게 되고 다니던  

중국 학교를 떠나게 된다는 아쉬움에 얼마나 속상했던지. 

앞으로도 학교에 남을 그녀와 친구들, 너무나 헤어지기 싫었다. 


학교를 떠나기 전날,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그녀와 자주 먹던 황먼지를 먹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고 호텔에 간 이후에도 연락을 꾸준히  이어갔다. 

물론 그 후에 중국에서 만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한국으 로 돌아온 후에도 서로 

살기 너무 바쁘고 무엇보다 지역이 많이 멀어 접 점이 없어 연락만을 하고 있었는데,

 오가는 연락만으로도 가끔 하는 전화 에 서로 얼마나 웃었는지 여전히 중국에 있는 듯했다.


후에 한국에 돌아 오고 3년이 지난 후에야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서로가 여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어색함도, 불편함도 없었고 서로 너무 많이 알기에  편안함과 

익숙함이 공존했다. 무엇보다 반가움이 너무도 컸다. 중국어 전 공이었던 

그녀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쾌하고

 본인의 자리에서 꿈을 키우며 너무도 대견하게 살아가고 있고, 웃음은 여전히 많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은 중국에서라고 난 자부할 수 있어, 

그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서로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하겠지만 그런 게 우리를 더 즐겁게  해주잖아, 

늘 웃으면서 보자 오래오래. 


그리고 중국에서 중국어 전공이라 고 처음에 중국어 할 때 진짜 멋있었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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