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전우승
학창 시절 나는 특히나 성격이 유별났다. 화가 나면 있는 그대로 표출해야 했고,
기분이 몽땅 표정에 나타나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나와 함께 했던 친구들은 나에게 “왜 내가 너의 기분이나 성격을 맞춰야 해?”
라고 많이 떠나갔으며, 내가 저지른 일들에 나는 또 혼자 우울해 상처를 받아왔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던 건지, 하늘은 늘 이런 나에게도 몇 명의 친구들을 남겨주었는데
그게 바로 그 녀석이었다. 친구 사이에도 질투는 있다.
사랑과는 다른 감정으로 너무 좋아해서 느껴지는 당연한 감정이.
녀석과는 정말 많이 싸웠다가 화해하고 또 싸웠다가 화해했다. 군대에 가고 자대를 배치받았을 때 배를 타게 된 나는 가장 먼저 이력을 적게 되었는데 질문에
‘본인이 살면서 가장 친한 친구를 적으라는 칸’이 있었다.
비상 연락망이라는 투박한 어투를 대신해 본인이 살면서 가장 친 한 친구를 적으라는 질문에
나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친구의 이름 세 글자를 적고, 연락처 수첩을 보지 않고도 바로
번호를 적어냈다. 여전히 외우고 있는 집 전화번호까지도. 그런 친구다.
내 인생에서 친구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일 것이다. 그 정도로 값 진 친구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어엿한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그때부터 우리는 같은 반 동급생이었다. 5학년 12살이 되던 해, 우리는 그때부터 진짜 친구가 되었다.
잘 맞았다. 사실 내가 잘 맞춘 거로 생각했는데 그냥 그 친구는 나였고 나는 그 친구였다고
할 만큼 비슷한 구석도 많았고 닮았었다. 중학교에 같이 입학을 하게 되었고 친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모든 걸 함께 하기 시작한 그 친 구와 작은 무리를 만들어 놀면서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했고 가히 중학교 2학년 때는 내 학창 시절 중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아니 우리들의 전성기였다. 교실에서 모든 걸 주도하고 분위기를 휩쓸고 다니던 그때도 우리는 하루하루가 함께였다.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하고 중학교 3학년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인생의 첫 번째 위기에 돌입했을 때도, 서로가 힘이 되었기에 조금은 그 시기에 덜 예민하지
않았을까. 성적에 맞춰 고등학교를 배정받게 되었을 때, 나보다 공부를 잘하던 그 친구는 당연히 나와 다른 길을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어찌한 일인지 나와 같은 학교에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느껴졌고 내 인생이 밝게 빛나 는 것 같았다고 하면 웃을 일일까, 정말 그때는 그 정도로 행복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신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같은 반을 만들어 주시다니! 8개의 반이나 있는데 같은 반이라니!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누군가가 함께한다는 것은 매일의 등굣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함께 하며 많은 친구와 다시 무리가 되어 놀게 되고 꿈꾸는 듯한 즐 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친구 사이에도 질투는 존재한다. 내가 먼저 친구였는데 라는 생각의 작은 불씨가 시작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질투의 화가 불타게 되고 그것은 사건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불을 꺼줄 누군가가 없다면 더더욱 커다란 불로 번지게 되듯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지만,
엄연히 다른 사람이고 많은 것을 달리했다. 친구를 사귀는 방식도, 같이 노는 과정도
부딪히기 일쑤였고 관계에 지쳐가고 한쪽이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당시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고등학교 1학년 내 모습을 상상하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고 다른 길을 가게 되고,
친구라는 수식어가 낯설어졌고 더는 연락이라는 행위조차 사라져 갔다.
함께했던 많은 추억은 뒤늦게야 나타난 소방관이 불씨조차 남기지 않 고 시원하게 꺼버렸다.
나는 그 친구 잘못이라고 몰아갔고, 뿌린 대로 거 둘 것이라며 악담을 하고 희미하던
관계마저 털어내고자 했다.
그렇게 남이 되어 생활했는데 졸업이 가까워질 즈음 그 친구는 언제나 그 랬듯이 먼저 다시 말을 걸어왔고, 친구라는 타이틀을 내게 내밀었다. 소심하게 타이틀을 받아 들었던 그때 다시 친구가 되었고, 대학을 같이 경남으 로 가게 되었을 때는 다시 한번 이건 엄청난 일이라고 찬양했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 신은 있었던 것일까, 타지생활의 외로움을 유일하게 달랠 수 있는 안식처가 돼주고 가족이 되어줘서 힘든 대학 생활에 작은 희망을 주던 그 친구.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술버릇이 고약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기억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을 것이고. 아 물론 지금 은 아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술로 인해 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버렸고 온전한 내 잘못으로 친구를 잃게 되었다. 술이 원수라는 말은
나에게 지칭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다시 연락할 용기도, 친구가 될 희망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4년의 세월이 지났다. 복학하고 그 친구가 없어도 힘든 타지생활을 견뎌낼 만큼
견고해지고 성장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취업을 하고 다시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진정한 타지생활에 힘듦은 그때부터라는 걸 몸소 느끼며 사회라는 벽에 부딪혀 깨지고 다친 내 모습에 수차례 좌 절을 일삼고 있을 때, 그 친구는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 정도면 신은 존재했다. 그 친구도 내가 있는 지역으로 취업을 하게 되 었다.
이 무슨 신의 선물일까 장난일까? 이미 너덜너덜해진 꿈을 겨우 끝 자락 힘겹게 쥐고 있던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다른 손으로 그 친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고마웠다.
여전히 지금도 나는 미안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당연하게 사회에서도 함께하게 된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 안에 친구로서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 서로 상처 주고 긁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이게 원수인가 친구인가 헷갈 리기 다반사지만, 편해서 진짜 내 사람이라서 행동이, 말이 막 나가는 것 도 서로가 알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친구에게 심하게 말을 뱉고 짜증도 낸다. 그래도 함께일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그 친구라 는 거 전해주고 싶다. 정말 닮은 구석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저리 가라 밀어내지만,
초, 중, 고, 대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까지 어쩌면 내 과거 현재 또 미래까지 기억과 추억이 공존하는 그곳까지 나와 늘 함께할 사람. 앞으로도 늘 함께할 수 있길.
너의 삶에 정말 승리만이 있길 바라. Vi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