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번아웃 극복기1
요즘 유튜브에서 타로카드 리딩을 즐겨 듣고 있다. 카드 리더들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잠이 솔솔 와서 불면증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에게 세상 그 누구도 해주지 않는 긍정적인 멘트를 많이 해준다.
"1번 분들은 올해 금전운이 들어와서 생활이 안정되고 편안해지실 겁니다."
"3번 분들은 지략과 자질이 매우 뛰어나게 타고나셔서, 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실 겁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대운의 시기가 들어왔습니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에 너무나 좋은 시기라고 합니다."
마구잡이로 수없이 듣는 리딩들이라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긍정의 멘트들은 내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저게 정말 내 얘기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가, 아냐, 나에게도 저런 일이 찾아올 수도 있지,나라고 언제까지 매일 똑같이 살라는 법이 있나 맘을 고쳐먹기도 한다.
가끔 카드 리더들은 나의 상황을 족집게처럼 맞추곤 한다.
"4번 분들은 인간관계에서 받으신 상처가 있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 카드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움직이시고, 운동이든 산책이든 취미든 새롭게 시작할 때라고 합니다."
이렇게 운동 부족이 심각한 나의 상황을 콕 짚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여러분을 오랫동안 알고 있던 친구, 지인들이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로 인해 괴롭고 힘든 마음이 있었어도 지난 일은 훌훌 털고, 관계도 새롭게 시작할 때라고 합니다."
그래. 침체된 일상이 너무 오래되기는 했다. 새해가 됐으니 용기를 내어 연락을 돌려보자. 챙겨야 할 사람들이 몇몇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현관문을 나서는 일이 좀 힘겹다. 설거지, 빨래, 청소 등 나가기 전에 해놓아야 하는 일들이 있기에 그것들을 막상 하고 나면 진이 빠져나가기가 싫어진다. 사실 집안일을 팽개쳐 버리고 나서면 그만인데, 성격상 그러지 못하는 내 문제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도 두려워졌다. 옆 단지에 사시는 시부모님과의 잦은 만남, 재인이와 매일 보내는 일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을 에너지가 고갈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일을 할 때나,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고 만나자고 하는 일이 몇 년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나의 근황을 말해줄 자신이 없었다. 어쩌다 나온 일의 결과물이 나의 눈에 차지 않아 자랑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근근이 이어오던 일거리들도 심각한 번아웃이 오면서 이사를 핑계로 싹 정리해 버렸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프리랜서의 나의 삶도 점차 메말라 갔고, 업계 소식도 잘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작년 하반기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재인이가 어느덧 커서, 엄마가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에는 나에게 매달리기를 체념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된 까닭이 컸다.
변화의 물꼬가 트이자 급물살을 타기로 했다. 어디서 그럴 힘이 났는지, 나는 내가 원치 않고 나를 병들게 했던 주변의 것들을 한방에 정리했다.
우선 시댁과의 교류를 확 줄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만남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딸아이에게 나의 권리를 주장했다.이젠 엄마의 시간이 찾아왔다고, 엄마도 할머니가 되기 전에 엄마의 꿈을 향해 가야겠다고,그러니 앞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혼자 해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요새 좀 더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력을 끌어올려 보려고 하면 얼마 안 가 재인의 방해 작전이 들어오곤 한다. 그럼 어김없이 크게 다투고 서로의 마음은 깊이 상하고 파헤쳐져 육아도 일도 망쳐버린 저녁을 맞이해야만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땐 너무 어린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탓했고, 결국 잠자리에 들면서는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컴퓨터 앞에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리고 이젠 엄마 일해야 하니 방해하면 안 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다. 줄다리기와도 같았던 아이와의 관계에서 조금씩 균형을 찾게 된 것이다.
남편과도 심리적 거리를 두었다. 식어버린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용기를 낸 데에는 타로 리더들의 북돋움이 있었다.
"여러분,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여러분 자신을 지나치게 내어줄 필요는 없으십니다.
필요할 때에는 방어벽을 치셔서 나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가족들을 에너지 뱀파이어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언짢기도 했다. 하지만 병들어 가고 있던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만 했다. 나를 위해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내 가족도, 내 부모도, 나 자신조차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가족들과 심리적 거리를 두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난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이렇게 블로그 안에서 뭔가를 끄적거리기도 하고, 지인들을 만나 솔직한 내 상황을 털어놓기도 한다. 얼마 전엔 오랜만에 문래동 엄마들을 만나 노닥거리기도 했다. 그마저도 내겐 용기가 필요했다. 밖에서 커피값 쓰는 게 제일 아깝다고 시어머니로부터 수십 번은 들은 것 같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지만 같은 얘기도 수십 번 들으니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 단단한 껍질처럼 들어앉아 버렸다. 사랑하는 마음에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에 하시는 말씀이라는 걸 알지만 이젠 그만 들어야겠다.
여전히 몸은 무겁고 현관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질긴 번아웃을 조금씩 극복해 나갈 것이고, 새로워질 것이다.
"여러분 잘하고 계신지 카드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아~ 너무 잘하고 계신답니다.
지금처럼 나 자신을 믿고 내 직관대로 행동을 이어가시라고 카드가 이야기합니다."
'Sword10'이라 불리는 카드이다. 누워있는 사람에게 꽂힌 열 개의 검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 카드는 모든 것이 끝나고 새롭게 시작할 때임을 알려주는 카드이다.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eumyangtarot/2231698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