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입국한 우리는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행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하늘에 담요를 덮어씌운 듯 구름이 두텁게 내려앉기 시작했고, 마지막 날에는 급기야 눈이 펑펑 내렸다.
3박을 하면 오로라 확률이 97%이라 했던 여행사 광고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오로라를 보는 데 실패했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3박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둘째 날 밤 차로 이동하며 오로라를 쫓아다닌 경우 오로라 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날 밤에는 우리도 헌팅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하지만 눈은 내리고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신청을 해놓고서도 사실상 마음은 이미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눈만 보면 신나 하는 재인이를 위해 깨끗한 산속에서 눈 놀이나 실컷 시켜주자는 마음으로 갔다. 뽀얗게 눈이 내려앉은 곳만 보이면 '여기 누워도 돼?'하고 수없이 물어봤던 재인이다. 아무리 옐로나이프가 청정한 곳이라 해도 길가에 누워도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눈 덮인 산속 호숫가에 도착했고 이곳에서는 실컷 뒹굴고 눈을 뿌리며 한참을 놀았다.
사실 걱정도 좀 됐다. 막상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니 이렇게 눈 오는 날 밤 아이를 데리고 산속을 차로 헤집고 다니는 게 잘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질문은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혀왔다. 길을 건널 때나, 사다 놓은 식자재가 떨어져 버렸을 때나, 체크인하고 숙소에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을 때나. 하지만 느릿느릿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나의 마음은 차분해졌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불속처럼.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호숫가였다. 가이드가 장소의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기억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주변이 너무 캄캄해 핸드폰 불빛이 아니고서는 발걸음을 내딛기 힘들었다. 하지만 눈이 적응이 되자 나지막하게 굴곡진 산자락과 그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예쁘게도 났다.
가이드는 중국인이었고 그전에 만났던 일본인 가이드보다 영어도 능숙하고 성격도 쾌활했다. 우리를 호수로 데려가 눈을 동그란 모양으로 치워준다. 호수의 표면은 얼어있지만 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고, 작은 곤충과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날이 더 추워지면 이곳에서 얼음낚시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는 강추위에 대비해 왔다. 내복도 챙겨 오고 방한복도 빌렸다. 하지만 이곳 날씨는 불로거들이 겁주던 것만큼은 춥지 않다. 유독 우리가 머무는 동안 날이 풀려있기도 했다. 문득 이곳에 오며 오로라를 볼 꿈에 부풀기보다는 추위를 걱정한 나 자신을 떠올리며 조금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그날 깊은 산속, 눈발이 무성하게 날리고 있었지만 무척 따뜻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날 밤 재인이는
"엄마, 오로라를 보지 못했지만 나 정말 좋았어."
라고 했다가, 다시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오로라를 못 본 서운함에 조금 훌쩍였다.
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