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힘들면 우셔도 돼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셔도 돼요."
자면서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타로리딩인데 오늘따라 멘트가 귀에 꽂힌다. 캐나다에서는 항상 새벽에 잠을 깨고 그럴 때면 나는 자는 아이 옆에서 타로 리딩을 틀어놓거나 컴퓨터를 연다. 그래, 난 이 오랜 여행의 여정에서 무척 춥고 외로워. 모든 것이 그저 돈이고 사람들은 상투적인 눈빛을 서로 교환할 뿐이야. 카드 지출 메시지는 수시로 울리는데, 그 대가로 얻는 경험은 나의 마음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옐로나이프는 해가 무척 늦게 뜬다. 아홉 시인데도 새벽처럼 하늘은 어둑하다. 안 그래도 새벽 두 시까지 오로라를 보러 산행을 다녀온 터라 호텔에서는 늦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해는 또 빨리 진다. 오후 세시도 안돼 하늘은 이미 노을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레스토랑을 가려면 행군을 해야 한다. 차도 사람도 드문 거리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무척 길다. 레스토랑을 다녀오면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뮤지엄이나 갤러리 관람도 10분이면 끝난다. 그래서 나는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옐로나이프 여행은 늦은 밤 잠깐 동안 오로라를 즐기기 위해 길고도 우울한 나머지 하루를 견디는 일이라는 걸.
두껍게 내려앉은 구름처럼 마음도 내려앉아버린 이곳에서 그나마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은 따뜻했다. Bullock's Bistro라는, 한국인 관광객이 한 번씩은 찾아가는 식당이다. 나는 이곳이 아니면 남는 시간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해 두 번 방문했다. 밥값은 다른 식당의 두 배인데도 말이다. 이곳은 현지에서 잡히는 생선요리와 버펄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세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명함이나 지폐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벽에 빼곡하게 적어두었다. 이곳에서 왜 온기를 느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벽에 적힌 빼곡한 메모 덕분인 건지, 붐비는 시각 같은 테이블에 같이 앉았던 일본인 아주머니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였는지, 한국인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라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역시나 음식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추운 날씨에 덜 익은 소고기를 먹으면 어김없이 체하는 나이다. 살짝 피가 보이는 굽기의 버펄로 스테이크를 보고 겁이 났었는데, 먹은 뒤에도 전혀 뒤탈이 없었다. 게다가 소고기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향이 좋았다.
시간을 때우기에 음식만으로는 버거워 와인 한 잔을 주문했더니 투박한 유리컵에 가득 담겨 나왔다. 여행을 온 이래, 맥주는 공항에서 짐 부치고 난 뒤 더워서 딱 한 번 마셨을 뿐, 와인만 여러 번 마셨다. 날이 추워 맥주 생각이 잘 안나기도 한다. 재인이와 살짝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와인 몇 모금 들이키면 분위기가 풀어지곤 한다. 재인이는 엄마가 술을 조금만 먹으면 잘 웃고 말도 많아져 좋다고 한다. 어린아이에게 벌써부터 술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Bullock's Bistro 길 건너에는 호수가 넓게 펼쳐져있다. 처음 갔을 때는 깡깡 얼어있었는데, 두 번째 갔을 때에는 날이 풀려 슬러시가 되어 있었다. 호숫가 얕은 얼음은 밟으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깨진다. 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부딪히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가 흩어졌다. 간혹 아직 남아있는 두꺼운 얼음에 균열이 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옛날 어느 인디언 부족은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깊은 산속으로 데려가 몇 달을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침묵을 가르치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재인이는 바지런히 입과 몸을 움직이며 감각의 극치를 경험하는 중이다. 호숫가의 얕은 얼음을 모조리 깨버리고 크고 작은 돌을 계속 던진다. 다음날 이곳에 왔을 때 물은 대부분 녹아있었고 재인이가 깨뜨려놓은 얼음조각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던져 놓은 돌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