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의 마지막 이틀

by 정윤희

우선 스탠리 공원에서 자전거를 탔다. 어느 도시를 가든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나의 계획은 그때까지 실행할 수 없었는데, 암스테르담과 파리에서 지나치게 다른 자전거들이 쌩쌩 달린 데다가, 빌릴 수 있는 공유자전거는 나나 재인이에게 사이즈가 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말고도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대체로 보기 드물었었다. 괜히 한 달 동안 헬멧만 무겁게 지고 다녔다는 허탈함을 안고 있던 차에 스탠리 공원에서는 자전거를 대여해 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은 맑고 단풍은 절정이었으며 스탠리 공원은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국인 직원이 지도를 건네주며 코스를 안내해 주었다. 원래 내가 타던 것보다 사이즈가 큰 자전거에 올라 처음은 비틀거렸지만 곧 적응이 되었다. 공기도 맑고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아쉽게도 자전거 길은 비좁았다. 특히 절벽을 만났을 때 그랬다. 총 한 시간 반 코스였지만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어서, 가다가 끼니때가 되어 밥을 먹어서, 둘 다 좁고 긴 코스를 달리다 지쳐서 끌고 오느라 네 시간 걸렸다. 재인이는 힘들다며 좀 울먹거렸지만, 나는 캐나다의 마지막 풍경을 천천히 담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뒤쪽 절벽 코스는 속초 앞바다 같더라고요."

"정말 그렇죠, 어머니? 저는 처음에 봤을 때 좀 실망했어요. 속초 앞바다는 물이 맑잖아요. 근데 여기 물은 구정물이에요. 하하하."


자전거 렌탈샵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은 나를 처음 봤는데도 참 시원시원하게 대꾸를 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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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반납하고 구도심의 가스 시계탑을 보러 갔다. 한두 블록 건너 한 번씩 걸인들이 보인다. 그건 네덜란드에서도,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입장이기에. 하지만 아이는 처음처럼 많이 놀라지 않는다.


"엄마,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된 거야?"

"글쎄."


그 이유를 속으로 열심히 추측해 보았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고 복지정책도 우리나라보다 훌륭하니 말이다. 이십 년 전 왔을 때는 이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민자들, 소수민족이 생활고로 거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쨌거나 시계탑이 박힌 거리에는 가로등과 조명들이 반짝거렸고, 가게의 쇼윈도에도 크리스마스 소품이 가득했다. 세계 최초 증기 기관 시계는 삼십 분에 한 번씩 공기를 가득 품은 채 익숙한 멜로디들을 연주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재인이와 예쁜 거리를 산책하며 가족들을 위한 자그마한 선물들을 샀다. 예쁜 단풍잎 모양의 캔디도 사서 하나씩 물고 다녔다.


기분 좋게 산책하고 쇼핑만 했어도 족한 거리였는데, 다음 날 아침을 해결할 음식을 샀어야 했기에 막판에는 슈퍼마켓을 찾아 총총거렸다. 해외에서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건, 그날의 끼니, 다음날의 끼니를 급급하게 해결하는 것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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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다음 날 아침, 그랜빌 아일랜드의 항구에 갔다. 전체적으로 수산 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 역시나 한국인이 많이 찾아간다는 한 가게를 찾아가 커다란 가재 한 마리와 굴 12개를 주문해 놓고, 가재가 삶아지는 동안 시장을 둘러봤다. 수제 초콜릿과 파스타 생면, 말린 소시지 등 다음날 떠나지만 않았다면 잔뜩 사가고 싶은 식자재들이 펼쳐져 있었다.


조리된 가재를 포장해 주는 점원에게 시장 안에서 먹어도 되냐 물어보니까 당연히 된다고 한다. 블로그에는 보통 옆집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더 주문해 같이 먹는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시킨 양이 너무 많았기에 시장 내 취식 공간으로 가기로 했다. 주로 간단한 수프나 빵을 먹고 있던 이들의 사이에서 우리는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가재를 뜯었다.


"엄마, 사람들이 다 우릴 쳐다봐."

"괜찮아, 부러워서 쳐다보는 거야."


이 대화는 먹는 동안 여러 번 반복되었다. 가재는 먹어본 것 중에 사이즈가 가장 컸고, 가격은 한국 시세보다 약간 저렴한 듯하다. 나는 집게발 하나와 내장을 주로 먹고 나머지 하얀 살코기는 재인이가 다 먹었다. 맛이 참 좋았다. 굴도 내장 부위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야들야들하고 시원한 맛이 났다. 함께 마시려고 사온 화이트 와인 마개가 열리지 않는 바람에 와인 없이 먹는 해산물이었는데, 비릿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와인을 괜히 샀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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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를 먹고 나서도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많이 내리지는 않았고 마침 배도 불러서 걸어서 쇼핑몰로 구경 가기로 했다.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넌 후 17분 정도 걷는 코스였다.


"엄마, 우리 오늘 마지막이야."

"그러네."

"학교 가기 싫어."

"친구들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

"아니야, 더 있다 가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좀 더 열심히 걷고 있는 재인이다. 재인이는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재밌는가 보다. 특히 화장품 가게에 진열된 K-뷰티 상품들을 보면서 뿌듯해하기도 하고, 올리브영 가격과 비교도 한다. 그런데 나는 쇼핑몰에 들어온 지 십 분도 안되어 연신 하품이 흘러나왔다. 하필 그 흔한 커피숍도 그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우 푸드코트를 찾아서 음료와 커피를 마시며, 화장품 하나를 사고 쇼핑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전날 자전거 코스를 완주한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런데 왜 내가 그 대가를 주어야 하는 거지... 아무튼 재인이는 마지막날까지 야무지게 쇼핑했다. 마지막 날이라 여행하며 쇼핑한 것들의 목록을 같이 정리해 보았는데, 재인이는 이번 여행 내내 야무지게 쇼핑을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아이의 기분이 좋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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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밤, 잠이 들지 못해 뒤척이고 있는데, 옐로나이프에 머무는 동안 깔아놓았던 오로라 애플리케이션이 울렸다. 오늘은 오로라가 크게 펼쳐지는 날이라 근처에서 오로라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명색이 날씨요정인데, 살아오면서 날씨 운을 모두 소진한 탓인지 옐로나이프에 머무는 동안 내내 회색구름이 담요처럼 하늘을 덮고 있었고, 다음날 비가 예보된 밴쿠버의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또다시 알람이 울려 창밖을 봤더니 군데군데 구름이 걷혀 있었다. 그래서 롱패딩을 걸치고 조심조심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바로 옆 방을 쓰시는 엘사의 언니 분이 인기척을 듣고 나왔는데,


"오로라 알람이 울려서요."


라고 하니, 웃으며 얼른 나가보라고 한다. 조심조심 최대한 소리 없이 걸었는데.... 새벽 두 시, 그렇게 헛된 희망을 품고 40분간 동네를 걸어보았지만 물론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재인이가 다음 날 밤에 새벽 산책에 동참했다. 애플리케이션이 또다시 알람을 울렸기 때문이다. 새벽에 낯선 동네 쏘다니기를 무서워할 줄 알았더니만, 저도 오로라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는지 저 멀리 역 근처까지 나가보자고 한다. 야트막한 언덕에도 올라가 보고 제법 널찍하게 뚫려 하늘이 잘 보이는 골목 길도 찾아갔지만, 예상했던 대로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오로라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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