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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이 한 올 한 올 되찾아준 것들

정지윤 개인전, 달과 선이 만나는 곳, 2025

by 정윤희
KakaoTalk_20250408_213725157_08.jpg ©정지윤, 새와 팝콘, 16x13cm, 종이에 잉크, 2023




한 뼘짜리 작은 종이에 까만 배경이 한 올 한 올 채워졌다.

비로소 새와 팝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종이에는 팝콘과 반짝이 가루가 흩날리는 눈부신 세계가 빼곡하게 담겼고,

작은 새는 그 가운데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에

다만 이렇게 머물면 된다고

작품이 내게 말했다.



image_1743414986618_1000.jpeg ©정지윤, Please Remember Us, 2022, 110x110cm, 종이에 흑연


멸종위기의 동식물들이 모여서

이처럼 풍요로운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게 역설적이다.

흰 줄기의 커다란 나무가 빛을 발하고 있고,

그 가지에서 난 열매는 풍족하기만 하다.


낮과 밤이 나뉘지 않은 세계,

먹이사슬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가늘고 섬세한 선들이 한가득 채워져 있어

위로와 행복을 주는 세계.



KakaoTalk_20250408_213725157_12.jpg ©정지윤, 위의 세부



얇은 샤프심으로 배경을 파내 대상을 드러냈다.

고고학의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유물의 윤곽을 드러내듯,

사라져 가는 생명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바라봐 주었다.



KakaoTalk_20250408_213725157_04.jpg ©정지윤, 상동



사라져 간 어느 종족의 꼬마도 발견해 주었다.


그들은 서로 다정함을 나눈다.

늘 상상해 왔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평화다.



KakaoTalk_20250408_213725157_03.jpg ©정지윤, 상동



누군가의 무수한 세월로 위로받는 나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에

다만 이렇게 머물면 족한 거라고

작품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전시 정보>

달과 선이 만나는 곳 Drawing to the Moon _ 2025.3.27-4.9

ghf _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99


<작가 소개>

정지윤 _ 펜촉과 샤프펜슬로 무수한 얇은 선을 쌓아 올리면서 작업을 완성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자연이 지닌 역사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자연을 보고 불현듯 떠오른 이미지이기도 하다. 때론 멸종 위기 동물과 식물을 그림에 등장시키기거나, 개발로 훼손된 자연을 화폭에 담으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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