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이 개인전 _ 바람 없는 집
넓은 들판 위에 작은 집이 하나 서 있다.
온 세상이 이 집 주변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널찍하고도 날카로운 붓질이 강한 바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과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강풍에 나부끼고 있다.
이곳은 알 수 없는 장소이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휩쓸고 갈 법한 미국의 한 외곽 지역인 듯도 하다.
끝도 없이 굴곡진 초원이 펼쳐져 있는 영국의 한 시골 동네 같아 보이기도 하다.
낯선 풍토와 날씨가 불안한 감정을 일으킨다.
사실 이 집은 들판 위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초록과 갈색으로 길게 칠해진 형태들이
바람에 의해 일제히 누워있는 풀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 집은 낭떠러지 위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면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겨가다 보면 지표면이 뚝뚝 끊어져 켜켜이 쌓여있다가
결국에는 낭떠러지를 따라 급격히 하강하고 있다.
형태에 대해 좀 더 의심을 하다 보면,
이 지형에 대해 더 이상 그 무엇도 단정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낭떠러지를 따라 무언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건가,
아니면 반대로 무언가가 들판을 향해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그림을 보고 그 무엇도 알아낼 수 없다.
작은 집에 뚫린 그보다 더 작은 문과 창.
집이라기보다 방벽이라 부르는 게 맞을 정도이다.
먼저 봤던 그림보다 비교적 날씨는 잠잠해 보인다.
하지만 어째서 집 아래에 있는 것들은 여전히 강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것일까.
길은 집에 닿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길이 집 앞으로 나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길 건너 세상은 다소 평온하다.
사실 그것은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좀 더 빨리 시들어버린 갈대일 수도 있고
빠르게 흐르고 있는 흙탕물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이 지형에 대해 여전히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다.
여긴 또 어떤 나라일까.
돔 지붕이 올려진 이국의 사원이 이 외딴 지역에 무슨 까닭으로 들어 선 걸까.
이곳은 산꼭대기일까, 아니면 바닷가일까.
어디서부터가 땅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일까.
물이 땅을 침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땅이 부적절한 곳에 개척되었을까.
땅과 물은 애초에 공존이 가능한 것들이었던가.
저것이 물과 땅이 맞기는 한 걸까.
근본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확하게 인지되지 못하고
그러한 주제에
거센 풍랑처럼 일어나
모든 걸 잠식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
... 은 그저 착가일 뿐이다.
작은 집은 홀로 평화롭기 때문이다.
그 작은 집에서 평화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집에서 흘러나오는 평화가 주변을 점차 잠재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 같이 초록으로 칠해져 있지만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자 사이에는 치열한 경계선이 분명 존재한다.
물론 그 경계선은 눈으로 거의 확인 불가능하다.
그림을 보고 이 지형에 대해 정확히 알아낼 수 없듯 말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근본이란 무엇일까.
광대한 지형과 그 위에 놓인 작은 집 중에
무엇이 근본이라고 불릴 만한 것일까.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힘이 셀까.
<전시 정보>
바람 없는 집 _ 2025.5.14-6.14
HORI ART SPACE _ 서울 종로구 삼청로 7길 11
<작가 소개>
최제이 _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바람이 멈춘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며 무의식적인 붓질 속에서 길어낸 감정의 결들을 한 화면에 응축한다. 2007년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갤러리 아트사이드, 가나아트스페이스, 수호갤러리, 갤러리 헤세드 등 에서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60여 회 이상 단체전과 기획전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