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여기, 인상적인 하늘

오병욱 개인전, JURIDICAL PHARMAKON

by 정윤희
KakaoTalk_20250605_162230366_03.jpg ©오병욱, 하늘, oil on canvas, 97x73cm, 2025



KakaoTalk_20250605_162230366_02.jpg ©오병욱, 하늘(좌, 상동), 하늘(우), oil on canvas, 97x73cm, 2025




KakaoTalk_20250605_162230366_01.jpg ©오병욱, 상동




1.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그림이 있다.

그림으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 치니 그제야 실체가 보인다.

지평선 위를 날카롭게 횡단하는 주홍빛 선이,

허공에 어지럽게 휘날리고 있는 붓 터치가

석양의 가슴 벅찬 순간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면 관람자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프랑스에서

미술 평론가들이 인상주의 회화를 보고 느꼈던 그 감정을 말이다.


석양으로 물든 황홀한 찰나는

강하고 거칠고 대담한 터치를 통해 훨씬 힘 있게 표현될 수 있다.

작가는 빛, 바람, 구름과 같은 유동적인 존재들을

붓과 물감이라는 물성으로,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번역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작품이 인상주의 회화라고 생각한다.




2.

약 200년 전 인상주의 회화는 시민사회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사조이다.

혁명과 봉건주의 청산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새 시대를 맞이한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도시에서의 활기 찬 삶을 화폭에 담았다.

화가들의 대담한 터치는 그들이 맞이했던 새로운 시대와 강력하게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 걸려 있는 두 점의 작품에

200년 전의 프랑스의 상황을 빗대는 건 불가하다.

이 작품들에서는 삶의 고통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땅 위는 단 몇 개의 불만 커진 채 온통 새까맣고, 스카이라인은 나지막하다.

암울하고 냉혹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시대를 향한 강한 염원이

화면을 뚫고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할 수 있다.

200년 전 서구 사회에서 탄생한 인상주의 사조가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사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KakaoTalk_20250605_162230366_15.jpg ©오병욱, 하늘, oil on canvas, 80x117cm, 2025




3.

에너지가 작품을 뚫고 곧장 정면을 향한다.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 거친 붓터치가

오히려 더 강력한 직선적인 에너지를 창출한 것이다.


이것은 작품이 지닌 역설이다.

철저한 색채의 분해가 인간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

서구의 사조가 민족의 기백을 나타낼 수 있다.

간접적인 표현이 가장 직접적으로 가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오롯이 자연을 담은 작품이 시류를 표현할 수 있다.




KakaoTalk_20250605_162230366_16.jpg ©오병욱, 하늘, oil on canvas, 80x117cm, 2025



KakaoTalk_20250605_162230366_23.jpg ©오병욱, 하늘-설악, oil on canvas, 34x46cm, 2025




4.

바로 이 시점에

인상주의 회화를 소환한 건 내게 행운이었다.

청명한 하늘 위를 힘 있고 자유분방하게 부유하고 있는 구름과

그 아래 솟아있는 힘찬 산맥이

마치 새 시대를 향한 나의 바람을 담고 있는 듯하다.





KakaoTalk_20250605_162230366.jpg 오병욱, Pharmakon : Blue, Orange, Purple, 지난 전시 브로셔
KakaoTalk_20250606_142455056.jpg 전시 도록








<전시 정보>

JURIDICAL PHARMAKON _ 2025.5.27-6.7

MI&GALLERY _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3-1





<작가 소개>


오병욱 _ 고대 그리스의 거장들은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형태들로 감상자들의 시선을 빼앗고, 몽혼약 같은 색채 물감으로 그들은 감동시켰다. 고대 그리스어가 기원인 이 pharmakon은 라틴어에서 약 혹은 독을 칭하며, 우리에게 pharmacy라는 단어를 주었다.


예술작품의 가장 큰 역할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카트리시스, 정화였다. 극장에서 극도의 비극을 겪은 후 해소되는 개인적인 불안과 초조, 공포와 두려움, 정신적인 고통을 치료하는 약. 카타르시스는 감동 이후에 오는 것이고, 우리가 미술 작품들에서 감동적인 요소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형상보다는 색채에 더 많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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