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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가 초현실적으로 피어오르다

이지현 개인전, 주어진 XXII25

by 정윤희
KakaoTalk_20250605_162318278_27.jpg ©이지현, 푸른 사막을 품은 눈, 2025, 캔버스에 혼합재료




1.

표정 없는 창백한 얼굴이 누워 있다.


... 아니다.

얼굴은 있는데 표정이 없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

자세히 보니 얼굴 안에는 여러 표정들이 겹쳐 있다.

지쳐 쉬고 있는 표정,

꿈을 꾸는 몽환적인 표정,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표정,

마주 보고 누운 이에게 뭔가 말을 걸 듯한 표정.




KakaoTalk_20250605_162318278_24.jpg ©이지현, 잔류하는 시간, 2025, 72.7x116.8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

두 눈동자 안에는 각각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그림은 오른쪽 눈동자에 담긴 화성의 모습이라고 한다.


붉은빛을 띠고 있는 화성은 그 자태에 알맞게

이름에 불 화(火)가 들어있다.

별자리에서 화성은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는 행성이다.

우연의 일치로 이 그림에서도 의지가 피어오르고 있다.


불기둥처럼 솟아오르는 것만이 의지가 아니다.

세상에는 힘 있게 의지를 발휘하지 못할

나름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또 굳은 결기로 그런 의지를 발휘하려고 노력했을 때

순수하지 못한 동기와 욕망이 의지와 뒤섞이는 순간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려놓고 비워두었을 때 비로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스스로 여기기를 아무것도 해낼 힘이 없을 때조차

자기도 모르게 내면이 채워지는 신비가 있다.

흘려보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들에게 싸인을 보내기도 한다.


그림에서 지표면을 따라 흐르는 빛깔들이 곱기도 곱다.




KakaoTalk_20250605_162336342.jpg ©이지현, 푸른 사막 1, 2024, 30x42cm, 한지에 혼합재료




3.

자연을 머금은 아름다운 초현실의 세계

땅과 물을 분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



기울어진고요-copy.jpg
멈추지않기로한마음-copy.jpg ©이지현, 기울어진 고요(위), 멈추지 않기로 한 마음(아래), 2025, 29.6x98cm, 비단에 혼합재료



4.

이곳은 사막처럼 보이기도 하고

머나먼 행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막이 됐건, 어느 행성의 지표면이 됐건

황량하고 메마르긴 마찬가지이다.

그곳을 색채로 채우고

그 위에 건축을 하는 건

화가의 초현실적인 행위이다.


이지현 작가는 이곳에 몇 개의 녹슨 청동 막대기를 꽂고

그 위에 얇은 천을 얹어 놓았다.

큰 힘과 발달된 기술이 필요한 건축물이 아닌

즉흥적으로 지을 수 있고

또 바람에 휘날리기도 하는

엉성하고도 아름다운 구조물을 선택했다.


어울려 춤을 추는 무리인 듯도 하고,

평화의 행군을 하는 무리인 듯도 하다.




움직이지않는비상.jpg ©이지현, 기울어진 고요(위), 멈추지 않기로 한 마음(아래), 2025, 29.6x98cm, 비단에 혼합재료




5.

여인은 단단한 물성의 조각일까,

아니면 그냥 흩날리는 천과 깃털을 두른 걸까.

이곳에서는 단단함과 연약함의 경계가 없다.

나무들도 살아서 흐느적 거린다.

우리의 의지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단단한 면과 연약한 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여인은 비상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무척 애를 쓰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포박당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딱딱한 것이 부드럽게 풀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국면이 곧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지형이 눈앞에 펼쳐질 때처럼 말이다.

삶은 그 자체로 초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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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주어진 XXII25 _ 2025.6.4-6.10

57th 갤러리 _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17 2층




<작가 소개>


이지현 _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순간, 불현듯 한 장면이 몰아치듯 떠올랐다. 어두운 사막 위에 홀로 서 있는 나. 그 장면은 내면 상태이자, 이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이유가 되었다. (중략)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막, 텐트, 돌, 침묵하는 형상들은 고립된 자아의 상징이지만, 그 고립은 부정이 아닌 긍정의 조건으로 해석된다.


(작가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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