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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17. 2018

황당한 캐나다 이민 생활

내 맘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더라

'나를 찾아줘' 플리즈

중국 업체인 '샤오미'도 좁쌀이란 뜻의 이름으로 승승장구하는데 부모님이 지어주신 고귀한 내 이름은 캐나다에서 유명해 지기는 커녕 민첩하게 사라져 버렸다. 성도 남편 성을 따라서 강씨가 되었고 이민 초창기에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 주는 영어학교에서 영어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얼떨결에 지은 '그레이스'란 이름을 쓰다 보니 나도 내 본명을 잊어버릴 지경인데, 누가 몇 십년만에 내가 캐나다로 이민 갔다는 소문을 듣고 여행길에 나를 찾아 보겠다는 생각은 한국에서 부도 내고 해외로  도망 와서 숨어 있는 사람 찾기보다 더 힘들 것이다. 불법적인 신분 세탁이 아닌 합법적인 이름 세탁이 된 상태이니. 이름이 유통기한을 지난 것 같은 회환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 가는 것도 찜찜한데 한 때는 인정머리도 없고 째째한 사회에 온 것 같아서 적응 못 할 때가 있었다.



 이민 초창기에  영어 배우는 여자들 모임에서 학기가 끝나고 종강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공부만 아니고 먹고 떠드는 자리라면 얼마든지 가리라 다짐을 하다가  아차, 떠드는 것도 영어로 해야 된다는 생각에 순간 멈칫. 그러나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불고기를 맛깔나게 준비를 해 갔다.

 일반적으로 10명이 멤버이면 15인분을 해 가는 무지하게 넉넉한 큰 손이라 그 날도 타원형 대 자 접시에 생전 안 하던  달걀지단 고명까지 얹어 갔더니..... 멤버들이 들어 오는데 접시를 들고 온 사람은 나 혼자.

고지식한 케네디언들이 파티하는 날 까지 공부를 하고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서  내가 접시를 내 놓기도 전에 사람들이 갈색 종이 봉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걸 보니까 자기 점심을 꺼내는 것이었다.

아니, 파티가 아니었어?

경악을 하며 대 자 접시를 어느 싯점에 내 놓아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아닌 척 하며 흘끔흘끔 옆 사람 점심을 보니 당근 썰은 것 몇 개, 오이 슬라이스 몇 개에다 토스트 빵 사이에 햄과 치즈를 넣은, 내가 보기엔  빈약하기 짝이 없는 도시락을 꺼내서 토끼처럼 먹고 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불고기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퍼 돌리면서 그들의 도시락 보다도 더 빈약한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레시피를 물어 보는 사람들의 질문에 거의 울쌍이 되다시피 하였다. 한식이 레시피가 어디 있나고?

 처음부터 끝 까지 다 손맛이지. 요새는 레시피 아니라 그 자리에서 요리 시범도 보일 수 있건만......   오래전 이민 초짜의 애환을 담은 불고기는 한 젓가락 씩만, 그것도  또 토끼처럼 조금씩 맛 보는 바람에  말라 비틀어진 남은 고기는 몇 날 며칠 아이들 도시락과 김밥속으로 사라져야했다. 나 혼자만의 사단이 난 것은 그 전 주에 점심은   ' BYOL'로 하라는 영어를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같으면 'BTS'가 방탄소년단의 약자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 때는 정말 정말   알 길이 없었다.

'bring your own lunch'

한(나),중,일 ESL학생들

      

이민은 심겨진 나무의 뿌리를 송두리 채 뽑아서 다른 곳에 옮겨 심는 것과 같다고 한다. 특히 북미로의 이민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오는 것이니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에 내던져 진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을 가까이 오라고 할 때 하는 손짓도 안과 밖을 반대로 흔들고  톱질도 우리는 안에서 밖으로 하는데 서양은 밖에서 안으로 한다든지. 숱하게 많은 반대 행동도 골치가 아픈데 생각하는 것도 하늘과 땅 만큼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부지기수 인데다 영어라는 철옹성이 버티고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민은 재산이 있는 사람도 오고, 없는 사람도 온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면 한국에서 많은 돈을 갖고 온 사람이나 거의 맨 몸으로 온 사람이나 비슷 비슷해진다고 농담들을 한다.  돈을 많이 가져온 사람은  쓰던 가락이 있으니까 일단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구입하고 한국에서 감질나게 치던 골프를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밴쿠버에서 사시사철 치는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일도 안 하는지 못 하는지 모르지만 가져 온 돈을 곶감 빼 먹듯이 빼 먹는 것도 대책이 없는데, 온 가족이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고 여름이면 한국의 가족, 친척, 친구에다 이름만 아는 사람까지 방문하면 체면때문에 참을 인자를 써가며 치닥거리 하다보면 무시 못 할 경비와 피로감때문에  밴쿠버가 사람 잡는다며 왕짜증 내면서 여름이면 사라지고 싶다고 하는 집들이 한 둘이 아니다 .

반면에 돈없이 패기 하나로 온 사람은 이민 온 다음 날 부터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일을 찾았다는 전제하에  열심히 일만 하면 가족들과 오붓하게 욕심없이 살기엔 좋은 나라라고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 이민 올 때  돈을 얼마나  가져 왔냐는 질문은  이제는 거의 우문이 되어 버렸다.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하늗 것은 물론이지만.


 밴쿠버는 따뜻한 기후 때문에 은퇴한 노인들의 도시이다 보니 산업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서 직업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장례식장에 가 보면 매니저가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장례업체들은 이탈리안들이 장악을 했다고 하고 밴쿠버 외곽지역의 농장주들은 인도사람들이 많고 택시업계도 인도, 파키스탄계가 꽉 잡고 있으며 한국사람들은 편의점을 많이 하고있다.

요즘이야 미국의 헐리웃의 영화 업체들과 IT업체들이 진출해 있지만 본래 록키 산맥 밑자락의 작은 어촌이었던 도시가 워낙 추운 캐나다 전역의 노인들이 은퇴 후에 따뜻한 밴쿠버에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해서인지 휴양 도시가 된 까닭에 산업이 발전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동네이다. 한 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다고 할 때 홍콩 사람들이 몰려 와서 '홍쿠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 때 많은 중국 요리사들이 이민울 와서 홍콩 음식이 홍콩보다 더 맛있다고 소문이 났었다. 한국 사람들도 거리상 한국과 가까운 관계로  정착하지 않고 한국에서 돈을 가져다 쓰는 사람도 많아서 직업이나 사업에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단지 겉으로 보기에는.

최근 중국 자본이 대거 들어 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을 하고 물가도 많이 올라서 살기가 만만치 않은, 공기만 명품인 도시가 되어가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천천히 죽으려면 세탁소를 하고(드라이 클리닝을 하는데 쓰이는 독한 화학제품 때문에)  빨리 죽으려면 편의점을 하라는(총기를 소지한 강도들 때문에) 웃픈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사냥총외에는 총기소지 허용이 안 되는 캐나다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수 많은 직업군들이 있지만 이민 와서의 직업 선택은 한국에서의 직업과는 동과 서가 먼 것 같이 멀어도 너무 멀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에서 하던 직업을 연결해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러운게 사실이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라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게 거의 없는, 특히 웃고 들어 갔다가 울고 나온다는 그 블랙홀 같은 영어 장벽 까지 가세해서 짓누르는 이민 생활.

또한 캐나다에서 공무원을 하려면 불어까지 해야하니 이민자들에게는 명백한 언어 고문이 있는 나라이면서도  그나마 자연 환경이 좋아서  청정 이미지로 소문 난 캐나다는 자연과 가까운 대신에 돈과는 멀다는 사실을 알만 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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