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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28. 2018

노인들의 캐나다 이민 생활 1

죽기도 힘드네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있다.

그 이름하여 캐나다!

지인이 교통사고로 손이 으깨져서 숱한 수술과 물리치료 끝에 다 나았다고 손을 보여 주는데 사고가 난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매끈해서 입을 딱 벌리니 '이렇게 수 백 개 뼈 조각을 맞추어 온전한 손을 만들려면 미국에서는 몇 백만 불이 드는데 여기선 환자가 1불도 안 냈다'라고 의사가 생색내듯이 말하더라고 전해 주었다. 뭐든지 캐나다의 형제 나라요, 이웃인 미국과 비교하는 캐나다의 습성에 따라서.

그 형제의 나라는 의료시스템이 기괴해서 극빈층은 거의 무료로 치료를 받지만 자영업을 하는 중산층은 비싼 보험료를 내면서도 완전하게 커버되지도 않는다고 불평이 많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은 캐나다에 없는 사립병원에서 자비로, 원도 한도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캐나다의 의료비용은 거의 모든 주가 무료이다. 한국에서 감기 때문에 동네 병원에 가면 1000원만 내면 된다고 하는데 여기는 병원이란 글씨가 쓰인 곳은 그냥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된다. 동네에 있는 패밀리 닥터에게 가려면 병원 간다고 하지 않고 닥터 오피스에 간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정말 아무것도 없이 혈압계와 귀 검사용 기기와 컴퓨터, 그리고 의사 선생님 , 그야말로 오피스 분위기 만땅인 그곳에서 전문의한테 보내주어야만 갈 수 있고 수술이 필요하거나 응급 상황이어야만 마지못해서 hospital로 보내준다(물론 내 느낌이지만). 정기검진도 그 닥터 오피스에서 검사 용지를 주어야만  lab에 직접 가서 피 뽑고 간단한 검사를 한다. MRI나 CT 촬영 등은 급하지 않으면 몇 개월 씩 기다리는데 얼마나 좋은 장비이길래 아끼느라고 그렇게 안 해 주나 할 정도로 검사에 인색하니 과잉진료라는 말은 아예 없다.  이민 초기에는 진료를 받고 치료비도 안 내고 나오는데 찜찜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었다.  이민 온 지 얼마 안 돼서 간단한 수술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간호사와 의사가 어찌나 친절하던지 나 자신은 서양 사회에 적응을 못 하면서 애들만 영어 공부하라고 잡던 시절에 병원에 다녀와서 그 친절에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바로 이민 생활에 적응했다고 나 스스로 믿은 적도 있다.


노인들은 약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고  밴쿠버가 속해 있는 주는 약간의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그것도 앞으로는 완전 폐지된다고 하는데 그 재정은 수익이 좋은 회사에서 과외로 건강세를 더 걷어서 충당한다고. 재산세에 교육세가 포함되듯이, 있는 사람들이 뭐든지 더 내게 되어있는 사회 구조이지만 세금을 많이 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병원비 때문에 경제적인 고통을 겪는 일이 없도록 정부에서 감당해 주니 당연하다고 하지만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사실 집세 내고 차 비용 내고 미친 세금 내고 먹고살다가 아프면 엄청난 병원 비용은 절대로 낼 수가 없으니.  만약 가까운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게 되면 대부분 여행자 보험으로 커버가 되지만 여행자 보험이 없으면 헬리콥터를 타고 캐나다로 돌아와서 병원에 가는 것이 비용면에서  훨씬 낫다고 한다. 또한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영어를 못 하는 환자의 경우는 통역하는 사람이 병원 내에서는 계속 따라다니며 병원과 환자를 소통시켜 주며 치료를 받게 하고(물론 통역비용도 정부에서 내주고) 치료 후에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기가 힘들므로 소정의 액수만 내면 치료 기간 내내 집과 병원까지 통원을 시켜준다. 몸의 심각성에 따라 장애자 주차 스티커를 내주고 집에서 거동이 불편할 경우 하루에 3회씩 간병인이 와서 도움을 준다. 물론 간병인 월급도 정부에서 주니까 환자들은 일부라도 낼 필요가 없다. 올 초에 한국에서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한 달 병원비가 300만 원에 간병인 비용이 200만 원이었던 것에 놀란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여기서는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있든, 일 년을 있든 입원비 걱정 안 하고 몸 만 회복하고 나오면 되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단점은 급하고 위중한 병은 느려빠진 캐나다에 안 어울리게 빠릿빠릿하게 조치를 해 주지만 일반 병은 검사한 번 받으려면  반년이나 일 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낫거나 아니면 죽거나.

      


사돈 할머니, 즉 며느리의 친할머니는 음악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65세에 정년퇴직을 한 후에 토론토에서 살다가 80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녀들이 있는 밴쿠버로 이사 오면서 짐은 부치고 손수 운전해서 동부에서 서부로 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숱 많은 백발을 멋있게 웨이브를 한 서부 개척자 시대의 영화배우 같은 할머니였지만 두 무릎에는 인공 관절, 심장 수술에다 노인성 질환을 갖고도 혼자 아파트에서 집을 모델 하우스처럼 예쁘게 꾸미고 명랑하게 사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우리 아이들이 방문을 하려고 연락을 했더니 아파트에 하자보수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해결할 서류를 검토하느라 바쁘니 다음에 오라고 한 것이 마지막 통화였다고 한다.  아이보리 바탕에 핑크와 올리브 그린의 꽃무늬가 있는 천으로 된 암체어에 앉아서 앤틱 책상 위의 서류를 보고 있었을 그 멋쟁이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가 95세.  90세까지 운전을 하셨는데, 하루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셔터가 완전히 다 열리기도 전에 차체가 먼저 들어가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날 뻔 한 이후로는 운전을 하지 못 하셨지만 매일 바쁘고 활기 있게 사시는 것 같았다.

손자 손녀들 생일에는 손수 만든 과자, 케잌을 고운 포장지에 싸서 주곤 했던 할머니가 살았던 이 나라에서 의료비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큰 불만  없이 곱게 늙으셨던  것으로 보아 이만하면 노인들이 살기에는 좋은 나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미리미리 자녀 손들에게 패물과 물건들을 정표로 나누어 주고 틈틈이 써 놓았던 라이프 스토리를 바인더로 묶어서 자손들에게 남겨놓고 가셨다. 그래서인지 슬프지도 애달프지도 않은 아름다운 작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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