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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12. 2023

70대 캐나다 할머니 패션

옷 입을 줄 모르는 게 아니라

50년 전 대학교 1학년 첫 교양과목

강의가 '의류학'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여교수님의 강의였는데 지금 들어도 난해한 문장을 칠판에 써 놓으셨다.

' 여자들이 옷을 차려입는 것은 남성들에게 attractive 하게 보이려는 것이다'라고. 

그 반대는?

무슨 그런 망발이 있나 하면서 웃긴다고 하겠지만  그때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 틀림없다.


1970년대 초에 '리바이스' 청바지가 남대문 시장에 풀렸을 때 사 입었는데 무지 두꺼웠다.

에어컨대신 선풍기, 아버지들은 마당의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시던 시절.

 텐트 수준의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한 여름에 나가는 딸의 등뒤에서 모친이 ' 안 덥니?' 하시는데

 ' 하나도 안 덥다'며 뛰쳐나가던 생각이 아직도 난다. 멋 부리기 위해서  온갖 장애물을 뚫고 한겨울의 미니스커트와 한여름의 청바지를 불굴의 의지로 입고 다녔다.

 

당시 작가 정연희 선생이 소설 '석녀'로  등단해서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노년인 지금도 고우신데 반세기 전에 교정에서 마주친 미색 실크 투피스를 입은 단아한 모습인 여류작가는 너무 아름답고 신비해 보였었다.

국문학과 강사로 나오셨는데 나도 국문학과를 가고 싶은데  간 걸 후회했다.

그분은  워낙 예쁘셨어서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 있는데 나처럼 평범한 얼굴은  점점 이젠 무엇을 입어도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얼굴도 균형을 잃어서 눈은 짝짝이가 되고 입술도 한쪽으로  삐뚤어지고 뒷목에 살이 찌니  목폴라를 입어도 둔해 보인다. 어렸을때도 얼굴형은 네모에다 옥니라서 얼굴 살 빠지면 합죽이 인상이었다. 이런저런 불균형이 더 심해져서 꾸미기의욕이 점점 줄어든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캐나다에 산다는 것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외면을 중시하는 나 같은 사람은 캐나다에 살게 되면서 점점 옷 입기에서 열등생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나 홀로 발버둥을 쳐봐도 보이는 게 반바지와 티셔츠뿐이니 나도 모르게 점점 들어 가는 것을 느낀다. 아무렇게나 막 입는 것에.


우선 옷 색깔 선정이 웃기게 변한다.

빨간색이라면 천리만리 도망갔었는데 어느새 빨간 재킷을 만지고 있더라.

한 술 더 떠서 전에는 촌스럽다고 쳐다도 안 보던 꽃무늬 셔츠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얼굴 선과 몸 실루엣이 흐려지고 무너지니

강렬함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노인의 비애가 번져 나오는 듯해서 쓸쓸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 튀지 않으면 죽음이다'라는 기치 아래 생동감과 개성으로 장착하려고 발랄한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이젠 기억력의 쇠퇴와 약간의 무기력증을 포함해서 꾸미고 차리는 것의 번거로움이 귀찮아졌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으로

오늘도 옷을 코디해 본다.


자녀들은 엄마가 젊었을 때 멋쟁이였는지, 얼마나 파릇파릇하고 생동감이 있었는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조차 안 하고 엄마는 지금의 또순이 엄마,

후줄근하고 멋이라곤 1도 없는 유행과는 거리가 먼 본투비 할머니로만 생각하겠지.

 

1960년, 70년대에 고등학생들은 간난이 같은 똑 단발에다가  귀밑 1cm만 넘으면 규율부장한테 걸리고 길거리 가다가 미니스커트 길이를 경찰 아저씨들인지가 자로 재던 시절을 지나왔던 꽃다운 아가씨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옛날 할머니들처럼 아주 호호 할머니들은 아니라고 자부하면서 나름 가꾸고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말이다.

 각종 영양제와 보충제로 몸을 절여가면서.

 코큐텐이 유행이면 그것이 불로 장생약이 되고 오메가 3, 구가자 차, 로열젤리등 수없이 많은 건강식품이 한창 뜨다가 요즘은 비타민 D를 안 먹으면 거의 역적이더구먼.

영양제의 유행 주기도 왜 그리 짧은지 눈이 팽팽 돌아갈 지경이다. 그렇게 좋다는 것을 한 주먹씩 먹어도 노인들의 골다공증은 왜 그리 많은걸까? 노인들은 한 번만 세게 넘어져도 뼈가 쉽게 부러져서 꼼짝을 못 하는 속이 빈 수수깡 뼈가 되어가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다. 노인들의 최후는 낙상때문에 생긴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구루병에 걸린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요즘 사람들은 햇볕 쬐면서 골프를 그렇게 쳐도 병원에서 피검사하면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약이나 주사를 맞으란다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워야 될까?


어떤 의사들이 권하는 약과 영양제의 브랜드 똑같다.

미국에서는 제약회사가 의사들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캐나다에 이민 온 이래로 응급실에 가도 타이레놀, 경미한 증상과 가정상비약은 무조건 타이레놀이라 놀랐다.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먹은 타이레놀은 도통 10알도 안 되는데 그것도 요번 코로나 백신을 맞고 먹으라 해서.

그런데 아들, 며느리등 젊은 사람들은 아예 상비약으로 먹다가

요즘은 애드빌로 돌아섰다.


70년간의  세월의 풍파, 시집, 친정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수고와 갈등을 거치면서 거의 소진된 기운을 끌어모아 나의 몰골을 치장해 본다.

이제 남은 시간도 많지 않은데 재밌는 것과 맛있는 것도 반으로 줄어들고 품 안의 자식은 떠나버려서 다 파 먹은 소라 껍데기같이 되어버렸다


옷을 산다 해도 나를 위해 마음 놓고 써 보질 않아서 첫째도 가성비, 둘째도 가성비를 따져서 몇 시간 돌다가 종아리가 딴딴해질 무렵에 겨우 하나 고른다.

디자인은 마음에는 드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도 가격에 맞춰서 오버 핏이나 몸을 욱여넣을 생각으로 무조건 싼 것만 찾는 것이

옛날 엄마들의 DNA가 있어서인지 짠내 나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것을 나 스스로도 안다.


그래도 욕심 많은 놀부 심보로  옷은 간지 나게 입고 싶어.


후디를 즐겨 입을 수밖에 없는 캐나다 현실

활동적인 옷과 블라우스 가운데 부분에 셔링이 들어가고 소매 끝에는 리본으로 마무리한 디테일도 좋아한다.

스트라이프 셔츠도 소화하기 힘든데 무려 바지를. 그나마 바지 뒷면은 검정.

코로나 때의 마스크 패션과 보라색이 맞추기 힘든 데다 패딩을, 네일도 보라로 해 보았지만 자연인 벚꽃이 더 아름답더라.

오래된 자켓도 칼라에 맞춰서 입어보고 레깅스는 사철 교복

알록달록한 꽃무늬도 입고 싶고 쨍한 칼라를 선호하는 것이미 할머니라는 뜻

철없는 할머니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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