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에 웃기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당시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픽 웃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러고 있네.
어느 할머니가 친구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거의 식물인간이 되었다 해서 병문안을 가서는 식물인간이 안 떠올라서 '야채인간'이라고 했다나.
또 '설레임'이란 아이스크림을 '망설임'이라고 해서 내가 서울에 방문했을 때 마켓에 가니 진짜 '설레임'이란 아이스크림이 딱.
그런 걸 헷갈리는 게 말이 되냐며 거만하게 비웃었는데.이제는 망설임도 없이 주책맞은 돌직구에다 설레임은 더더욱 안 생기는 노인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라고 주장하면서 친구들 만나면 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곤 한다. 처음엔 도망가던 친구들도 이젠 사진에 예쁘게 찍히려고 눈화장을 짙게 하고 나온다.
나이 들면 눈이 제일 먼저 선이 흐려지고 촐촐해지므로.
친구 아들 차를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사진 이야기를 하다가 폰에 사진이 흐릿하면서 주름 안 나오는 앱을 깔았다면서 뭐라 뭐라 하는데 2세가 하는 영어는 더 못 알아듣겠더라.
나도 아는 척은 해야겠기에 '스노우는 안 깔았어?라고 해야 되는데 '스노우' 대신 ' 화이트'가 떠 올라서 말하려는데 차가 덜컹하는 바람에 말을 못 했다.
연상이 되는데 연결은 안 되는 거였다.
며칠 전에는 한국에 간 친구가 우연히 유방암 검사를 했더니 암진단이 나왔다. 나랑 같은 패밀리 닥터라서 밴쿠버로 돌아오기
이틀 전에 급하게 병원 약속을 잡아 달라고 카톡이 왔다. 병원에 예약을 잡는데 리셉션에서 '방문이세요?'라고 묻는데 나는 단호하게 '거주자예요'라고 말했다.
코로나 때부터 생긴 비대면 진료가 자리를 잡아서 방문이 병원에서 말하는 대면 진료라는 것을 얼른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친구가 시민권자이므로 한국에 나갔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지 단연코 캐나다 방문이 아니라고 전달하려는 것이 내 의중이었다.
' 아니요, 방문 진료이시냐고요?'
2~3년 전만 해도 친구들끼리 남편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미치겠다고 하면서 구시렁거렸다.
지난달에 지인 부부가 남미의 맨 끝인 파타고니아(피타고라스가 아니고) 여행 간다고 해서 내가 그들 에게 " 내가 워낙 미모라서 마약 카르텔에 납치될까 봐 우린 남미엔 여행을 안 간다'라고 농담을 했다. 듣는 이들도 70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남편도 얼른 맞장구를 못 치고.
순발력만 떨어졌으면 봐주겠는데 내가 드라마로 이야기하면 다큐로 받으니 진짜 재미가 없다.
아직 결혼을 안 한 아들, 딸을 둔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서로서로 매치를 하면 좋을 텐데 집안도 알고 성품도 아니까. 그런데 친구끼리 사돈이 되면 친구 관계도 다 깨진다고. 그건 이차적인 문제이고 당사자들끼리 애기 때부터 알아 왔으니 '오빠'라고 불러도 그 찐한 의미의 '오빠'가 아니라는 게 문제이다.
정말 그 친구네는하도 보수적이라서 절대 아니겠지 했는데 아들이 하도 결혼에 뜻이 없어서 친구와 친구남편이 한국에 갔을 때 결혼정보 회사에 가입을 했다고. 본인과 부모 재산, 학력 등등 부모에 관한 사항이 많아서 이상했는데도하도 급하니까.
캐나다로 돌아오니까 신부 후보자들 사진이 하루에도 몇 장씩 오니까 아들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바로 연애해서 결혼을 했다.
부모는 애가 탈대로 탄 후에.
사실 한국에서 갓 온 신부들 몇몇을 보면 해외 연수나 유학도 한 아가씨들이 많다. 그런데 이민은 처음이라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의 20,30세대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내 집 마련도 여기선 허당이 많다.신랑감이 아파트가 있다고 해서 와봐야
집값 전체의 5%나 10%( 5억짜리면 2500만 원이나 5000만 원) 다운 페이하고 나머지는 30년 몰게지로 원금과 이자를 노동생명이 살아있는 한 갚아야 한다.
맞벌이를 해야만 한 사람은 집값, 한 사람은 생활비를 내서 가계 운영이 된다.
애들을 낳으면 어떻게 되냐고?
가까운 거리에 양 부모가 있어서 애들을 봐줄 수 있으면 모를까 데이케어 비용이 너무 비싸서 둘 중의 한 사람은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게 낫다.
개념 없는 아들이나 딸들이 강아지까지 엄마한테 맡기는 경우도 있으니 참.
60대는 손자 손녀 보느라고 하루종일 일하다고 저녁 먹고 소파에 기대어 있으면 자기 코 고는 소리에 놀라고 밤에는 끙끙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잠들곤 한다.
70대로 들어서면 결혼 안 한 자녀들을 둔 부모는 체념을 하고 손주들을 얼추 키워준 부모들은 할 일은 없는데 일생 누적된 피로때문에 여기저기 쑤셔 와서 힘들어한다.
그리고 홀몬 레벨도 뚝뚝 떨어져서 의욕이 없고 매사가 시큰둥하기만 하다.
음식도 그다지 맛이 없고 요즘 같은 고물가에 3명이 외식을 하면 120불 정도 나오니
객기를 부릴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커피만 홀짝거리면서 수다를 떨어야 되나?
또한 많은 업체들이 키오스크를 쓰니 그 앞에서 오랜 시간 서 있을 수도 없으니 외출도 삼가게 된다. 특히 겨울엔 침대에 전기매트를 깔고 누워서 하루종일 뒹구니 허리는 안 아프더라. 힘을 안 쓰니.
비 오고 어둑한 밴쿠버에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깨서 새벽인지 저녁인지도 잠시 헷갈리는데 친구가 한낮에 전화해서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보는데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다.
나이가 들수록 노인 소리 듣기 싫어서 발악을 해 보지만 말귀 못 알아듣고 각자 이해되는 대로 딴 소리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박장대소를 하는데 그건 진정 유쾌한 웃음이 아닌 자조적이며 공허한 웃음일 뿐.
부창부수라고 말하라면 사람이나 장소 이름을 부부가 힘을 합쳐서 한자씩 모아서 명사 석자를 만드는 것이라면 답이 될까?
바르셀로나가 아니고 그 옆에 자기네 언어가 있는... 한 사람이 '카'도 아니고 '카이' 라고 하면 딴 사람이 아, '카탈루냐'라고 마무리.
어떤 때는 그것도 틀리지만.
그러니 젊은 세대들도 아킬레스 건 같은 가시가 목에 걸려서 캑캑 대는데 거의 다 살은 노인네들이 재미가 있다면 무슨 그렇게 큰 재미가 있겠는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남편 학교 선배들은
8반 중 1반이 이 세상에서없어진지 몇년 됐다는데.
그래도 그림 그리고 노숙자 밥을 해주는 봉사와 인스타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
나도 이제부터 몸매는 안 받쳐 주지만 스타일링에 신경 쓰고 피부에도 관심을 가져 보려 한다.듬성듬성한 머리에 부분 블리치도 소심하게 하는등 깨알같은 재미의 소망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