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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24. 2023

캐네디언 아이돌

혼자 쿨한 척

어제까지 입에다 뽀뽀하던 중 1 둘째 아들이 하루아침에 방문을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이 바뀌는 순간이 왔다.

이름하여 사춘기.

첫째 아들은 거의 사춘기가 없이 지나왔는데

둘째는 완전히 달랐다.

말이 거의 없어지고 대화를 기피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것이 전부이나 강 씨 고집이 발현되기 시작한 때였다. 경찰이 마약을 소지한 것 같다해서 학교로 불려 갔는데 주머니에 CD를 넣고 가는 것이 불룩해서 신고를 했다나. 마약의 '마'자도 처음 들어보던 이민 초기에.

그제야 중, 고등학생들도 마약을 사고팔며 월남조직과 한국애들도 연루된 갱조직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춘기도 힘든데 마약문제까지 덮쳐오는 서양 사회여.


사춘기도 없이 고딩을 지난 큰 애가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던 3학년 말부터 '닷컴'붐이 일기 시작해서 인턴으로 일을 하는데  스톡옵션까지 받으며 금방 청년 재벌 될 것 같은 예기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붐이 가시면서 허황된 망상은 깨졌지만 그 이후로  계속 IT계통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큰 애의 특징은 유난히 결혼에

목을 매더니 29세에 결혼을 했다.

서양 아가씨와.

며느리는 한 술 더 떠서 아이들을 넷 아니면 다섯을 낳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포부가 있었다. 캐나다에서 아이를 많이 낳아도 경쟁이 심하지 않으니까 사회적 갈등은 별로 없다고 본다만 한국 시어머니가 생각할 땐 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을 낳던 시절에는 '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캠페인으로 산아제한을 했던 시대였으므로.


확실히 서양체질은 체력이 강하다.

아기를 막 낳은 산모가 양말도 안 신고 병실의 모노륨 찬 바닥을 걷질 않나, 샤워를 하고 나서 찬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질 않나 기겁을 하겠더라. 삼칠일은 외출을 안 하고 백일이 지나야 해산 시 발어진 뼈 마디가 제대로 돌아온다고 심한 일도 안 했는데 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농경 시대에 죽어라 노동만 하던 며느리의 허가 맡은 휴식이자 일에서의 해방이었을까. 오직 종족 번성을 위한 엄숙한 리츄얼이었을까.


2년 터울로 세명의 아들을 낳았다.

네 번째로 딸을 낳고 싶다고 이름도 지어놓았다가 멈춰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줄 때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다 필요하다. 2인 1조가 되어서 뛰어도 역부족인데 만약 할머니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면  몇 년 후에는 할머니 몸은 이미 아작이 나 있다.

애기만 봐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일도 해야 되고 학교 라이드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애 보는 날, 일단 아들 집에 가면 화장실로 직행. 내가 하루종일 화장실을 써야 되기 때문에 널브러진 칫솔통부터 변기청소 샤워부스 닦기를 하고 수건들을 챙겨 나온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감들을 헹궈서 다쉬워셔에 넣어 돌리고 식탁의자나 침대 위에 걸쳐진 옷가지들과 수건들을 걷어서 세탁기를 돌린다.

그동안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면 애들이 먹다 흘린 음식이나 주스등으로 끈적해진 마루 바닥을 엎드려 손걸레질을 한다. 무릎을 꿇고 닦으니 무릎뼈가 퉁그러지는 느낌은 덤.

운 좋으면 세탁기 한 번에 건조기 돌려서 다 된 세탁물을 접는데만

거의 30분 걸린다. 애들 양말만 수십 개.

막내를 프리스쿨에서 데려오면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울 때 안 자면 불자동차나 경찰차가  잡으러 온다고 겁을 주면서 눈을  감게 하고 폰으로 경찰 사이렌 소리를 들려주면 눈을 꼭 감고 있다 한 20분 정도 잠이 들면 나도 지쳐서  깜빡 존다.

벌떡 일어나서 2시 45분에 애들이 도착하기 전에 간식을 준비한다. 애들이 셋이니 과일 깎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과일을 먹으면서 ' 스크린 타임'

며느리가 오기 전에 오뎅국이나 잡채, 닭볶음,  파전 같은 것을 열나게 만든다. 물론 집에서 미리 만들어 둔 반찬이랑 재료들을 양손에 들고 가는 것이 기본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

 며느리가 4시쯤 오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얼른 뛰쳐나온다.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나의 며느리가 되면 좋겠다, 집에 와서  집안 일은 손댈 필요 없이  밥 먹고 쉬면 되니까라는 것과 만일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라면 금방 오지 않고 오늘 어땠냐, 힘들었냐 등 좀 수다 떨다 올 텐데 하는 양가감정이 든다는 것이다.


5년 계약으로 애들을 봐준다고 했다가 2년 연장을 해서 7년을 봐주었다.

온몸이 쑤시고 밤마다 신음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자동인형처럼 일어나서 아들네 집으로 달려가던 때가 끝난 지 3년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발을 딛는 순간 발 전체가 찌르르 전기에 감전된 듯한 족저근막염을 극복하면서도.

며칠에 한번씩은 구내염과 다리가 붓거나

손가락은 류머티즘으로 마디가 부어서 반지도 못끼고 생전 없던  주부습진까지 

온 몸이 만신창이.

애 보기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몸도 회복되고 시간도 남아 도니 아이들과 지냈던 시간이 그리운데 자기네가 급하니까 우리를 모셔가더니 이제는 우리가 애들이 보고 싶어서 오라고 모셔올 판으로 입장이 뒤바뀌었다.

부모야 수족을 못 써도 자식이 급하다고 와 달라고 하면 기어서라도 갈 판이지만 자식들은 딱딱 스케줄이 있어서 아무 때나  알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큰 아들이 첫애를 낳고 10일 정도 되었을 때

아가랑 눈이 마주쳤는데 아빠보고 싸악 웃더라나. 그것이 배냇짓인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 눈물이 찔끔 나면서 우리 부모도 나에게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하며 부모의 심정을 알았다나. 어이구 일찍도 알았네.


그 첫 손자가 올해 14세가 되었다.

평소에도 차분하고 영리하고 말이 별로 없었지만 틴에이저로 들어서면서 더 말이 없어졌다. 그 대신 외모에 신경 쓰며 꾸러기같이 동생들 괴롭히고 장난치던 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쿨해졌다.

생긴 것은 프랑스 배우 '티모시 살라메'를 닮았다고 친구들이 그런다는데.


 이혼한 가정의 친구들이  주말에 아빠네, 엄마네 집으로 번갈아 가는 것이 다양해서 재미있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사춘기가 확실하다. 앞으로 다가올 저 세상 멘탈의 소유자가 일으킬 일이 기대가 되기보단 약간 두렵다.

절대로 정면을 잘 안 봄

1년 만에 돌연 변함, 자기가 멋있는 걸 아는듯한 저 포스 보소

딸을 낳고 싶어하던 며느리의 꿈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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