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로 처리
나는 오늘날까지 세수하고 나서 얼굴이 땅긴다거나 건조해서 각질이 생긴다거나 한 적이 없다. 피부가 두꺼운 축에 들어서인지 웬만한 자극에도 부스럼이나 뾰루지가 잘 안 생긴다. 남미인들같이 매끈한 갈색톤의 피부는 아니고 다소 흰 피부임에도.
보통 실핏줄이 비칠 정도로 희고 말간 피부가
잔주름이 많이 생기고 쉽게 건조해지기 때문에 보습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70세를 넘겨버린 나이인 데다가 고도 근시라서 가까운 것을 노안 없이 잘 보는 관계로 폰을 끼고 사니 이마에 어느새 굵은 주름이 생겨버렸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안 쓰는 캐나다에서 보톡스를 어디서 맞는지도 모르고 사는 주제에 늘어나는 주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피부 좋다는 말에 우쭐해서 피부는 평생 신경 안 써도 되는 줄 알았다.
웬걸, 이마는 주름이 와글와글하고 눈밑에는 지방주머니가 불룩하고 팔자주름이 한쪽은 두 개로 짝짝이가 되어있는 얼굴은 거의 자기혐오 수준이다.
요즘 K 뷰티의 붐을 타고 한인 화장품 코너도 많이 생기지만 케네디언 잡화점에도 제법 한국 화장품을 많이 진열해 놓고 아마존보다 더 좋은 가격에 팔고 있다. 그래서 한국 제품을 욕심껏 사재낀다.
늘그막이 돼서 피부관리에 들어가시려고.
내가 화장하는 작은 테이블이 흰색이라서 유리로 덮어 놓았다. 스킨은 닥토가 아닐 때는 제형이 묽어서 손바닥에 덜다 보면 몇 방울씩 바닥에 떨어지는데
바닥을 닦는 것을 잊고 있다가 휴지로 닦아보았다. 안 지워진다. 물에 젖은 타올로 문질러 보아도 그대로.
빛의 방향을 따라 옆으로 보아도 안 닦여져 있어서 윈도우 클리너를 듬뿍 묻혀서 닦으니까 그제야 방울 방울이 닦아지더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케미컬로 시작해서 화학으로 끝내준다. 화학이나 케미컬이나 똑같은 말이라도 어이가 없어서 말을 바꿔볼 뿐.
샴푸, 트리트먼트, 린스를 필두로 해서 얼굴에 바르는 기초 화장품 및 색조화장품이 몽땅 화학제품이다. 바늘로 찌르는 제품까지.
선크림이 묻은 팔이나 손으로 만진 차의 시트커버는 잘 안 지워져서 허옇게 얼룩이 져있다. 안 지워질 땐 무조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클리너로 닦아줘야지. 세안은 클렌징 폼이나 오일로 하고 몸은 바디 스크럽으로 갉아낸 다음에 바디워시로 헹구고 마모된 피부에 윤기를 주려고 바디로션을 바른다.
머리는 탈모에 신경 쓰기 때문에 온갖 요법을 쓰고 스팀타월을 썼다가 찬물로 헹구고 헤어용품을 치덕 치덕 바른 후에 냉풍 온풍으로 말리고 뜨거운 고데기로 쭉쭉 피거나 컬리 헤어를 만든다.
머리칼이 외치기를, 아니 얼굴과 몸이 합창을 하기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못살게 구냐고 절규할 것만 같다.
죄지은 것은 사실이지.
꺼칠한 피부에다 자글거리는 주름과 부스스하고 갈라진 머리카락, 얼굴을 벗어난 목부터 몸도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장난 아니니까 심하게 관리해 주는 거다.
손톱 발톱에도 칼라에다 온갖 장식에다 그렇게 바르고 붙일 수가 없는데 친구도 그거 몇 달하다가 손톱이 뒤집어져서 멋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다고.
늙지 않는, 유난히 동안인 사람에게 칭송을 하면 방부제를 많이 먹어서라고 우스갯말로 답한다.
먹는 것 중에서 직접 플라스틱을 먹을까 봐 걱정되는 것이 아보카도나 오렌지를 넣은 그물망이다. 아무리 가위로 망을 잘 오픈해도
잘디잔 망 부스러기가 떨어져서 음식에 들어갈까 봐 걱정이 많다.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도 불결한데 머리카락은 그나마 고형 단백질이지만
플라스틱 먼지는 완전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먹거리에 들어가는 유화제나 방부제, 호르몬제는 거의 일상이다. 부드러운 빵의 식감이나 통통한 양식새우, 국민 육식까지.
골프장의 저 푸른 초원이 보이는 골프장 뷰의 인기가 시들 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잔디를 푸르고 싱싱하게 하기 위해 살포하는 농약이 근처까지 날아오고 상수도원도 오염시키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골프는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자부터 양말 신발까지 다 화학 섬유, 윈드쟈켓 같이 바람은 안 통하고 땀은 흡수하는 특수재질을 입는데 잔디 가지고 왈가왈부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골프복이야 고가라서 매끈하겠지만 패스트 패션의 옷들은 보풀이 잘 생기는데 보풀 자체가 미세 플라스틱이라네.
이렇게 화학물질로 시작해서 온갖 오염물질 속에서 살아남는 인체의 신비에 경외심을 갖고 믿을 수밖에 없다.
별 이상한 걸 먹어도 소화를 잘 시키던 청년시절을 통과해서 중 장년을 거쳐 노년으로 가면서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고 내장기관이 탄력을 잃어서 음식 양도 줄고
소화력도 현저히 낮아진다.
소화 안 되면 소화제, 잠 안 오면 수면제, 바싹 마른 건조한 대장 때문에 변비가 생기면 변비약에다 지병에 관한 약들이 늘어나는데 이것 또한 화학물질이다.
손톱의 1/10만 한 약을 먹자마자 소화도 잘 되고 잠도 잘 오니 효과가 빵빵한 것이 오히려 더 섬찟하다.
친구 한 명은 몇 년 전에 남편과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고.
각막부터 해서 장기가 필요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했다고 하는데
의대생들이 실습을 하려 해도 실습용 사체가 부족하다면서 인체 해부용으로도 사용한다고 알고 있다.
또 다른 옵션은 필요한 장기를 쓰고 남은 부분을 가족에게 돌려주냐는 것인데 친구는 자녀들이 한국과 미국에 있기 때문에 안 받기로 했다 한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생의 마지막 후에 남겨지는 사체를 훼손이라는 차원보다는 후손들에게 고귀한 유산을 남겨주려는 친구가 다시 보였다. 살림하는 평범한 할머니가 어찌 그런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했을꼬. 그런데 남편은 한동안 망설였다고 한다. 남자들이 생각이 깊은 것인지 아니면 겁이....
먼지로 돌아갈 육신이 움직일 동안 바르고 입히고 먹이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안 남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런데도 싼 것부터 명품까지 급수를 정하는 세상에 휘둘리는 인생이라니.
그런데 샴푸나 화장품이나 의약품등은 처음에는 잘 듣는 것 같다가도 내성이 생겨서 자꾸 바꿔야 되고 도수가 높아지니 미칠 지경이다.
생전에 방부제와 맞먹는 화학물질로 육신을 하도 빵빵하게 채워 놓아서 사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궁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