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년도 훨씬 전에 미국 비자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자를 받으려면 미국 대사관이 문을 열기 몇 시간 전에 대사관 담을 끼고 골목을 구비구비 돌아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새벽 다섯 경, 깜깜할 때 도착해서 동쪽이 환해지면서 기지개를 켤 때 즈음에 업무가 시작되어서야 줄이 움직이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사관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줄을 따라서 계단을 통과해서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번호표를 나누어 주는데 그 표를 받고도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서너 개의 창구에서 미국인 면접관과 통역하는 사람들이 번호를 부르면 마치 죄지은 사람이 판결을 받으러 불려 가듯이 왠지 모르게 갑자기 주눅이 들었다. 인터뷰 창구에 서서 유리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인터뷰가 시작된다.
나도 그 구멍이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인양 꼭 붙들어야 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붙어 서서 가까스로 끝내고 2~3일 후에 비자를 받으러 오라는 소중한 표딱지를 받아 들었을 때 밀려오던 그 감격이란.
인터뷰를 하고 난 후에 사람들이 한결같이 통역하는 한국 사람들이 미국인 면접관 보다도 더 불친절하다고 투덜거렸다. 뭐 비자를 못 받은 분풀이도 있었을 테지.
나중에 그들의 딱딱하고 오만한 태도가 미디어에 많이 나오더니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당시 미국 비자가 받기 힘들다는데 비자가 나왔고 들떠서 대사관을 나오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비자를 찾으러 오라는 날짜에 창구에 가서 비자를 찍어줄 줄 알고 여권을 내미는데 나도 모르게 내 가슴도 활짝 펴지면서 당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이 내 서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그 직원이 자리로 돌아오더니 '너는 작년에 이민 신청을 해서 이 비자를 내줄 수 없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이란 데는 처음 가는 것이고 미국에 이민 신청을 한 적이 결코 없는데 작년에 서류를 냈다니.
내가 작년에 무엇을 했더라? 갑자기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우물쭈물하는데 메모를 써서 나에게 건네주면서 미국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메모에는 내 이름, 생년월일, 주소가 적혀 있었고 다 맞는데 주소가 영 엉뚱한 것이었다.
그래서 혼미한 가운데서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이건 내 주소가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창구의 문을 찰칵 내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대사관을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집까지 와서 생각해 보니 무언가 서류상에 착오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받아 든 메모에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의 신호음을 듣고 있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 또 다른 내가 전화선 저편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결국 동숭동 한 아트 센터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동명이인인 데다 생년월일도 똑같은, 여자가 아닌 남자분을 찾아냈다. 내 이름이 남자 이름 같기도 해서 사춘기 때 이름 때문에 잠깐 고민한 적은 있었지만 수많은 서울 시민 가운데서 생년월일까지 같은 사람 때문에 미국 비자를 못 받게 될 줄이야.
그분도 일년 전에 미국 이민 신청을 해 놓아서 사무실 일로 출장을 가려고 해도 못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면서 자기 잘못도 아니면서 공연히 미안해했다.
나중에 미국 대사관의 착오로 알려져서 한 번 더 인터뷰를 하고는 미국 비자를 받기는 했다.
그때 이민 신청을 하셨던 그분도 오래 전의
이 해프닝을 기억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 것이다.
나와 영어 이름도 같으신 분, 그때 많이 당황하셨죠?
예전에는 각 나라에 상주하는 미국 대사관의 문턱이 높았고, 지금은 미국 국경을 넘으려는 밀입국자를 잡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실정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멕시코인인지 중국인인지 밴 트럭의 의자를 분해해서 그 속에 앉아있다가 발각되어 의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그 속에 들어있던 사람을 잡는 화면을 얼핏 본 기억이 있다. 밀입국하려는 사람이나 잡아내려는 사람이나 처절한 노력을 한다.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촌들도 형제 친척에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불러들여서 스몰 비즈니스를 했다.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을 정도의 긴 이민 역사를 가진 나의 친척들.
그 많은 친지 중에서 일부는 체류 기한을 넘겨서 불법체류자로 불안에 떨다가 나중에 구제되어서 영주권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데.
불법체류자일 때는 멀리서 경찰차만 봐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뒷길로 돌아다니곤 했었다나.
사실 이민 단속 국원과 경찰은 업무가 다르건만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 마음을 졸이며 숨어 다녔다니.
나도 그 당시 귀하디 귀한 미국 비자를 받고 드디어 미국에 갔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로 정차하고 있는데 뒤에서 '쿵'소리가 나서 보니까 뒷 차가 바짝 붙었다가 내 차를 박았다. 목이 휘청하면서 한동안 목에 받침대를 하고 다니는 접촉사고가 났었다. 경찰서에 가서 사고 경위를 밝히는데 그들이 불법체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교통사고만 다루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과 이민국은 별도라서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고.
요즈음처럼 미국의 불법체류자들이 몸으로 느끼는 추방 공포와 재입국 시의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데도 혹시나 해서 한국의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 가고 미국 땅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친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살벌하다.
내가 미국 비자를 받을 때만 해도 외국 하면 미국이 동일시되던 아주 먼 옛날이었네.
캐나다=미국이라는 미국의 공조(?) 의식 때문 인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잡아내려고 살벌한 심사를 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캐나다 시민권자는 버스패스같이 생긴 시민권 카드만 있으면 국경에서 그냥 통과시켰는데 지금은 여권을 소지해야 되고 많은 질문과 함께 스캔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밴쿠버에서야 시애틀까지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니
day trip이 되는 거리라서 점심 먹고 쇼핑한다면 웰컴 하면서 보내 주었다.
그러다가도 느닷없이 정보에 의해서나 랜덤으로 차를 사무실 쪽으로 대라고 손짓을 하면 그때부터는 장시간 걸릴 각오를 해야 된다. 밀입국이거나 마약 소지자에게는 일체 자비가 없고 관광버스가 통째로 걸릴 때는 스케줄 변경을 발 빠르게 해야 한다. 세관에서 마약 소지나 밀수의 의심이 들어서 조사할 경우에는 차의 트렁크 바닥과 의자가 찢겨 나갈 각오를 해야 된다.
한 번은 작은 아이가 친구와 시애틀을 갔다가 캐나다로 들어오면서 주소를 물어봐서 알려줬더니
국경에서부터 거의 한 시간을 경찰차가 따라왔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고.
줄기차게 쫓아오다가 슬그머니 사라졌으니.
국경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국경을 통과시킬 사람들을 정보나 서류 검토로도 미흡하다면 차별적으로 믿는 것보다는 아예 다 의심하는 편이 더 효율적 이리라.
스톡홀름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버스에서 경찰견을 몰고 올라 온 경찰들에 의해 끌려나간 두 명의 청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은 채로 버스는 출발했다. 또한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이스탄불로 들어오는 차량의 짐 검사는 긴 선반 위에 짐들을 올려놓은 채로 고기 삶는 솥의 고기가 익었는지 보려는 것처럼 긴 쇠꼬챙이로 짐들을 쿡쿡 찔러보곤 했다.
국경과 국경 사이에서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국경에서 두 나라 시민권자의 생체정보, 여행 서류 및 다른 국경 통과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상호교환 한다고 한다. 즉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입국해서 제3 국으로 입출국을 할 정보도 캐나다 정부가 다 알게 된다는 것. 이유 인즉은 상호 입국 출국 정보 시스템 협조를 통해서 위험한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함으로써 국가 안보를 지킨다는 것이다.
개인 사생활 보호에 끔찍한 나라에서의 이러한 아이러니도 어쩔 수 없다.
그만큼 국경을 철통같이 지키겠다는 의지이니.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부가 편중되고 물질의 균형이 깨져서 수많은 난민들이 남의 나라 국경에서 들여보내 달라고 울부짖는가 하면 보트피플들이 바다에서 하염없이 떠 있거나 서류 위조와 요행을 바라는 밀입국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밀입국을 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 불법체류자가 되며, 정식으로 입국해도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한 순간에 서류 미비자가 된다. 그다음의 삶은 두 손 두 발이 족쇄에 묶인 것 같이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을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추방이나 구금을 당하면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한다. 하지만 역사가 존재하는 한 이 행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도전하려는 성향에 덧 붙여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힘겨루기는 계속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