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측한 터키 여행

화장실에 갇히면 알게 되는 일

by 그레이스 강

변기에 앉아서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이며 낯선 땅에서,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잃지도 않았을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나서 다시 찾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면서 노력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강변했던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서.

내가 터키 이스탄불에 살려고 가기 전에 답사여행을 갔던 첫 번째 터키 방문에서 느낀 마음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무릎을 쳤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여행을 포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리 몸의 막힌 기운을 열어주는 것이 여행이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는 그 말을 마음판에 고이 아로새긴 채 여행을 하곤 했다.

막상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가 뚫린 것이 아니라

더 막혔는지 너무 피곤해서 여행한 날 수만큼 쉬어야 하는 여독 때문에 고생을 하곤 한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 날 설레는 기분과 공항에서 유유히 캐리어를 끌고 걸어 나가서 느끼는 혼자만의 멋스러움과 실적 위주의 삶에서 오는 긴장의 끈을 '탁' 놓아버린 듯한 해방감이 주는 매력 때문에 종종 여행 중독증에 걸리곤 한다.


'이스탄불'하면 어딘가 퇴락한 신비가 깃든 것 같은 '콘스탄티노플'이란 옛 이름이 떠오르는 천년의 고도.

땅 속과 밖에 유물과 유적이 묻혀있고 쌓여있는 터키 최대의 도시 이스탄불의 끝자락은 유럽에 속해 있고 나머지는 아시아에 속해 있는 특이한 지형이다. 그래서 과거 10여 년간 EU에 가입하려고 EU에서 요구하는 기준의 인프라로 개선하고 정비하면서 노력을 했거만 EU는 여러 이유를 들어서 아직도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주지 않고 있다. 터키 자동차 번호판에도 한쪽 면은 EU 표시를 하려고 EU의 상징색인 파란 공간을 남겨 놓았었는데.


음식은 또 어떤가? 식량을 자급자족할 정도의 곡창지대여서 동토인 러시아에 토마토나 곡식들을 수출할 만큼 터키산 밀가루로 만든 모든 빵은 다 맛있다. 맛없기로 치면 북미의 빵이 아닐까?

단 터키와 비교해서.

미국이나 캐나다의 슈퍼에서 사는 식빵이나 햄버거 번은 뻣뻣하기가 나무 등걸을 씹는 것이 나을 정도로 맛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버터를 듬뿍 넣은 프랑스의 '브리오슈'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 같다.

그러나 터키의 빵은 어디서 사든 다 맛이 있고 언제나 옳다. 슈퍼에서도 직접 빵을 구워서 팔기 때문에 빵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가면 갓 나온 따끈따끈한 빵을 살 수 있다

.


사건 당일도 그 폭신한 빵을 사기 위해서 남편과 둘이서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신나게 콧김을 뿜으며 슈퍼로 갔다. 디너롤을 하나씩 떼어내지 않고 동그랗게 다 붙여서 커다란 원형의 빵을 구워 내는데 한국사람들은 그 빵을 '꽃빵'이라고 부른다나.

그 빵들을 커다랗고 긴 넓적한 나무주걱으로 떠서 트레이에 담기도 전에 두 개를 사서 봉지에 담는데 그 안에서 솔솔 나오는 이스트의 시큼한 술맛과 어우러진 신선한 밀가루가 내뿜는 따뜻한 그 향은 아주 봉지 채 뜯어 먹고 싶을 정도로 입맛을 자극했다. 숙소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빵 봉지를 남편에게 쥐어주고는 건물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화장실을 찾았다.

이층 구석의 기도실을 거쳐서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려는데 화장실 문이 안 열리는 것이었다.

손잡이와 락을 아무리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돌리다가 (자꾸 돌리면 더 안되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겉옷을 벗고 본격적으로 화장실 탈출 작전을 감행하려는데 갑자기 해리슨 포드의 리즈시절 영화인 'Witness'가 생각이 났다. 아래 위로 뚫린 화장실 문이라서 아래로 나갈 수 있나 보니까 영화에서는 어린아이라서 가능했겠지만 내 몸뚱이로는 어림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문을 두드리며 '헬프미'라고 외쳐도 보고 '매니저'라고 소리쳐 보아도 바깥은 조용하기만.

진땀 흐르는 시간이 상대성이고 뭐고 절대적으로 길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밖에서 열쇠로 문을 열어 주어서 나와 보니 히잡을 쓴 여자들이 화장실 가득 차 있었는데 근심스러운 듯이 커다란 눈만 굴리고 있었다. 아주 아주 적막하게.

도와주려고 왔지만 터키 말을 못 하는 나를 탓할 수 밖에.

영어를 하는 여자 매니저가 친절하게 문을 여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당시는 혼비백산해서 그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삼중 키에다가 안에서 키를 꽂아 놓으면 밖에서 아무리 열쇠로 열으려고 해도 열 수 없는 난공불락의 락 시스템에 놀랐다. 캐나다에서는 삼중 키는커녕 이중 키도 없고 한번 돌리면 열리는 허술한 열쇠 구멍은 한심하다 못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날은 깜빡하고 한 번만 돌리면 되는 것도 그나마 손을 아끼느라고(?) 잠그지 않고 자는 날도 많았으니.

삼중 키? 완전 그게 뭔데 싶으면서 그렇게 문짝부터 철벽인 나라라서 약간 정이 떨어지더라.

그 난리를 치고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슈퍼 입구에 오니 남편은 남편대로 나를 찾다가 저쪽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뛰어오고 있었다. 이슬람 동네에서 허그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이산가족 상봉이 이렇게 감격스러우랴? 심봉사가 눈을 뜨고 심청이를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기뻤을까?


왜 더욱더 생환의 감격이 물결 쳤느냐 하면 일찍이 터키에서 지사 생활을 했던 친구가 내가 터키 여행을 간다니까 충고한 말이 불현듯 생각나서였다. 터키에서 여자들이 실종되면 창녀로 팔려간다고. 그 무서운 인신매매니.

또 어떤 터키 여자가 유명 백화점 앞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 여자에게 자기 엄마에게 선물할 향수의 향을 맡아봐 달라고 한 후에 그 여행자가 실종되었다는 괴담이 떠 돌고, 음료수 먹지 말라, 술집 따라가지 말라등 위험 경보가 많이 떴었다. 난생처음 가 본 나라에서 사람이 없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경악스러운 일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없어지는 일은 영화에서나 있음직 하지만 요즈음은 영화가 오히려 시시할 정도로 영화 제작자들에게 텐션을 주는 괴기한 일이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현지인들이 여행객에게 아무리 친절하다 하더라도 언어, 문화, 생활, 종교가 다른 곳에서는 사고가 안 생기면 0% 이지만 생기면 100%이니 '조심'을 유치원생의 이름표처럼 목에 걸고 여행을 해야 하나보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나처럼 엉뚱한 데서 이런 '망측한 터키 여행'같은, 도 안 되는 한 건을 터뜨리긴 한다만.

내가 사는 동네 공원안에 있는 화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