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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Sep 17. 2019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쪽도 여자 친구 기다리세요?

외국에 나와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할 때 한국의 자기 고향식으로 발음과 악센트로 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지만 이민 1세들은 먹고살아야 되니까 생활 영어로 몇십 년을 버티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영어에 관한 오래된 우스갯소리 중에 전라도 할아버지와 경상도 할머니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한참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집의 문을 두드리니까 집안에서 할머니가 '후(who)꼬?' 하니까 할아버지가 '미(me)랑께'라고 했다는.


요즈음 여자들이 하도 화장발이 세서 화장을 지우면 누군지 못 알아본다는데 '나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는데.


밴쿠버에 여름이 오면 젊은 여자나 나이 든 여자나 모두 끈만 달리고 가슴골을 드러낸 티셔츠만 입고 집 밖으로 몰려나온다. 긴 우기 끝에 작열하는 태양을 즐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밴쿠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거리마다 바글거린다. 그러다가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면 다들 집으로, 커피숍으로 들어갔는지 한산하다. 계절의 여왕인 여름철에 제일 고민스러워하는 것은 밴쿠버의 강한 햇볕과 자외선이다.

내가 어릴 때는 만리포나 해운대 같은데 피서를 가서 새까맣게 태우고 오면 좀 있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허연 피부로 나타나면 바캉스도 못 간 사람처럼 없어 보였다는.

살이 벌겋게 익었다가 점점 까매지면서 허물을 벗듯이 피부 껍질이 벗겨지면서  가려워서 긁다가 맨질맨질해지면서 가을이 오기 시작했었다. 비타민 D가 생성된다고  그을린 피부를 선호하다가 이제는 반대로 화상의 위험이 있느니,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느니 하면서 햇볕 자체를 차단한다.

그러니 미용에 민감한 여성들이 볼 때는 진리가 변하는 것 같아서 무지하게 찜찜하다.

물론 공해가 적었던 시절과 요즘을 비교하는 자체가 불필요하지만.

한동안 선탠 크림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선블록 크림을 수시로 발라야 하니. 선크림의 부작용은 없나보네.  선크림 처음 나왔을 때 바르고 나서  얼굴이 부어서 다신 안 바른 것이 몇십 년.

 운전할 때 왼쪽 뺨이 좀 그을려서 그렇지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꼈.

부족한 비타민 D는 피검사하면 나오니 약으로 먹으면 되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는건가?

              용기도  산뜻한국 화장품들


화장품의 천국이자 K뷰티를 창조해 낸 한국은 여성들이 화장에 심취해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용 화장품도 개발되어 선을 보인다니 지나친 상술인 것 같다. 그래서 외국 화장품 회사들도 신제품이 나오면 한국에 먼저 보내서 반응이 좋으면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출고를 한다고. 그래서 외국 화장품 회사의 회장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자사 제품의 폭발적인 인기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는 사진들을 종종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회사들도 맥을 못 추고 한국 화장품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국 화장품들이 조악했기 때문에 무조건 외국 화장품만을 선호해서 남대문시장의 암매매 상인 일명 도깨비 시장에서 구입을 하던가 미국에 이민 간 친척이 한국을 방문할 때는 선물 꾸러미 속에 반드시 미제 영양 크림이 들어 있어서 아줌마들이 보물처럼 아껴서 눈꼽만큼 찍어서 바르곤 했다. 코티분, 폰즈크림, 엘리자베 아덴 크림 같은 것들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고급 외제화장품, 시슬리나 랑콤, 에스 로더등이 보편화가 되다가 급기야는

순 한국산 로드샵 화장품이 가성비가 좋아서 파죽지세로 늘어가면서 전 국민의 화장술이 날로 날로 발전하고 있다.

 미용기구와 먹는 콜라겐까지 다양해도 나와 무관


상황이 이쯤 되니 성형수술을 한 여자가 성형전의 어릴 때 사진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것처럼 화장을 지운 후의 쌩얼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남자 친구와 만나기로 한 여자가 바빠서 처음으로 화장을 못 한채 약속 장소의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 친구가 와서 옆에 서 있다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그쪽도 여자 친구 기다리냐?'라고 했다는 웃픈 개그에 웃을 일 없는 이민 생활에서 빵 터졌었다. 웃고 넘기기에는 뭔가 한 자락 깔려있는 어두운 그림자의 정체는?

다이어트 때문에 수영을 해도 물에 지워지지 않는 화장품을 써야 안심이 되는 시대가 올 줄이야.

 한국에 나갔다가 친구 따라 간 성형외과도자기 피부의 무결점인 상담 실장이 주름도 상처이고 견적이 많이 나오시겠다는 말에 쇼크 받았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한국 사람치고 늘씬한 팔등신에 쌍꺼풀 진 눈, 뛰어난 패션 감각등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친구였는데 어쩌다 그만.

그래서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한국 방문을 할 때,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아무도 안 만나고 재빨리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부터  듬고  옷을 사 입은 다음, 방문 일정을 시작한다고.

나도 터키에서 돌아와서 얼마 안 되어서 한국에 갔다가 친구가 사는 아파트의 지하에 신세계에서 하는 최고급 슈퍼 마켓이 있었는데 친구가 마침 그 위층에서 내려오는 동안, 하도 유명한 슈퍼이길래 뭐가 있나 하고 돌아보는데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고 외국 식품이라 해도 내가 캐나다에서 사 먹는 제품들은 눈에 띄지도  않고 유럽의 희귀한 치즈나 육가공품들이 많이 있었다. 슬슬 구경하는데 직원들은 나를 위아래를 스캔하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차렸다. 그들의 시선이 제일 오래 머무른 곳은 역시 가방이었다. 나야 아무 로고도 없는 가볍고  자루 같은 터키의 양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는. 북미의 이민자 행색에다 아랍풍의 터키 가방. 명품 퍼에  명품백을 들고 가야되는 규정은 없을 텐데.



다시 화장으로 돌아가서 나의 화장 시간은 10분 이내이다. 파운데이션은 아예 없고 BB크림에 눈과 입술의 색조화장이 끝이니 시간이 걸릴 것도 없지.

그렇게 짧은 이유는 어릴 때부터 들어온 '피부가 좋다'라는 말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를 닮아서 피부가 쫀쫀하고 잡티가 없었다. 창백하고 얇아서 핏줄이 보이는 그런 피부가 아니라 낯이 두꺼웠다.

학교 다닐 때에 한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네 얼굴에 손을 대면 쏙 들어갈 것 같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물어 보지도 않고

그냥 아가 피부처럼 좋다는 뜻으로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곤 나는 피부가 좋다고 생각하고 피부관리라는  말은 딴 세상 이야기로 치고 살았다.

40번 혜경( 은퇴에 관한 책을 내신 교수님)아, 나한테 한 말 기억 나니?


갱년기가 지나고도 한참인 지금 나의 피부는 팔자 주름 플러스, 이마의 상처인 주름이 파이다 못 해 세로 주름까지 생겨서 화장을 넘어서 변장술이 뛰어날 정도로 관리를 잘하는 친구가 오죽하면 이마에 보톡스를 하라고 했을까?

사실 어디에서 보톡스를 놓아 주는지 조차 상식이 없는 나에게.

은퇴를 하고 시간이 남아도 안 했던 짓을 이제는 도저히 내가 봐도 볼 수가 없어서 한국산 저가 화장품 중에 일명 '콧물 스킨'을 사서 하루에 몇 번씩 바르니 피부가 좀 부들부들 해지는 느낌이다. 그것도 생각이  때 가까스로.


생화학의 발달과 레이저 기술. 성형술로 주름이 펴지고 팽팽한 피부를 유지한다고 해도 화장을 지우고 난 얼굴이 너무 밋밋하거나 부자연스러우면 딴 사람처럼 보여서

남자 친구뿐만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점점 아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 어차피 나이가 들면 거울을 거의 안 보게 된다.

내가 봐도 무서우니까.  

아직 노안이 없어 바로 책이나 식당 메뉴를 볼 수 있고 머리숱이 약간은 건재해서 뽀글이 파마는 (아직) 안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뿐.


세월은 각 사람의 인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맘대로 흘러가 버리는 무심함에 매달리지도

질척거리지도 말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나이에 따른 얼굴의 변화가 파노라마로 펼쳐질 때 기분이 나쁘다.

              2019년 자연 그대로 본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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