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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Oct 08. 2019

터키에서 이상했던 세 가지

빵집, 슈퍼, 화장실

초대받은 어떤 집을 처음 찾아가는데 자기네 집의 골목 어귀에 빵집이 있는데 그 빵집을 주욱 끼고 들어와서 왼쪽의 타운하우스 단지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가르쳐준 대로 그 골목까지 다 와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빵집은 보이지 않고   구멍 가게 같은 집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이 내가 찾던 빵집이었다.

그 빵집은 캐나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한국에도 있는 것이 아닌, 터키에 있는 빵집이었다.

터키라고 하면 아랍 쪽에 있어서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막도시들로 되어있는 나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점의 경계 국으로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명품들과 자급자족하는 싱싱한 농산물들, 우리나라 60~70년대의 푸근한 인심들이 어울려서 묘하고도 풍성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 덕분에 한국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데다가 터키가 볼 것도 많고 아름답다고 해서 한국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여행지중 하나가 된 지 한참 되었다.


그 동네의 빵집 같지 않은 빵집이 이상해서 알아보니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주식인 빵을 싸게 공급한다고 동네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따끈따끈한 빵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빵집이란 적어도 옛날의 종로에 있던 추억의 고려당 빵집으로 해서 요즘의 디저트 카페 같은 정도는 되어야지, 그렇게 썰렁한 빵집은 보기도 처음 보았다.

특히 비 오는 날, 이스트와 밀가루가 절묘하게 어울려서 구수하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뜻한 느낌을 주었던 빵 냄새, 또 그 앞을 지나가면 유리창 너머로 큰 기름 솥에서 건져 올리는 고로케(크로켓)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수북이 쌓여있던 그런 빵집이 아닌,  터키의 이상한 빵집에 깜짝 놀랐었다.


터키에서도 지금이야 대부분 서서 계산을 해주는 슈퍼가 많지만 예전에는 슈퍼에서 일하는 캐쉬어들이 다 의자에 앉아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줄줄이 서서 물건을 계산대 물건에 놓으면 캐쉬어들이 회전의자에 앉아서 물건들을 스캔하고 계산도 했다. 하도 이상해서 터키인에게 물어보니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권위주의적인 것이 남아 있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하루 종일 서서 일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서는 여자 캐쉬어들이 힘이 남아도는 건지, 서비스 정신 인지 모르지만 10kg짜리 감자도 번쩍, 5kg짜리 밀가루 포대는 가뿐히 들어서 스캔하는 것을 보면 참 나라마다 체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다고 느꼈다.



돈 받는 화장실은 터키에 가서 처음 보고 그다음은 유럽에서였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가는 중에 들린 고속터미널의 화장실은 참으로 고색창연하였다. 벽 면은 고상한 벌건디(짙은 자주색) 대리석에 황금 문양이 들어간, 우아한 톤의 분위기와 청결도도 괜찮았다. 베트남은 MSG를 하도 즐겨 써서 Pho를 먹고 온 날에 예민한 사람은 입이 마르고 잠이 온다는데

터키는 청소하는데 케미컬을 많이 쓰고 락스를 들어붓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지린내도 거의 안 나고 사용할 만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앉아서 일을 보는 수세식에다가 벽 위쪽에 매달려 있는 물통의 긴 쇠고리 줄을 잡아 내려야 되는 변기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옛날 푸세식에서 수세식으로 바뀌는 중간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화장실 구석의 수도꼭지 앞에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이 찰랑찰랑 넘치고 있었다.

그 이름하여 수동식 비데. 물론 여러 칸의 화장실 중에 이런 전통 고수형이 2개이면 8개는 우리가 사용하는 의자 식이었지만도. 다큐에서나 보던 아랍에서는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먹고 왼손으로는 뒷일을 본다던 것을 실제로 보고야 말았다.

나름 아이들을 신경 쓴 세면대


지금도 오래된 터키 주택에는 이런 터키식 화장실이 많이 있다. 특히 시골에는.

그리고 지금은 찜질방이 대세이지만 래 전에 한국에서 터키탕이라고 했던  진짜 터키탕은 대리석을 데워서 그 위에 엎드려서 몸을 대고 다가 씻는 식의 목욕탕이고 남 여탕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데 한국의 터키탕은 어떤 이유로 그렇게 퇴폐적으로 왜곡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말하자면 밴쿠버의 UBC대학 근처의 누드비치로 말할 것 같으면  여과 없이 보기에는 민망한, 그러나 자연에 가까운 모습에 대처하기 힘들 뿐이다. 할아버지가 나체에 백팩만 메고 다니는 그 뒷모습을 상상만 해도 어이가 없다.

나의 정서로는.


터키에 가면 길거리마다 프로퍼간다가 적힌 현수막과 터키 국기가 곳곳에서 펄럭이는 것을 수없이 본다. 아울러 관공서나 경찰서, 심지어는 개인 회사 사무실에 붙어있는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초상 사진이 붙어있는 것 볼 수 있다. 부리부리하고 강한 의지가 보이는 빨아들일듯한 눈과 민족을 살리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이는 입매를 가진 멋진 그의 사진을

나도 아이돌 팬처럼 한 장 갖고 싶을 정도 매력적이었다. 금도 그를 모하거나 하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에 뒤이어 터키 공화국을 세운 터키 아버지인 그의 개인으로서의 삶은 어땠을까?

몇 년의 결혼 생활을 한 후에 그 옛날에 벌써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았다. 자녀가 없었는데

설에 의하면 자기가 자녀를 낳으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권력에 붙어서 영화를 누리려는 자들에 둘러싸이고  자녀들 간의 권력 다툼이 생기면  나라에 해악이 될 것이라며 더 이상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낳지 않았다고 하는데.

뭐 건국 신화는 미화를 기본으로 깔고 있지만 그래도 멋지 않나?

그리고 58세에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9시 5분에 순직했다지 않는가.


집권 초기에 주장하던 정교분리와 세속주의로 오스만 왕조 시절과는 다른 근대적인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그의 건국이념과는 달리 지금은 다시 이슬람 복고주의로 돌아가고 있는듯 하다. 공공장소에서는 히잡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이제는 히잡을 다시 많이 쓰는 것 같.

는 비행기 승무원에게 무릎 위의 길이가 되는 스커트는 입지 못하게 하며 머리를 묶는 말총머리 헤어 스타일을 해도 머리의 정수리 부분에 너무 높게 묶고 찰랑거리게 하면 야하다고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다.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서 전 국민이 무슬림이라고 자처하지만 우리나라의 옛날처럼 국교가 유교나 불교일 때,  신실하지 않아도 자신의 종교를 불교니 유교니 하는 것 과 같았다. 터키의 주민등록증에 반드시 종교란이 있는데 시골 같은 경우는 이슬람이라고 쓰지 않는, 확실히 다른  종교신념이 있는 사람은 그 가족에서 축출을 당하고 일자리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복고주의와 세속주의가 혼재되어서 정은 많지만 이해득실을 악착같이 따지는,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사회가 더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길거리를 가다가 중세의 유적인 멋진 건물의 1층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콧수염이 난 아저씨는 어떤 관광객들이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구수한 옛날이야기의 세계로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는 생각을 하면서 옛 콘스탄티노플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무심한 얼굴로 구두만 고치고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는 현대식 건물의 맥도널드 때문에 기분이 잡치게 생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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