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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Sep 13. 2019

미치면 죽는다

일 중독  마약 중독

긴 유리 실린더에 풀을 한 줌 넣고 태우다가 그 위에 얼음을 놓으면 거품이 나는데 그것을 코로 서서히 흡입하면 마치 부드럽고 달콤한 '휘핑크림'처럼 되어 본래의 풀 보다 몇 배의 끝내주는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상은 마리화나를 배로 즐기는 법!

북미의 청소년들이 쉽게 피우는 마리화나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았지만 내 아이가 하지 않으면 그것의 심각함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여기도 돈은 많은데 극한 스트레스와 몸과 마음을 풀가동해야 하는 연예인들과 큰 회사 사장들이나 장복을 하지, 누구나 쉽게 비싼 마약에 손을 댈 수 는 형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더욱이 요즘 나오는 것들은 더 강력해져서 자칫하면 목숨을 앗아 갈 정도로 점점 폐해가 심해지고 있다. 휘트니 휴스턴같 전설의 디바도 점점 해골처럼 말라가더니 급기야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또한 애플 회장이었던 스티브 잡스도 1970년대의 히피 출신으로 마약을 하는 것이 상상력을 배가시키고 창의력을 돋궈 주는 매라고 찬양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거침없는 마약 지대인 북미에 살다 보니 토론토에 살 때에 중국인들의 마약을 운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 아이들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컬럼비아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은 하도 영화에서 많이 봐서 마약이 익숙하긴 해도 옛날부터  '아편'이란 단어가 더 와 닿는것이 사실이다.

19세기 중엽,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전 세계를 종횡무진할 당시, 영국은 차(tea)의 대부분을 청나라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영국의 모직물과 면화는 별로 사지 않는데 영국은 은으로 계속 차를 사다 보니 중국으로 은이 자꾸 흘러들어 가는 것을 우려한 영국이 한 가지 궁리를 해냈다.

인도에다 양귀비를 재배시켜서 양귀비로 만든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을 하여 차 대금으로 치른 은을 다시 회수하기에 이르렀다.

일이 이쯤 되자 이미 중국의 대부분 사람들이 아편 중독자가 되어가폐인이 되는 사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이에 중국 황제가 칙서를 내려서 영국 상인들이 암매매하기 위해 소지하고 있던 아편들을 몰수하여 강물에 흘려보냈다. 이에 반발한 영국이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승리를 거두어 버렸다.

그 이후에 중국은 영국의 속국이 된 것이 아니라 아편의 노예가 되어버리면서  전 국민의 아편 중독화라는 불행으로 중국 대륙을 얼룩지게 한 역사가 남아있다. 

초등학생 때에 중국 만주의 신경으로 유학을 갔던,1932년 생으로서 그 옛날의 '조기 유학생'이었던 친정어머니 동네 노인부터 젊은 첩까지 긴 담뱃대에다 아편을 넣어 피우던 모습들이 기억다고 했을 정도로 아주 아편의 생활화가 되었던 모양이.

아무튼 마약중독의 역사가 긴 만큼 더욱 독해지고 빈 부의 차이가 심할 만큼 고급은 기분만 좋고 거의 부작용이 없는 반면에 싸구려는 현란함 후에 오는 피폐해지는 몸과 마음은 말로 다 표현을 못 한다고 한다

.

 


하루는 저녁에 작은 아이가 집 근처의 교회에 갈 일이 있다면서 나갔다.

밤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 친구 S가 마약 중독이었는데 술과 마약을 끊은 지 4년이 되어서 교회 계통의 모임에서 매년 축하를 해 주는 모임에 갔었단다. 내가 알기로는 S의 아버지는 회사의 CFO이고 엄마는 평범한 전업주부이며 할머니는 채식주의자인 손자를 위해서 각종 요리와 특히 야채로 만든 라자냐 만들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중산층 자녀였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에 술과 마약에 빠져서 지내다가 집을 나와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인 허름한 모텔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마약을 하며 3년 동안 그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살다가 한 방에 있던 사람들이 다섯 명씩이나 마약 과다 복용으로 차례로 죽어 나가는 바람에 그 호텔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그리고 술과 마약을 다 끊었는데 그 중독성이 얼마나 악마스럽게 질기고 독한지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금세 다시 손을 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섭다고,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 참석해서 다시는 손 안 대도록 격려받지 않으면 돈만 있으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그의 고백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축하 케이크를 놓고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는 50회의 축하 파티를 했다고 한다. 어릴 때 마약에 손을 댄 후에 50년 동안 이런 모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다시 마약을 할지도 몰라서 계속 모임에 참석하면서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했다나.


문신을 한 우락부락한 사람부터 창백하고 힘이 없이 축 늘어진 사람까지 열댓 명이 모여서 지난 일 년 동안 술과 마약을 입에 대지 않은 S를 축하해 주고 마지막에는 주인공인 S가 일 년 동안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간증하고 모임을 마쳤다고 한다. 물론 그 모임의 리더도 과거에 마약을 하다가 끊은 경험의 소유자이다.

S는 지금은 직장에 다니면서 사회생활도 잘하고 결혼도 해서 신혼 중이다.


마약 딜러 우두머리들은 절대로 마약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고 그 밑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들은 마약을 해도 좋고 팔아도 좋고 둘 다 돈이 되니까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갑자기 아이들이 돈 씀씀이가 헤퍼지고 학교 수업을 'skip'하거나 밤에 외출이 잦아지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의 마약 청정지대가 보장되는 곳은 세계의 어느 곳에도 없다.

이민을 와서 늦어도 2~3년 후에는 부부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경우는 더욱 더 아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새로운 환경에 이민 와서 부모는 일중독에, 아이는 마약중독이 된다면 나중에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할 것이며 보상을 받을 것인가?

부모는 한국에 있고 아이들만 유학을 온 경우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할수록 혹이 많고  만만치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캐나다까지 마리화나 구입이 제한은 있지만 법 규제 풀렸으니 더욱 위험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단지 사냥총만 허가를 해주고 총기소지가 금지되어 그나마  총과 마약이 합친 콜라보의 난장판은 아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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