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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Sep 14. 2020

제일 해 보고 싶었던 일

행인 2

작은 아이가 어렸을 때, 커서 스턴트 맨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 밴쿠버에는 영화산업이 많이 들어왔다. 길을 가다 보면 큰 버스들과 촬영 장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다운타운의 카페에서 '웨슬리 스나입스' 같은 미국 배우도 보기도 했고.

예전에  셔츠에 흰색 바지만 입었어도 멋진 차인표 씨와 식사 후에 커피 마시러 다운타운에 간 적이 있으니 한국 배우도 만날 수 있다고 하겠다.


미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싼 물가와 인건비에다 아담하고 깨끗한 도시 풍경은 영상미가 좋고 미국의 소도시 같은 분위기이다.  사람도 많지 않으니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차들이 도로에서 질주하는 광경도 무리 없이 잘 찍을 수가 있다.

로마, 파리, 암스테르담, 오슬로, 카잔, 브뤼셀 등 유럽 도시와 시카고, 뉴욕 등의 북미 도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촬영지는 뭐니 뭐니 해도 런던이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늘어진 창가와 검은 철책이 운치를 더 하는 하얀 집들이 늘어 선 아름다운 골목들과 세계 국제기구들이 않아서일까? 아랍의 건조하고 바싹 마르고 폐허처럼 보이는 베이루트 나 암만 같은 도시들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서 배경지로  많이 나온다.

 

이곳 밴쿠버에서도 개인 주택을 빌려서 실내 촬영을 하는데 꽤 많은 돈을 준다고 한다.

영화에 필요한 앤틱 스타일의 카페를 일주일 빌려서 촬영을 한다 치면 그 카페 주인은  요새는 일주일에 10,000불 정도 받는다고 한다. 주인은 그 돈을 받고 일주일 일을 안 하고 크루즈를 떠난다고 신나 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도 영화판에 뛰어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게를 빌려주는 것이 아닌, 내가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싶어서 ^^

샌드라 블럭과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스피드'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하다가 벌써 20년이 흘렀네. 버스가 악당에게 리모트 컨트롤로 탈취를 당한 채로 일정 속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폭발한다는 것 때문에 계속 달리면서 승객들을 옆에 따라붙은 차로 대피시키는 스토리의 테러영화이다. 운전석 뒷 좌석에 한 동양 아줌마가 앉아 있는데 폭파범을 속이기 위해서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를 계속하는데 마침 그 아줌마의 모습을 반복해서 녹화하다 보니 미동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범인이 갑자기 분노하는 장면이 있다.

그 아줌마를 보고 느닷없이 나도 한번 '길 가는 사람 2' 같은 엑스트라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인생사라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도 어떤 때는 사소한 것이 잠자는 무의식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때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실행은커녕 그 생각도 점점 희미해져서 긴가민가 해지고 있을 뿐.

밴쿠버에도 엑스트라 연기센터도 있고 신청하는데도 있다고는 하나 진짜 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었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이러고 있다. 마치 복권을 사지도 않고 대박을 꿈꾸는 어리석은 몽상가처럼.


요즘 같은 때에는 거대한 영화 비즈니스에 나 같은 일반인이 엑스트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고 유튜브같이 일인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자기의 재능과 끼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에 뽑혀야만 뭐가 되는 피동적인 세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유튜브가 처음 나왔을 때는 뭐가 뭔지 잘 몰랐다가 1조 6000억 원에 구글에 팔렸다는 것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공동 창업자 중의 한 명인 대만 출신의 '스티브 첸'이 동양인이어서 대단하다 생각했었는데 구글 코리아의 직원이었던 한국인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유튜브는 개인이 크리에이터도 되고 시청자도 되고 공유하면서 새로운 문화 혁명이라 해도 될 만큼 혁신적인 기술의 웨이브라고 생각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유튜브 클립을 보다가 전화나 카톡이 들어오면 진짜 짜증이 나서 안 받을 정도로 몰입감을 갖춘,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남편도 유튜브를 통해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법을 배우고 있으니 참으로 유익하다.

개그우먼 이성미 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캐나다에 살러 왔을 때,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약속에 조금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들어갔다. 참, 늦은 이유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침을 맞고 늦어서 뛰어들어가기는 커녕 기어들어갔었다. 차에서 내리려고 몸을 틀 때 '악'소리가 나게 아팠으니 잘 걷지도 못 하던 날로 기억한다. 초면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데 이성미 씨의 첫 마디가 '목소리가 임국희 아나운서 닮으셨네요'라는 것이었다.

임국희 아나운서라고 하면 이광재, 강창선, 임택근 같은 남자 아나운서들의 전성시대에 낭랑한 목소리로 1960년대를 풍미하던 여성 아나운서였다. 'MBC의 여성 살롱'인가 하는 프로도 있었고 아무튼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그녀의 이름에 나를 갖다 대다니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목소리라는 것이 집안에서 편하게 말할 때와 밖에서의  사회 목소리와  다르며 이민을 와서 영어를 할 때는 된소리에다가 안 되는 영어 발음을 굴리려니 요상한 소리가 난다. 멀쩡하게 대화를 하다가도 전화를 받으면 저음으로 깔면서 듣도 보도 못 한 목소리를 내는 남편들까지 가세하면 가관이다.


나는 신문에 기고를 좀 하다가 블로그나 인스타도 해 보지 않고 브런치에서만 가까스로 연명을 하고 있는 판에 유튜브 채널까지 넘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아나운서 목소리랑 비슷하다(?) 해도 그건 아니지.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이 나이에는 더 필요한 덕목임을 더 잘 알아가는 이때에.

그리고  구독, 좋아요, 알람을 강조하는 유튜버들의 목소리가 애절하다 못해서 애걸하는 것 같은 것도 괴로워서 더욱.

  몇 십만 독자와 몇 백만 조회수가 나와도 수입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유니크한 콘텐츠라고 해도 촬영에, 편집에 작업이 엄청나니 수익을 신경 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점점 심해지다 못해 뒷 광고니 앞 광고니 해서 눈속임도 심해지니 뭔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의료인들 조차도 버젓이 가전광고를 하는 것을 보고 어이상실.


내가 한다면 그나마 요리 채널일 텐데  손이 아버지 손을 닮아서 어릴 때부터 이미 고 마디가 퉁그러진 손이라 내놓을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걸 만회하느라고 가끔 매니큐어를 해서 캄프라치 해 보는데 그 손으로 요리를 할 수도 없고.

사실 매니큐어는 1920년 대공황 이후에 서양 여자들도 일을 해야 했는데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손톱이 뭉그러져서 이를 커버하느라고 매니큐어가 유행했다는데. 나는  유전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데 무슨 레시피인가에서 가끔은 요리하는 이의 손톱이 깨끗지 않아서 음식도 보기 싫어질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음식을 다 해 놓고 디스플레이로 끝나면 쌈빡한데 반찬을 밥 위에 척척 올려서 먹는 장면에서 옆의 음료수는 밥과 맞지도 않는데 왜 놔두었는지, 왜 화면의 2/3 위치에서 오래 노출을 해서 그 제품명을 뚫어지게 봐야 하는지. 양념도 그냥 번에 부으면 되지 천천히 부우면서 브랜드가 너무 오래 고정되어 있는 것도 속 보이고.

 광고와 협찬이 제일 많은 분야가 요리인 것 같다. 영화 '트루먼 쇼'처럼 노골적이지도 못 하면서.


내가 만약에 한다면, 하고 싶은 것은 책을 읽어 주는 채널인데 저작권도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구수한 목소리와 책 선정도 좋아서 들을라치면 중간에 광고가 나와서 흐름이 끊기니 그것도 난감하다.

 (광고가 붙은 후의 이야기이지만)

40분 정도 소리 내어 책을 읽을 것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숨이 가빠온다. 특히 녹음을 할라치면 이상하게 침이 더 나오고 침 삼키는데 신경이 더 쓰이지 않나? 그냥 목소리랑 녹음 목소리랑 다른 나한테 실망한 지 오래인데 무슨.


이래저래  유튜버가 되기도 틀렸고 '행인 2'의 꿈은 더더욱  없었던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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