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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Sep 20. 2020

삼중고에 시달리네

겉보기와 다르다

누가 캐나다를 공기 청정국이라고 했나?

내가 그랬다. 천당 밑의 999당이라고 하는 밴쿠버의 공기는 록키산맥 밑이라서 맑고 청량하다. 제조업이 없고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한치의 오염도 없다고 해서.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뭐야?

지금은 창문을 열면 폐 타이어가 타는 냄새가 나서 얼른 닫아야 하고 하늘을 보면 해가 났는데 연기에 가려서 붉은 원만 뿌옇게 보인다. 마치 영화의 '오멘'에 나올듯한 음산한 모습으로.

이유는 미국 서부를 태우고 있는 산불의 연기가 캐나다까지 올라왔고 동부까지 분진이 날아간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 '김 과장'에서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대낮의 하늘은 뿌옇다 못해 노을이 지는 저녁처럼 붉은 것이 상했다.

몇 년 전에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양평의 친구 집에 머물렀는데 부엌에 난 창을 통해서 보이는 하늘은 부옇게 안개 낀 것 같았다. 안개가 아니라 미세먼지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지금 초미세 먼지가 밴쿠버 하늘을 담요처럼 뒤덮어서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다. 대기질 오염지수가 인도가 100이라면 밴쿠버는 170. 그렇게 공기가 나쁘다는 인도의 배 정도로 공기가 오염됐다고 한다. 미국의 산불은 잡힐 기세가 없고 비가 많아서 우울하다는 이 곳에 비가 쏟아질 기색도 없다. 공기청정기는 그 어느 곳에도 없고 마존에서 배달도  세월. 사람은 자기가 겪어 봐야만 남의 사정도 알게 마련인가 보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한국 과부, 인도 과부 사정 이젠 확실히 알겠네.

외출할 데가 없으니 프릴 원피스 입고 장보기

한국 마켓과 서양 마켓을 섭렵하는 금요일에  구입한 집콕 일주일치 식량

다음 주도 식량 부족할까봐 사들임

이번 주말에 피크닉이라서 일회용 컵도.

코로나 추석은 공원에서. 송편은 내일 사고


점점 높아지는 엥겔 지수 > 코로나 지수


잦은 번개로 일어난 산불의 화마가 휩쓰는 오레곤주와 러시아의 동토를 녹인 뜨거운 여름 날씨나 다 인간이 예측을 못 한 자연의 재해로 인해서 인간과 동 식물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놀라서 뛰어나온 쥐들이 밴쿠버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문 닫은 식당들이 많아서 음식 부스러기를 못 먹으니 거리로, 주택가로 침투하고 있다.


쥐라고 하면 아주 어렸을 때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일본식 가옥(적산 가옥)에 살았을 때에는 밤에 천장에서 쥐떼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바람에 잠을 설치고 른들이 긴 막대기로 천장을 치기도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래서 쥐틀도 놓고 밥에다 쥐약을 놓았다가 강아지가 먹고 죽는 일도 있었고 사람들도 비관하면 쥐약을 먹고 자살도.  


캐나다에서 쥐가 극성이라고 하니 기가 차다.

제일 많은 지역이 밴쿠버와 빅토리아 시라고 한다.  기후가 온화하고 먹을 것이 풍부한 밴쿠버가 번식력이 강한 노르웨이 종의 쥐들이 선호하는 서식지가 되었다. 얼마 전에 한 식품점에서 라면 봉지를 쥐가 물어뜯은 흔적이 있어서 문을 닫게 하고 방역을 하라고 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음식점의 주방 뒤쪽에 난 문 밖에다 놓은 잔반 쓰레기 통을 헤집고 다니다 주방에도 들어온다고 소문이 나서 문을 닫은 식당도 있다. 음식점이 많은 먹자골목은 예외 없이 쥐들의 고향이라고, 특히 기름진 중국 음식점이 많은 타운은 살이 뒤룩뒤룩 찐 쥐들이 득실거린다는데 집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게다가 나방이 많아졌다. 작년까지도 나방은 여름에 가로등이나 베란다의 등에 붙어 있는 정도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요즈음은 나무 사이로 날아다녀서 흰나비인가 보면 나방이다.

이건 뭐 쥐, 나방, 미세먼지 삼종 세트에다가 코로나로 인해 집에 갇혀서 우울한데 한층 더  가세를 하네.

앞으로 백신이 나오고 약품이나 살균제를 뿌려서 제거한다 해도 다음번에 출현하는 것은 무엇이 되든 간에 더 세고 강한 것이 나올 것이다.


먹고만 사는 이때에 아무 희망 없이  장을 보고 신호 대기에 정차해 있는데 사거리 건너편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것을 보니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해서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인생이란 것이 정해진 룰과 전통이나 관습에서 벗어나면 이단아가 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을 거스르고 내 맘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속에서 꿈틀거린다.

비록 내가 법규를 잘 지켜도 불쑥 튀어나오는 자전거나 행인을 피해 가지 못해서 인명 살상 사고가 나는 것도 순식간이다.  사실 5분 후의 일도 모르지 않나?

정상 궤도를 달리다가도 유혹과 충동을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 패가망신하는 이들을 많이 본다. 또 탐욕에 이끌려서 사기꾼에 놀아나다

알거지가 되기도 하고.


신호가 바뀌고 나보고 가도 된다는 녹색 사인을 보낸다. 그것을 보고 서서히 움직이면서 나의 레인에서만 안전하다는 것이 답답하게만 느껴질까?


삶의 고비마다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서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조건이 무르익으면 언제 쥐처럼  불쑥 나타날지 몰라서 긴장이 된다.  물리적으로 비록 뿌연 하늘과 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따가워서 창문을 닫은 채 명실상부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고 쳐도 정신줄을 꽉 붙잡고  신호가 바뀌기 전에는 뛰쳐나가지 말자. 뛰쳐나가고 싶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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