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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Sep 28. 2020

나 때문에 죽은 두 사람

터키인 1명, 캐나다인 1명

새벽에 들린 비명에 잠을 깼다.

'우 우' 하는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괴상한 소리 때문에. 터키의 개들은 꼭 밤에 영역 싸움을 하는 바람에 개떼들의 짖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찢어 놓는다. 그런데 이건 개 울음소리도 아니고 이상했다. 잠시 멈추길래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까 보다는 좀 작아진 그 소리가 다시 들려서  시계를 보니 5시 20분이었다. 한 20분 정도 소리가 나더니 점점 잦아들다가 사라져 버렸다.


1999년 터키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 지역 주민들과 이스탄불 사는 사람들이 삼일 밤을 집안에 못 들어가고 노천에서 잤다고 한다. 어떤 한인 가족이 아파트 일층에 살았었는데   갑자기 침대가 흔들리기에 지진이 난 줄을 알았다고. 시간이 지나도 멈추질 않고 계속 흔들리는 중에 갑자기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데. 우릉우릉하는 굉음과 함께  땅이 벌어지는, 시커먼 구렁이 열리면서  그야말로 지옥의 소리가 나는데 너무 무서워서 일단 집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 이후에 부인은 쇼크가 와서 한 동안 상담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체를 모르는 소리가 주는 두려움과 오싹함은 겪지 않으면 모른다.


새벽의 비명 해프닝이 끝난 다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가 뜨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오후에 일을 보고 집에 와 보니

현관 앞에 경찰과 스카프 아줌마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드디어 '오리엔트 특급 살인' 같은, 영화에서만 보던 살인 사건이 났나 보다 하면서 졸아서 주위를 기웃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새벽의 비명과 경찰을 연관 짓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는 얼굴의 터키 아저씨가 보이는데 부동산 업자였다.  그 건물주이기도 한. 붉은 얼굴이 더 붉어지고 눈은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새벽에 났던 소리가 그녀가 도와달라고 부르짖던 소리였구나.

욕조에서 넘어지면서 어딘가가 부러졌는데 혼자 사니까 달려와 줄 가족이 없으니 비명 소리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소리를 낼 때에는 이미 기진하여 소리가 작아졌던 것이다. 사망 추정시간은 오전 8시쯤이었다니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일층의 그녀의 집, 내가 살던 바로 위층, 터키상징이 곳곳에           


나는 그녀의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다. 이층부터는 발코니가 있는데 일층은 작은 화단이 있는 구조였다. 머리에 스카프(집에서 쓰는 스카프는 외출용과 다름)를 쓰고 꽃에다가 물을 주고 여늬 터키 아줌마들처럼 유리창을 닦고(터키 사람들은 창문이 깨끗해야 복이 들어온다고 믿음) 청소를 하는 부지런하고 명랑한 할머니였다.

아파트 건물의 지하에는 자그마한 수영장과 사우나. 샤워시설이 있고 작은 코트야드를 사이에 두고 두 건물이 쌍둥이처럼 있는 소규모 단지였다. 준공되자마자 들어가서 채 정리도 안 되어서 어수선한 상태였다. 입주도 다 지 않아서 건물주의 어머니. 여동생 등 친척들도 살고 있었다. 구수한 터키 경비아저씨들이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고 난 할머니 집의 바로 앞에 초소가 있었는데 그도 비명소리를 못 들었단다.

나는 그 소리가 죽음으로 가는 소리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터키에 간 지 얼마 안 되는 이방인이라 전후 사정을 알기엔 역 부족이었고 평소의  오지랖을 떨기에는 시기상조였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터키는 고대시대의 문명이 꽃을 피우고 온 유럽을 침탈해서 강대국으로써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화려한 명성을 날렸지만 현대에 와서는 낙후되고 자존심만 살아서 과거의 명성을 반추하는 망명한 공작부인 같은  느낌을 주는 나라이다.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아랍 하고도 섞이기 싫어하는 등, 뒤죽박죽인 이스탄불의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서 나는 계속 멀미 중이었다.

 

 아랍 냄새가 나는 스벅과 손수레                              러시아 냄새까지 나는 학교 건물


네모난 관이 아닌,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직육면체의 관위에 씌워진 알록달록한 천에서 오는 생경함과 육체 건장한 남자들이 관을 메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모습을 보면서 서글프고 뭐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관위의  요란한 천의 기하학적 무늬가 강렬한 태양 밑에서 꿈속에서 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터키에서 밴쿠버로 돌아와 얼마 안 되었을 때, 저녁 외출을 거의 안 하는 내가 그날은 저녁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 친구가 픽업을 해 준다는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로비로 내려왔다. 파티룸 안에서 인터넷을 보다가 친구 카톡에  그의 차를 타고 모임을 잘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과 자동차 키가 함께 달려있는 키 체인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집에는 다가오는데 가방을 홀딱 뒤집어 흔들어도 보았건만. 남편은 한국에 가서 빈집이고. 친구를 보내고 현관 앞에서 서성이다가 한 번 인사를 나누었던 일층의 한국 아줌마를 찾아서 인터폰으로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일단 로비로 들어는 갔는데. 그날따라 앰뷸런스가 와서 현관 앞에서 웽웽거리며 더 정신을 쏙 빼놓았더랬다. 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파티룸으로 아무 희망 없이 들어가서 앉아 있던 테이블로 가 보니 세상에, 키 뭉치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스테로이드를 맞은 사람처럼 기운이 불쑥 나서 집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복도에 웬 이동침대의 한편에 기대어 서 있는 여자 병원 직원이 있었다. 바로 우리 집 옆의 현관문 앞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안에 환자가 있는데 현관문을 못 열어 주니 혹시 네가 그 집 키가 있냐고.


옆집 여자는 60세 정도의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 아파트에서 가끔씩 팟럭 파티가 열릴 때면 워커를 밀면서 그 위에 음식 한 접시를 얹어서 갈 때 인사를 나누고 한 정도이지, 키를 나에게 맡기거나 그럴 정도로 친하지는 않았다. 잘 걷지를 못 해서 워커에 의지해서 다니늗데 그냥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춤을 추듯 제 멋대로 휘어지는 모양새였다. 참 희한하다 생각했는데 유전성 불치병의 한 종류였다고 한다.

그래도 운전하고 다니고 장도 보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날 밤도 그 요원에게 물어보니 911에 연락이 와서 앰뷸런스가 왔는데 인터폰으로 문도 못 열어주고 집까지 왔는데도 리빙룸에 주저앉은 채 현관문을 열어주려 해도 걸어 나올 수가 없어서 핸드폰으로 통화만 하고 있다고. 내가 스페어 키가 있다 해도 외출에서 돌아오느라 한 시간 이상 지체되었겠지만 문은 열 수 있지 않았을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소방관이 와서 문을 뚫고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소방관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안심을 하고 한동안 복도에서 그렇게 서성이다가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현관문의 손잡이 부분을 동그랗게 따고 그 구멍을 알루미늄으로 막아 놓았다.

그녀는 그렇게 병원으로 간 지 일주일 만에 죽었다.

무슨 병이 그렇게 금방 죽는지, 내가 보기엔 단지 다리를 못 쓸 뿐 말도 잘하고 게다가 운전도 하던데.

두어 달 후에 그 집을 판다고 내놓아서 오픈 하우스를 하는 날에 집 앞이 웅성웅성해서 가 보았더니 휠체어를 탄 남자와 죽은 옆집 여자와 비슷하게 힘이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다리로 걷는 여자와 부동산 중개인이 와 있었다.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니 여동생과 남동생인데 둘 다 같은 유전병에 걸렸다고 했다. 영어로 뭐라고 했는데 처음 듣는 병명이라 기억을 못 했다. 그래서 지금도 무슨 병인지 모른다. 난치성 희귀병이라고 만 기억한다. 그러나 자기네도 언니처럼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던 그 어두운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관심은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그 두 죽음 통해서 알았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가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것과 동시에 사소함으로 그 거리가 그렇게 멀지만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살아내는 것에 대한 지겨움과 실낱같은 소망의 한 줄기를 부여잡고 생존하는 것의 권태감. 살아 있으면서 겪는 모든 것이 씨줄 날줄로 엮여서 한 장의 천이 되어 시신을 담은 관위에 덮인 한 조각의 천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닌지.

울고 웃었고 행과 불행이 불공평하다고. 또 교양과 천박함, 고상함속의 위선들이 다 불필요하게 된 시신. 즉 영혼이 빠져나간 무기물로서 아무에게 질투하지도, 아무것도 미워하지도 않고 나무 송판 속에 그렇게 무심하게 누워있다. 그 어느 것도 탐하지 않은채 사랑했던 모든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위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자기가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친구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침대에서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엄마의 발뒤꿈치가 대리석처럼 매끈거리고 다리 살이 탱탱하고 뽀얘서 금방 돌아가실 것 같지 않다고 했는데  이틀 뒤에 돌아가시니까 간호사가 들어와서 시신의 항문을 커다란 테이프로 막는 것을 보고 그제야 돌아가신 것을 실감했다고.  


자기가 억울한 것에는 눈물이 나도 남의 슬픔에 공감해서 흘리는 눈물은 줄어드는 이악한 이 세상이 일부러 우리를 속이고 있어서 이렇게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 세상을 의심해 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는 것이 복잡하고 인정이나 친절이나 너그러움 같은 것들이 이렇게 빨리 실종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나저나 나 때문에,  나의 무심함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다고 오버하는 것도  눈물이 희소하게 된 현실에서 벗어나 보고 싶어서 생트집을 잡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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