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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Oct 05. 2021

관상과 지방색

선입견이 편견을 만든다

눈꼬리가 내려간 메밀 모양의 눈을 일명 '메밀 눈'이라고 하는데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강하다 못해 독한 면이 있다고 한다.

꼭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독한것과는 거리가 먼 나의 10년 전 여권 사진만 봐도 눈꼬리에 힘이 있고

 풍선처럼 눈매가 팽팽하고 또렷했는데 지금 사진은 메밀 눈인 것을 보아 그렇다.


눈꼬리엔  메밀 눈, 눈꺼풀에 살이 많아서 눈을 덮을 정도로 내려오는 눈은 '거적 눈'이라고도 했다. 거적데기가 덮었다는 표현일 것이다. 지금이야 쌍꺼풀이 조금만 풀어져도 어 올려서 산뜻한 눈을 만들면 되는데  눈두덩의 살이 많아 늘어진다면 잘라야 되나 고민할 것도 없이 성형외과로 달려가면 그뿐이다. 그런데  웬 거적?


인중이 짧으면 명이 짧다든가 콧대가 높지 않고 푹 죽었으면 부모 복이 없단다.

또한 여자의 턱이 흘러서 목과 붙은 무턱을 가진 사람은 남편복이 많다했고 눈썹과 눈썹 사이의 미간이 좁으면 마음이 좁은 성격이라고 했다. 콧구멍이 보이는 들창코는 복이 다 새어나가서 박복한 상이고 귓바퀴가 길게 붙으면 명이 길고 종잇장 같이 얇고 작으면 단명. 입술이 얇으면 간사하고 경박하며 웃을 때 잇몸이 보이는 사람은 천성이 다나. 복중에 제일 큰 복을 누리는 상은 코의 형상에 따라간다고 했다.


지금은 전혀 말이 안 되는 옛날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 세대에는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믿어왔던 인상에 대한 속설들이다. 그 이유는 정보도 풍성하지 않고 먹고살기 바쁘며 자식들도 많으니 까딱 잘못해서 사기라도 당하던가 잘못되면 온 식구가 다 거리에 나앉기 십상이었기 때문에 온갖 지혜를 짜 냈으리라. 사람을 상대할 때 우선 인상을 보고 속지나 않을까 이용당하지나 않을까 하면서 동업자를 만나고 사업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관상과 그에 따르는 유형을 분류하다 보니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데이터 인지도 모른다. 요즘에도 인상은 과학이라고 하지 않는가.


최 씨에 옹니 혹은 옥니에 곱슬머리는 지독해서 상대하지도 말라고 했다는데 최 씨는 아니지만 옹니에다 곱슬머리인 나는  지독과는 거리가 먼 물탱이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을 상대할 때 일단 대면을 하면 한국 사람 특유의 호구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고향을 묻게 되고 동향이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오신 것처럼 감격해서 금방 호형호제를 하면서 급 친해진다. 집안끼리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꼭 문제가 생겨서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으니. 그래서 사람을 사귈때 난로처럼 대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까이 가면 데이고 멀리 가면 춥고.


나의 부모는 1.4 후퇴 때 피난 온 실향민이라서 이북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 지역의 지방 특성 또한 다 달랐다. 최북단에 위치한 함경도에'명사십리'라는 해변이 있는데  캘리포니아 비치 저리 가라 할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추운 지방답게 고랭지 작물의 질이 어마어마하게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아바이 순대'나 삭힌 좁쌀을 넣은 '가자미 식해' , '함흥냉면'같은 고유의 음식이 생겨났으리라. 극한의 추위를 견디어야 했기에 그 지방 사람들은 근면하고 지독하게 절약하며 끈질긴 근성이 있다고. 그래서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한 무한한 노력과 억척의 대명사인 '북청 물장수'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평안도 사람들은 조금 물렁해서  인정이 많고 퍼 주기 좋아하며 음식 손이 크고 헤프다.

내가 어릴 때 집에서 먹던 만두만 해도 엄청 컷다.  국에 있는 주먹만한 만두가 한 입에 안 들어가니 숟가락으로 꾹 눌러서 갈라서 먹을라치면 국물이 뿌예지면서 탁한 것이 싫었다. 친구네 가면 앙증맞게 빚은 새색시 버선코 같은 예쁜 만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만둣국에 수줍게 동동 떠있던 서울식 만두는 딴 세상 식이었다. 그래도 평양 출신 모친은 만두를 수백 송이 빚으면서  이북에서는 오빠들이 사냥해서 잡은 꿩으로 만둣속을 했었다는  부심에  눈물에 젖은 만두를 이남 출신의 우리들에게 먹이고 키웠다.


그 외에 평안도 남자들은 자상하고 가정적이며 인정이 많아서 피난살이에서 무능한 가장들이 많았다. 사람만 좋고 약삭빠르지 못해서 당하기만 하는 등 부인 속을 썩이고. 반면에 평안도 여자들은 통이 크고 생활력이 강해서 동대문 시장의 포목상을 휘어잡았다는.


황해도는  산악 지대가 많아서인지 그 고장 사람들은 소처럼 부지런하고 참을성이 많으며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줄 마음이 솟구치며 정직하다고 한다.

웬만해서는 성을 안 내고 항상 웃는 낯이어서 오히려 그 속마음을 안 드러내는 신중한 성격이라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수를 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업 파트너로서는 고수에 들어간다고.


대강의 이북의 지방색이 이렇다 해도 사람마다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히 장담은 못 하지만 이런 성향으로 대충 알고 상대하며 교제하고 또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북 출신 부모님들이 이해 못 한 것 중의 하나는 피난을 와 보니 남한 사람들의 엄청난 남아 선호 사상이었단다.

아들을 우대하고 딸딸 집에 또 딸을 낳으면 핏덩이를 윗목에 밀어 놓았다는 요즘에는 야만적으로 들리는 말에 분개했다고.

아들만 자식인 것처럼 우대하고 딸들에게 막 대하는 것 또한. 그 옛날에 아들 딸을 그렇게 구별이나 차별하지 않고 다 같이 귀중한 생명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었다는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북 남자들이 여자의 외모를 무지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었듯이 여자는 북쪽 여자요 남자는 남쪽 남자라는 말인데

북쪽 여자가 북방민족의 피가 섞였는지 희고 미끈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이 잘 생기고 예쁜 여자들을 좋아하는 경향을 내가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우리가 보기엔 평범하고 참하다고 생각한 여성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에 띌 정도의 미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친척중엔 미스코리아는 아니고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자와 결혼을 했을정도로.

요즘 같은 외모지상주의가 득세할 줄을 미리 아셨던 것이었을까?


살다 보면 불운과 행운이 교대로 오기도 하고 불운이 겹치기도 하고 행운이 계속되어 끝까지 꽃길만 걸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감당 못 할 시련이 와서 인생을 갈아엎는 사건이 일어나기지만 어쨌든 인생의 수레바퀴는 크던 작던 굴러가게 되어 있다.' Why me'와 'Why not me' 사이에서 몸부림치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이 저 멀리에 보인다.


그 옛날 부모 세대가 살아남으려고 관상을 보고 지방을 지며 예지력을 얻으려고 했던 몸짓이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렸다.

'vine ' 6초 만에 모든 걸 담아야 되는 클립은  청소년들이 아니면  따라가기 힘들정도로 빨라지고  앞으로는 로봇이 나와서 세상을 뒤집는 시기가 도래하는 판이다.

이전에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는 데자뷔 같은 과거의 일들은 이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선입견도 편견도 6초 만에 사라지는 세상이 오고 있는데 무슨 고색창연한 관상이란 말이며 지방색이란 말인가

이렇게 스피디한 세상에서는 차라리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다가 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양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우를 범하는 대신에 그저 너그러워지기만 해야할 것 같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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