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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Oct 22. 2021

사과의 시간

나에 대하여, 남에 대하여

이민을 처음 왔을 때 이민 선배들이 하는 조언이 있었는데 애매하고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sorry'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국식으로 기 잘못이 아닌데도 우선 말거리가 된 것에 대해 례적으로 하는 '미안하다'는 말이 서양에서는 나중에 법적인 다툼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말을 들으니 가뜩이나 낯선 외국에서 의기소침해 있는데 갑자기 기가 살아나고 어깨가 펴지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루는 대형매장인  Costco에 가서 고기를 샀는데 집에 와서 썰어보니 힘줄도 아닌 긴 기생충 같은 실이 끌려 나왔다.

바로 고기를 들고 매장으로 달려가서 보여 주니까 방으로 오라고 하더니 그 고기를

담당한 직원을 불렀다.

고기를 보여주며 뭐라 뭐라 하는데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에 그물망을 쓴 남자 직원이 난감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난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다가 환불을 받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 직원이 중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모습이 어른거려서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까짓 고기가 뭐라고.


캐나다 밴쿠버는 미국의 시애틀과 인접해 있어서 국경만 넘으면 하루길 여행코스로 최적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점심 먹고 쇼핑하고 오면 딱 맞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국경 근처에 아웃렛이 많아서 아이들 옷을 많이 사곤 했는데 우유도 캐나다보다 싸다고 사 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돌아올 때 저렴한 자동차 가스 넣는 것은 필수.

나의 쇼핑 최애 아이템은 구두인데, 지금이야 일을 안 하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그 당시에는 내 패션의 완성은 구두였다.

가성비가 높은 매장은 Norstrom rack이라는 중저가 아웃렛이 밴쿠버에 생기기 전이라 꼭 시애틀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캐나다로 들어올 때 세관에서 24시간 기준으로 세금 없이 가져올 물건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이것저것 지지하게 사도 금방 한도 초과이지 않는가. 그래서 한 번은 세금을 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저렴하면서도 필요한 구두를 사리라 마음먹고 버릴 신발을 신고 내려갔다.

마음에 드는 구두 한 켤레를 사서 매장 밖에 나와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비굴한 태도로 곁눈질을 하면서 신발의 가격표를 떼어냈다.

그리고 신고 왔던 신발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것도 아이들이 보는 코앞에서.


영악한 엄마들은 애들 헌 옷을 입혀갔다가 다 벗겨서 버리고 새 옷으로 싸악 갈아입혀서 오는 tip도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정보면 정보라고.


세관원이 얼마나 빠삭하게 다 아는데 말이다.

그러나 정보에 의하거나 무작위로 걸려서 손으로 저쪽 방향을 가르치면 그땐 차의 시트가 다 뜯길 각오를 해야 한다.

검사 장소에 주차된 차를 인정사정없이 들쑤시는데 차 트렁크 안의 스페어타이어 놓은 곳도 성치 않으며 시트는 다 발기발기 찢어 놓는다. 자수해서 영수증 보여주고 세금을 내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스웨덴에서 노르웨이로 오는 대형버스 안에서 마약견을 데리고 올라탄 경찰들에 의해 두 명의 젊은이들이 끌려 내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대형의 마약견이 내쪽으로 다가올 때의 쭈뼛거림 때문에 죄짓고는 못 살겠더라.

그 외에도 세관을 통과할 때나 경찰차가 뒤 따라올 때는 약간 몸이 경직이 되곤 한다.


 눈속임을 했던 엄마를 보던 사춘기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넘어서 지금도  돌이켜 보면  얼굴이 뜨끈뜨끈해진다.

특히 둘째 아들은 예민해서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고 엄마가 재혼을 하면 자기는 집을 나갈 거라고 했던 아이가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상상하면 더욱더.


살아오면서 행동을 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비양심적인 생각을 했던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실제로 겪었다. 장이 꼬이면서 배가 아픈데 딱 그 표현이 맞았다. 질투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시기심이 나에게 무슨 유익을 준단 말인가.

결국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자기가 누려야 할 것을 내가 아닌 남이 누리는 것에 대한 상실감 및 분노가 표출되는 것이리라. 마치 바람난 애인을 잡지 못한 미련이 미련함으로 변하듯이.


늘 웃으면서 남의 요청을 거절 못 하고 절하게 다 들어주고, 도와주고는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짜증내고 화를 내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를 나쁘다거나 사이코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예의 바르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부류이다. 그러나 그도 도움받고 기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직도 존재할까? 정서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완벽함으로 무장된 사람은 없다. 그렇게 가장할 뿐이지. 이상하게도 도움을 준 사람한테서 오해를 받고 서운함을 느껴서 깨어진 관계들이 많다. 아마 솔직하지 못하고

겉모습으로만 상대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도 나도 다 마찬가지로 나한테도 결함이 있고 상대방도 그러할 텐데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남을 도울 때 내 안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교만이 어우러져서 상대방을 조정하고자 하는 의식이 밑에 깔려있어서 그런 건 아닐는지.

그건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을 주는 것이다. 내가 도운 만큼 너도 나에게 해야 한다는 그것이 물질이든 마음이든.

다 아는데 마음이 그렇게 움직여 주지 않는걸 어떻게 하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대부분 남에게 잘하는 사람이 가족에겐 무관심하다. 모든 에너지를 밖에서 쏟으니 당연할 귀결이다. 오죽하면 코미디언들이 밖에서는 사람을 웃기지만 신은 집에서는 절대 안 웃는다는 말이 있으랴.


 노래의 가사에도 듯이 돈 고생한 사람들은 ' 돈이 눈물'이었고 돈을 물처럼 써도 자리가 안 나는 그런 풍족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생각,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조금만 살면 알게 된다.


그냥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만족하며 살기만 해도 심신이 편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큰일이다. 요즘은 주위에 은퇴를 해서 일 중독이나 일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편한 반면에 자녀들의 결혼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친구들이 많다. 아이들을 다 결혼시킨 사람들은 의기양양한데 반해서 둘 중의 하나가 결혼을 안 했거나 둘 다 안 한 집은

뭔가 주눅이 들어있다. 아버지는 그래도 담담한데 엄마는 큰 싸움에서 모든 걸 빼앗기고 돌아온 패잔병 같은 처절한 표정이다. 40세가 넘은 딸이 늘씬하던 키가 좀 줄어든 것 같고 금방 갱년기 될 텐데 어떻게 하냐고 하고 아들은 곧   50세가 된다고 한숨으로 대화를 시작했다가 나중엔 다 포기했다면서 결혼은 케케묵은 관습이다, 요즘은 굳이 그럴 필요거 없다,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거지 하면서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는다. 약간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할 정도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자기 일생에 자녀들이 결혼 안 할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해 봤다고 부언을 하면서.


걱정 없는 사람도 없고 불안하지 않은 미래도 없다. 불안하지 않으면 그건 미래가 아니이미 사라져 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일 뿐. 다들 한 두 가지 돌덩이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니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냐 조약돌이냐도 자기에게 달려있으므로.


부디 나에게 잘 해준 사람이나 내가 도움을 준 사람에게 너그러워지며 그래서 sorry를 남발해도 괜찮은 관계가 되어야지


주말에 아이들을 만나면 옛날에 엄마가 시애틀에서 헌 신발 신고 가서 버리고 새 신발 신고 오던 거 기억하냐고 물어봐야겠다. 40세가 넘은 아들들이 '이 엄마가 무슨 소리하시는 건지' 하고 멀뚱하게 쳐다보면, 너무 오래된 이야기를 끄집어낸 쪼잔한  나도 사과 대신에 얼버무리며 그냥 넘어가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아직도 부끄럽다.

그런데  간이 적어서 용맹스럽지가 못한 사람이 사과를 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나같이 아는 척 잘난 척 선한 척하기 좋아하면서도 속은 물렁하고 인내심이라 1도 없는 성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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