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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Jan 21. 2022

세상은 넓고 그릇도 많더라

빈티지가 빈티 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새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수리를 한다 해도 부분적으로는 하지 않고 다 때려 부수고 올 수리를 하곤 한다.

집을 사서 금방 이사를 가지 않고 한 달 이상 빈 집을 고친 적도 있다. 이사가 급해서 연식이 있는 건물에 바로 입주를 하게 될 경우에는 살림살이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콘센트 커버부터 방문 손잡이까지 싹 교체를 하고 나서야 흐뭇해하는 성격이다.

쓸고 닦는 남편과 정리에 소질이 있는 나의 조합에다 새것을 선호하는 집안에 맥락 없이 빈티지 그릇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로 영국산과 독일산이 많고 루마니아, 폴란드, 아일랜드, 체코, 일본 제품이 많이 돌아다니는 캐나다에서.  합병의 합병을 거듭한 로열 덜튼이나 프랑스가 자랑하는 리모쥬 지방에서 빚은 그릇들에다가 핸드페인팅으로 섬세한 꽃들을 그려 넣은 장인들의 작품도 가끔씩 눈에 띄고.

영국 식기 회사들이 중국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시기에는 용무늬와 중국성, 정자, 소나무등의 무늬를 그려 넣었더군. 세상이 인도를 부를 시기에는 울긋불긋한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을 연상시키는 원색 그래픽 문양의 접시들이 유행했었다. 영원불멸의 꽃무늬 패턴이 꾸준히 유행하고 있는데 크고 화려한 꽃이 폭발하듯 뒤덮이거나 잔잔한 데이지와 산딸기가 수 놓인 제품들이 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영국산은 여왕의 식탁에 오르는 영광을 지닌'퀸스'나 '로열' '크라운'등을 넣어야 행세를 하나보다.

중국풍의 고전적인 소형접시

몇 만개의 그릇들을 소장한 사람들과

풀세트가 고조할머니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서양의 그릇 애호가들조차도 다음 세대가 과연 나의 애장품을 소유할 것인지는 의문일 것이다. 시어머니가 죽으면 시어머니가 사자어금니처럼 아끼던 그릇들을 며느리들이 절대로 물려 쓰지 않고 꿍얼거리면서 쓰레기 통에 버린다나.

그런 말을 들으면 그릇을 모을 생각도, 남겨줄 생각도 안 하게 된다.

며느리나 딸들이 맞벌이 세대가 되면서 식기도 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도 튼튼하고 질겨서 30년은 거뜬히 쓰고도 아직도 내 또래의 아주머니들 부엌에서 전을 부칠때에 밀가루를 담는, 파란 꽃무늬가 삥 둘러있는 접시를 비롯해서 추억의 코렐 제품이 혼수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신혼부부들이 포트 메리온이나 비 같은 실용적인 그릇들을 선호하는 판에 금박이나 금 테두리로 무장해서 식기 세척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지도 못하는 왕실의 고귀한 그릇들을 무엇하러 고이 모셔 두겠는가.


나의 최애  I KEA  빈티지  midsommar

나에겐 별로인 엄마 세대의 애정 템인 Royal albert의 황실장미


나처럼 오래된 것을 쓰기 싫어하고 산뜻한 새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빈티지 마니아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리 은은하고 우아하면서 사랑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해도 다루기 힘들고 깨지면 낭패인 그릇들임에서랴.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잘 모으는 친구의 집엔 놀러 가려해도 나는 초대하지 않는다.  볼 거라고 지레짐작을 하면서.

우리 집은 60대 신혼부부 집 같다나 뭐라나.

그런 미니멀 라이프를 표방하는 내가 빈티지나 앤틱 제품에 눈이 돌아갔다 해도 천성이 물건을 끌어안고 저장하는 개미 같은 성이 없는 나에겐 지나가는 바람일 뿐.

맘에 들어서 산 물건도 친구들이 와서 보고 예쁘다고 하면 명절에 떡 돌리듯 다 골고루 줘 버리고 만다. 그런 나와 다르게 수집하고 다듬고 꿰매서 고이 모셔두며 매일 조상님 사진 보듯 그윽한 눈으로 애정 하는 사람만이 무언가를 소장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하학적이며 정확한 무늬와 꽃에는 그다지 섬세하지 못 한 독일산 디저트 접시

닮은 듯 비슷한  패턴의 물결무늬 접시

식기 세척기에 들어가는 fine bone china

같은 케이크, 다른 접시


사람이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모하면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뛰며 얼굴에 생기가 돈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거울을 자주 보게 된다는데. 아름다운 그릇을 본다고 그런 증세도 없고 이젠 손이 건조해져서 그릇도 자주 떨어뜨리고 깨뜨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는 이즈음에 그런 욕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웃긴다. 친구들도 오크나 체리목으로 만든 웅장한 그릇장에 가득 찬 그릇들을 서로 가져간다는 딸들 때문에 흐뭇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해야 가져갈 텐데 서서히 비혼 주의자로 변해가니 그 큰 그릇장이 거실의 컴컴한 한 구석에서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고 푸념을 한다.

최근 이사를 한 친구의 제거 품목 1위가 그릇장이었다. 그 안에 가득 들어있던 시어머니의 노리다께 12인조 그릇을 비롯해서 자매들 사이에서 쟁탈전을 벌이면서 탈취해 온, 금은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그릇까지 몽땅 박스에 처박혀있다고.


빈티지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이베이 탐구생활을 하거나 앤틱 마켓을 헤매거나

한 것에 열심이지 않은 나에겐 맞지 않는 취미인 듯.

이젠 발품 대신 침침한 눈으로 품을 팔면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는 일은 더욱더 못 하겠다.


깨져도 아깝지 않고 실용적인 그릇이나 약간 갖고 있다가 물려주지 말고 다 버려야지.

무슨 왕후나 된다고 끼고 있다가 귀한 물품들과 함께 순장될 일이 있냐고.

막 써도 예쁜 그릇들

빌보 빈티지의 백 스탬프도 다르네

영국 도자기와 팽팽한 자존심 싸움을 한다는 리모쥬 지방의 접시


모으는데 소질이 없는 내가 생각해도 빈티지 그릇에 대한 관심도 잠시 스쳐가는 열풍인 것을 진작에 알고 있으니

이미 있는 물건들이나 잘 쓰고 가자.

사람은 있을 때 잘하고.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랑 늦바람이 무섭다는데 이거 혹시 중독되어서 가산 탕진 템이 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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