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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Aug 26. 2022

그레이스 켈리도 가고 어차피 헤어질걸

결심까진 안 해도 돼

내가 늙은 고아가 된지도 벌써 12년이 되었다. 병원이 아닌 자신의 침대에서 주무시다가 79세에 돌아가신 모친.

나는 그 당시 터키에 있었고 동생의 급박한 목소리로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다'라는 전화를 받고 처음엔 '에이, 우리의 불사조 박 여사께서 그렇게 쉽게 가실리가' 하며 느긋해 있었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는 외국에 사는 자식들이 불효 막심하게 된다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미 돌아가셨단다. 불효녀가 할 일은 제일 빠른 비행기표를 구하는 이외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아파트에서 혼자 깔끔, 꼿꼿하게 사셨는데 새벽 5시에 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숨 쉬기가 힘들다는 한 마디 하시곤 전화가 끊어졌다고.

웬만하면 전화를 안 하시는 성격에 새벽 전화는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고 직감한 가족들의 황망함이란.

가족들이 아파트 정문에서 인터폰을 해도 현관문을 못 열어주니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새벽에 아파트 매니저에게 연락을 해서 문을 따고 부랴부랴 올라가 보니 이미 숨을 거두신 상태. 그러지 않아도 바로 얼마 전에 자 사시던 친구 할머니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서 돌아가신 지 며칠 만에 발견된 일이 있어서  혼자 사시는 노인이 계신 가정의 자녀들은 항상 노심초사했었다. 동생이 황망하고 놀란 가슴을 부여  와중에 숨을 거둔 모친을 보니 그 얼굴이 어찌나 환하고 예쁘시던지  ' 왕년에 후암동 그레이스 켈리'라는 말이 순간 생각났다면서 언니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봤었더라면 마음이 편했을 거라고 했다.



50년 당뇨에 고혈압, 불면증의 삼중고에 시달리셨지만 병원 기록엔 자연사라고 적혀있었다.

당뇨 발병 이후 꽁보리밥과 하루에 팔뚝만 한 오이 한 개, 우유 세 컵은 기본으로 식이요법을 철저히 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당뇨약 한 알, 인슐린 한번 안 맞으시고 당뇨 조절을 하신 투철한 분이셨다. 옛날 퍼모스트 우유로 시작해서 네모난 우유팩들이 냉장고 옆에 나란히 쌓여있던 것이 생각난다. 그렇게 우유를 장복해서인지 일생 골다공증이나 무릎, 허리 통증 없이 씽씽 잘 걸어 다니셨다. 그러다가도 우리가 먹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으셔서 한 젓가락 드시곤 거친 보리밥만 드시던 입맛에 라면발이 '명주 고름'같이 부드럽다고 하셨다.


자신에겐 철저한 검약이 몸에 배고 자녀들에겐 말도 떨어지기 전엔 대령했던 희생의 아이콘. 그러나 우리 딸들은 만족이나 감사 대신 오버라고 쓰고 극성이라며

삐쭉거리며 이기적 인자를 강화시키며 자랐다.


물설고 낯선 캐나다에 딸 둘이 있다는 죄로 이민 오셔서 11년 사셨다.

한 번은  늙은 딸이 아프다고 돼지고기 삶은 것(한창 팔체질 한의학열광 중이셨음)을 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새로 이사한 우리 집 주소를 들고 오셨다. 돼지 냄새를 싫어하는 나의 체질에 하필 그것이 보약이었다네.

아파트와 달리 서양 집들이 다 고만고만 비슷한 집이라 못 찾고 헤매셨는데.

서양의 주택가에는 사람이 거의 안 다니니 음식 보따리를 들고 뱅글뱅글 돌다 보면 그 자리였는데 어떤 젊은이가 데려다주었다고 얼굴이 핼쑥하셔서 들어오신 일도 있었다. 그래도 워낙 명랑에다 무한 긍정이셔서 딸인 내가  부르다고 틱틱거리며 좀 있다 먹는다는데도 손자도 있는 늙은 딸의 입에 

금방 해산한 딸 산구완 하시듯  억지로 고기 한 덩이를 먹이고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 전날 노인들 야유회에서 좀 피곤하다고 하셨다는데  자녀에겐 마지막 힘을 다해 알리시고는 평소 기도 제목처럼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일생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살아내신 모친을 보면서 마지막 인사는커녕

평소의 무덤덤하고 살갑지 못한 나의 본모습 모자라 머나먼 터키에서 날아와서 겨우 장례식만 참석했다. 장례식장에도 나의 모친을 잘 아는 친구들은 ' 스타처럼 사시다가 스타처럼 가셨다'라고.

친구들이 왜 스타라고 했는지는 몰랐지만 암튼 스타도 가고 스타 할머니도 가는구나를 알았다.


서양 장례식장에는 관을 반쯤 어두고 뷰잉을 하고 고인을 기리면서 추억의 슬라이드 쇼를 한다.

 한국의 장례문화만 보다가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목사님이 사회를 보는 연단  바로 밑에 안치된 고인의 모습을 처음 봐서인지 당황하고 산만한 사회로 순서를 빼먹으며 간신히 마쳤다.


한복을 곱게 입고 주무시듯이 누워계시던 그 모습.

장례식장의 서양 직원들이 한복 사용을 몰라서 저고리 옷고름을 리본 모양으로 매어 놓았다.

옷고름을 풀고 다시 매는데 닿은 고인의 가슴은 말캉한 살이 아니고 마치 습기가 다 빠진  딱딱한 겨울나무 등걸 같았다.

이미 생명이 떠난 무기체로서 누워있던 그 모습에 나는 비로소 세상이 두쪽으로 나뉘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너졌다.

세상을 떠남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과 헤어짐이 어떤 것인지, 인생은 확실히 유한하다는 것을 내 손 밑의 감촉이 절절히 말해주고 있었다.


장례절차에서 관 뚜껑을 열어놓고 예식을 하기 위한 준비로서 시신의 양쪽 겨드랑이를 절개해서 배큠으로 내장 기관을 빼 내고 부패 방지 약품을 특수 섬유에 적셔서 넣어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생긴 루머가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시신 속에  마약을 넣어서 운반하기 위해 장의사업을 장악했다고.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실제로 캐나다의 장례식장 비즈니스는 이탈리아인들이 많이 하고 있다.


또한 고인의 얼굴 메이크 업도 장례 준비의 한 과정이다.

동양인들의 얼굴형에 익숙지 않은 서양 분장사들의 시신 화장술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다. 눈썹도 회오리 모양으로 진하게 그리거나 입술도 크고 강한 색깔로 하곤 해서 고인의 얼굴과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 연출되곤 하더라.

실제로 어떤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퍼하는데 동양인이 적은 도시의 분장사가 동양인의 시신 화장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인지  동양 아버지가 괴상한 화장을 한 채 서양 사람으로 변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울음이 뚝, 덜 슬퍼졌다나.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것 같이 생소해서.

모친이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꽃, 튤립



 죽음으로 가족이 헤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임과 동시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이다.

죽는 날과 시는 모른다 하더라도.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자녀뿐만 아니라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이 땅에서 사라지는 한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서양의 장례식은 작별의 슬픔을 나누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엄숙함을 준다. 고인의 가족 친지가 나와서 고인 생전에 있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장례식엔 차편이 없거나 걷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는 친지나 친구가 수두룩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장례식에 오냐 하면 아들들의 친구들이 올 텐데 대부분  서양 사람들이고 우리를 알지도 못하고 얼굴도 모르는데 추억은커녕  와 준들 그들의 시간만 뺏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리를 위한 장례식은

절대 하지 말고

화장을 해서 록키산맥에 뿌려달라고 했다. 록키까지는 아니고 집 뒷마당에 물가가 있으니 거기에 뿌려서 흘려보내든가. 화장 비용 700불 외엔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캐나다에서 운전면허증 만들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 장기 기증을 하겠다는 조항이 있었다.

장례식도 하지 말라는 부탁이 과격한 것 같아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것일 뿐 장기기증처럼 대단한 희생도 못 되는 걸.


좀 있으면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못 걷고 음식도 소화가 안 되어서 먹지를 못 하니 기운이 없을 때가 온다. 마치  밥물이 잦아들듯이  모든 것이 쪼그라지면서 마른 나뭇잎처럼 될 것이다.

요즘이야 눈이 안 보이면 백내장 수술로 개안이 되고 이가 없으면 임플란트 하면 되니 잇몸으로 산다는 게 옛말이 되어버렸다 해도 늙음은 1초의 지체함미안함도 없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다가오고 있다.


빈자나 부자나 한 번 사는 인생이요, 그래서 더욱 죽음 앞에선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호기롭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나처럼 모친과 대책 없이 헤어지는 경우도 생기면서.


 나의 아이들, 친지들과 언젠가 헤어질 때

큰 슬픔이나 아픔 없이 특히 민폐 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연습도 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결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준비를 해 보는데. 글쎄.....


흙으로 돌아 재를 이곳에 뿌려달라는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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