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강 Sep 14. 2022

터키에서 건물 수리하기

터키 건축업자들과 6층 건물을 털어내다

터키에서 살았던 6년 내내, 아니 수리하고 오픈하는 준비기간을 뺀 나머지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 일이 있다. 물론 밥하고 설거지하고 장보는 일이야 당연히 주부로써 하는 일이니 빼고.

오픈한 비즈니스가 영어학원이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약간씩 했고.


그 일은 바로 화장실 청소.


이스탄불에 처음 가서 고속버스로 6시간 걸리는 앙카라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갔었다.

중간중간 휴게실에서 쉴 때 화장실을 가면 화려한 아랍풍 문양이 요란한 타일과 진한 자주색 페인트가 생소하고 확실히 딴 나라에 있구나를 실감했다. 동시에 나는 마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서 끌려 온 인질처럼 쭈빗쭈빗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의외로 깨끗하고 나름 괜찮았는데 변기가 몇십 년 전 한국의 푸세식에서 요즘의 수세식으로 바뀌기 중간 상태의 좌식 변기였다. 더 놀란 것은 천장에 물통이 있으면 그만인데 구석에 물 바가지가 있었다. 사용후 손을 씻으라는. 오른손은 절대 사용불가.


학원이라는 학생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화장실 사용이 빈번하고 그래서 저녁이 되면 지린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 번만 청소를 하느라고  끝날 시간이 되어서 들어가면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들과 바닥에 흥건한 물이 고여있곤 해서 엉망진창이니 아이들이 들어갔다 나오면 수시로 청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원 인가를 터키 교육부로 받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거의 책 한 권이었다. 그리고 책상 행정 또한 우리나라 60~70년대처럼 느리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결국은 어찌어찌 되더라.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류 결재를 위해서 이 책상에서 바로 옆 책상으로 넘어가는데 기름을 칠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외국인한테는 무한계.


그 요건 중에 비상계단 설치(실내에 없으면 외부에라도)나 교실 크기, 한 교실 내 학생 정원등 수도 없이 많은 가운데 반드시 차를 끓이고 청소를 하는 사환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현대 자동차 공장이 터키에 공장을 지을 때 부지를 구입해야 하는데 요지의 땅 주인이 현대에게 땅을 팔게 되면  그 동네 주민들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땅을 판다고 했다나.

아, 눈물 나도록 인정이 넘치는 씨족 사회여.


우리도 건물주인 '예티쉬'씨의 소개 반 강제 반으로 놀고 있는 그의 친척 아줌마가 잡일을 하게 되었다.

학부형 면담 시 차를 내오고 건물 청소를 후딱 하고는 어디에서 뭘 하는지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얼마 있다 그만두고 학원 오픈 후에는 그 조건에 꼭 부합하지도 않았는지 흐지부지 되었다. 터키의 특징 용두사미.

그러나 유독 돈 앞에서 끈질기기는 고래 힘줄처럼 질기더라.


그로부터  나의 화장실 청소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화장실 수리 후  타일 사이의 줄눈은 흰색이어야 하는데 어이없게 오렌지 색으로.

터키쉬 감각인가.


아파트  창문 밖을 내다보니 건축업자 '카야'씨의 차가 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10분 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캐나다에서 왔다고 북미 문화는  딱 시간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미리 와서도

올라오지 않고 10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이 사람 역시 건물주의 조카였다.


얼렁뚱땅 능구렁이처럼 가격이랑 기간이랑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며 계약을 끌어내더구먼. 남의 나라 낯선 동네, 헌병 부대가 떡 하니 코 앞에 있어서 안전하지만 살벌한 이스탄불의 외곽지역에서.

온통 히잡을 쓴 여자들과 콧수염 아저씨들, 하루에 5번씩 스피커로 퍼지는 '애잔'과 이슬람 동네 회당인 '자미'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챠이를 마시는 검붉은 얼굴색의 할아버지들. 낯설고 낯설더라.

젊은 나이의 배낭 여행자 감성이라면 신기하고 새로웠겠지만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아랍도 유럽도 아닌 묘한 나라에서 비즈니스라니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건물 수리를 시작했다.

아파트나 집수리를 하면 재밌다고 난 수리 체질이라고 입초사를 떨다가 6층 건물 수리를 통째로 맡았으니  어째 이런 일이.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터키 사람들과.

시내 버스정류장 앞의 건물

우리가 계약한 건물은 병원 건물이었다.

개인병원 치고는 규모가 큰.

지하 1층 지상 5층.

지하는 수리가 안 된 시멘트 공간으로  시체실 분위기가 나서 오싹했다.

1층은 로비와  사무실로, 2,3,4층은 교실

5층은 카페테리아로 꾸몄다.

구조변경을 하려고 벽을 헐고 새로 벽을 쌓을 때나 작은 방 두 개를 털어서 큰 도서실 공간으로 만든다든가 하면서  곤란했던 것은

바닥면의 높이가 달라서 애매한 것, 기존의 타일은 벽을 따라가다 보면 타일 크기가 달라져있던 것 등 이상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건물의 기본인 수평이 맞지 않으면서도 지어져서 건재하고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했다. 1999년 대지진의 참사도 연상이 되면서 아찔함과 더불어.

시체실을 연상시키던 지하를 회의실로


4개월에 걸친 공사와 진전 상황을 보면서

대충대충 그러나 돈은 빨리 받아내려는, 그러면서도 인정은  많아서 마음에 안 들어서 고쳐달라 하면 '타맘 타맘( OK)'하면서 선선히 해 주던 사람들. 5층 카페테리아 공사 중에 옥상에서 작업자들이  닭고기를 구워 먹으며 나에게도 구운 닭날개를 주는데 털도 뽑지 않아 털이 숭숭 난 닭고기를 털이 새까맣게 난 팔의 터키 아저씨가 내민 구운 고기를  결코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야성적인 면이 있는 사람들과 터키어 100 단어로 수리를 했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임시로 얻은 아파트에서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사 개월 동안 오가며 수리를 한 결과는 완전 터키 스타일이었다. 소개 소개로 수리, 집기, 간판 등등하느라고 했지만 어설프고 생소하고 그저 힘만 들었다.


차 안에서 아침으로 먹은 깨 빵인 '시밋'만도 몇 광주리를 될 것이다.

점심때가 되어 작업자들이 그들 특유의 양고기 체취와 땀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나간 후에 상황을 둘러보면 대충 얽어 맨 느낌과 '챠이' 마시는 시간이 늘어졌음을 알 정도로 진전이 없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라이선스를 받을 시간이 촉박하다 하면 어찌 그리 날랜지 후딱 마무리하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6층을  털어내고 구조변경 및 인테리어까지 마친 날, 너무 힘들어서 자축은커녕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터키 교육부에서 관리들이 나와서 트집 잡지 않고 학원 인가를 잘 내주기만 바랐을 뿐.

하루 종일 살다시피 하며 우리 변호사와 미팅 끝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서류를 찾으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는데.

그러나 터키에서의 비즈니스는 건물 수리는 정말 누워서 떡먹기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건물과 라이선스만 확보하면 그다음은 탄탄대로일 줄  알았던 것이 망상이라는 현실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학원 앞의 '잔 다르마(헌병대)'의 헌병들이 수리하는 중에 들여다보면서 자기네들도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50명은 올 거라고.

또한 미국에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필요한 학원이라고 찬사.

미국 유학을 위한 SAT가 주종목이었으니까.

히잡 아줌마들도 초등 아이들 손 잡고 와서 얘네들 꼭 보내고 싶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자고로 비즈니스란 좋은 콘텐츠와 로케이션, 실력 있는 스태프들로 시장에 들어가도 헤쳐 나가야 될 사안과 불굴의 의지 플러스 알파,베타, 감마 등등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불가항력의 무언가가 있다.

막상 학원을 오픈하고 보니 별 진기 명기 다 펼치는 학부모와 선생들, 학생, 직원들로 인해 울다가도 웃고, 보람과 자괴감으로 점철된 나날들이 펼쳐졌다.


힘들었던 건물 수리기간이 그 이후에 펼쳐진 나날들에 비해서 완전 대박 꽃길이었다는.

교실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은 지금쯤은 무엇하고 있을까 


시름을 잊기 위해 자주 먹었던 쫄깃한 터키 아이스크림




작가의 이전글 그레이스 켈리도 가고 어차피 헤어질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