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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y 17. 2022

살림에 대하여

빵나무 하나면 만사형통

한국 마켓, 서양 슈퍼에서 장을 잔뜩 봐서  차 트렁크에 싣고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하고 집으로 온다. 이유는 장 본 것을 냉장고에 넣기 전에 그 안을 싹 비우고 청소할 생각을 하니 즐거워서이다. 깨끗이 청소되고 정리된 내부에다 장 본 것을 착착 넣을 생각 하니까.

김밥 애호가나는 다 말은 김밥을 슥슥 썰어서 단무지를 안 넣는 대신에 김치랑  커피랑 먹는 그 맛 때문에 더 렌다.

냉장고 청소할 생각에 들뜨고 손이 많이 가는 김밥 만들기에 설레는 나를 변태 아니냐는 친구의 비아냥을 들어가며 살림하는 나는 진정 변태인가? 아닌가?


살림의 여왕이라 하기엔 어설프다가도 이상한 데 가서는 어마어마하게 열성인 나.

옛날에 처첩 제도가 암암리에 있던 시대에 본처는 남편의 탕약을 불 곁에서 지켜가며 정성껏 끓이는데 반해서 첩은 약탕기를 불에 올려놓은 채 딴짓을 하다가 약이 다 졸아서 탈 지경이 되면 물을 슬쩍 붓거나 너무 물이 많을 때는 대충 따라 버리기도 했단다.

나도 음식 할 때 대충 조절을 하는  파에 속한다만.

수도꼭지도 아래 위로 개폐가 되는 것이라면 위로 올려서 본체와 꼭지 사이에 끼어있는 때를 닦아내야 속이 시원하다. 그 사이에 물이 계속 쏟아져서 물 낭비는 될지언정.

게다가 전등 스위치도 똑딱 거리는 아래 윗부분도 정기적으로 면봉에 비눗물 묻혀서 닦아주고.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결벽증으로 인해서 비누도 씻어서 쓴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서 일이 더 많아졌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딱 맞다.  은행을 가거나 쇼핑몰에 가서 계산을 할 때 컴퓨터 모니터 뒷면에 있게 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먼지의 양은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도 모니터 화면 전면에 앉은 사람은 그쪽에만 신경 쓰지 고객 쪽의 뒷면은 상관도 않으니 먼지가 한 움큼 쌓여 있어도 모른다.

가방에 항상 항균 물티슈가 있으니 그곳의 뽀얀 먼지를 닦아 주고 싶으나

꼰대 + 오지라퍼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는다.

집 밖은 둘째치고 집의 컴퓨터 책상 앞에 놓인 회전의자를 보자. 의자도 패션이 있어서 매쉬로 되었다가 등받이 줄기가 두 개에서 세 개로 됐다가 유행이 요란하다. 그런데 그 칸칸과 바퀴 달린 다리 부분도 정기적으로 닦아주지 않으면 먼지가 뽀얗게 앉아서 볼 수가 없다.

자기가 사용하는 모니터의 뒷면과 의자 밑동을 가끔씩 보기 바란다.

      장식품이 된 항아리와 빨래판


요즘이야 고추장, 된장을 담가 먹기보다는 사서 먹는 세상이다. 빨래는 세탁기에 건조는 건조기에. 빨래판에 문질러서 깨끗이 빨은 이불 홑청이나 속옷이 뒷마당 빨랫줄에서 보송보송하게 말라가던 나른한 오후.

철 모르던 시절에 커튼 같은 옥양목 천 사이로 뛰어다녔다.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끈하고도, 먼지가 빨려나간 옷들과 타월에서 나는 메마른 화학적인 향과는 다르게 그 옛날의 빨래에서는 마른 천의 거친 감촉과 그 올에 배어있던  어른들의 살 냄새가 들큰하게 풍겨왔던가.

암튼 여왕 같은 태양화려함과 콜라보되었던 여름 빨래의 기억도 이젠 흔적을 찾을 수 없어서 낯선 서글픔에 잠긴다.


무엇을 먹어도 하루에 밥 한 끼는 먹어야 되듯이 무엇을 해도 다 받아주고 내 말을 경청해 주고 항상 편을 들어주는 남편은 밥이다.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며 핀잔받는 밥상에서 처럼 어떤 때는 흐뭇하고 또 한편으로는 밀어내고 싶은  자녀들을 볼 때

결국 편애도 편식처럼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편애라는 뜻이 반드시 부모가 자녀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잔소리를 싫어하는 딸이 아빠보다는 엄마를 좋아하는 등 자녀도 부모에 대한 호 불호가 존재한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어우러져야 하고 고우나 미우나 찰떡처럼 붙어서, 진저리가 나도 밥과 반찬의 숙명처럼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살림도 마찬가지이다. 유튜브를 통해서나 이웃을 통해서 알게 된 상식들 중에 이 연세(?)가 되도록 모르는 것이 많아서 깜짝깜짝 놀란다.  인생살이도 살림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는다고 다 알 수 없고 오히려 점점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릴 때 시험 보고 다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엉망이고 많이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점수가 잘 나왔을 때의 어긋난 예측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서 일탈을  꿈꾸고 행해본들 다시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야채를 씻는다. 드라마에서 보면 친정엄마가 딸네 집에 반찬을 가져다주려고 만드는 나물 중에 시금치가 많이 등장한다. 시금치 한 단을 데쳐봐야 한 줌인데 드라마에선 도대체 몇 단을 쓴 것인지 무지 많더라.

비빔밥에 꽂혔을 때는 몇 날 며칠 나물만 해대고 당근케이크에 열심일 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마루타가 되어 당근과 베이킹 소다의 쌉쌀한 케이크를 질리도록 먹어주었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 때문에 집밥의 위대함을 깨닫는 동시에 지겨움 또한 알아버렸다.

그렇게 몇십 년 밥을 했으면 이제 눈을 감고도 할 경지에 이르지 않았냐라고 묻는 사람에게 왜 사냐고 되묻고 싶어 진다.

개연성 없는 질문이라 대답도 그렇게 하고 싶어질 뿐.


, 하와이에 가면 진짜 '빵나무'라는 이름의 나무에 빵이 열린다고 한다.

생긴 것도 잘 구운 빵과 비슷한 갈색 열매인데

그 열매를 따서 바비큐 하는 한쪽 구석에 던져 놓았다가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나면 꺼낸다고.

껍질을 벗기면 갓 구운 빵과 똑같은 뽀얀 색과 쫄깃한 질감이 너무 맛있다네.

그래서 노숙자들이 길거리에서 그 열매 하나 따서 신문지 뭉쳐서 불을 지펴 그 속에 넣어서 구워 먹으면 주식은 끝.

밥하기 싫을 때 그 나무에서 잘 익은 것 하나 따서 구워 먹었으면.

그런 유익을 주는  빵나무가 마당에 있다면  변덕 부리지 않고 주욱 사랑할 텐데.

     사랑스러운 빵나무와 그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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