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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Apr 25. 2022

비밀 이야기는 일본말로

하마터면 일본말을 잘할뻔했다

'다마네기랑 캬베쓰, 닌징 좀 사와라.

저녁에 스끼야끼 해 먹게.'

이쯤 되면 어릴 때 많이 듣던 식재료의 일본어인 것을 알 것이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 생활에 스며든 일제의 잔재 속에서 자꾸 듣다 보면 일본어를 쉽게 배울 줄 알았다. 어순도 같고 한자도 배운 세대라서 좀 될 줄 알았는데 한자도 읽으려면 '가타가나'를 알아야 하고 '히라까나'도 배워야 한다니 그건 아니다 싶었다.


 일본식 적산가옥의 내방에 있던 도꼬노마( 방바닥보다 약간 높게 벽면에 만든 단)에다 선반을 만들어 책꽂이를 만들었다. 소녀감성으로 한 단은 예쁜 커피잔들과 과자 접시 등을 놓기도 했고.

창가에는 서양식의 붙박이 의자처럼 의자 폭만큼의 '오시레'라는 벽장, 즉 수납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다듬이 돌과 빨래 방망이, 다리미, 바느질 광주리가 있었다.

앙증맞은 음각으로 된 동그란 손잡이의 미닫이 중에 가운데로 좍 열리는 데는 늘 쓰는 것들과 양쪽으로 갈수록 사용빈도가 낮은 것들로 꽉 차 있었다. 출장이 필요 없는 직업의 부친께서 첫 지방 여행 중 천안에서 사 오신 호두과자의 폭신하고 부드러운 맛에  홀려서 마구 먹으려는데 어디론가 박스 채 없어져서 찾아보니 벽장 구석에서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감격이라니.

 또한 의생활에서도 너무 웃기는 일본말이 있다. '새비로'를 통칭 남자 양복 한 벌을 말했었는데 영화 'kingsman'에서 명한 양복점들이 모여있는 'Saville row' 거리에서 나온 일본식 발음이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 외에는 절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식주 중에 하나라도 빠질 수 없는 물리적 삶의 필수요소를 주관하던 일제강점기의 시대를 거스를  수 없었던 부모와 그 윗 세대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정말 참기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미국보다 점잖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에너지가 적다고 해야 하나? 차별적인 요소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직업의 기회를 주지 않아서 허락된 금융업에 종사하다가 많은 유대인들이 거부가 된 예가 있다. 그것을 보면 지금 불운하다고 해서 끝까지 어둠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요즘 뜬 '파친코'라는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 살면서 겪어야 했던 숱한 역경,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없게 제도적 혹은 암묵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했던 사회.

그곳에서 허락된 몇몇 업종 중에 빠찡꼬 사업이 있었나 보다.

일본이 전시에 베어링을 많이 생산했다가 전후에 남아 돌아다니는 쇠구슬을 사용하려고 빠찡꼬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서양의 '슬롯머신'과는 다르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 거리를 지나다 보면 웬 오락실이 골목마다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아사히'맥주와 빠찡코는 여자나 남자나 약간의 심심풀이로 즐기는 국민 오락으로 자리 잡았더라.  깎은듯한 역삼각형 밥공기의 소량의 밥은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듯 조금 먹으면서 맥주는 벌컥벌컥 마시더라. 배고픔을 맥주로 채우려듯이.


고객만족과 운영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고객은 그냥 즐기면 되니까.

반면에 그 직종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분류가  있다고나 할까? 아무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해도. 유복한 가정의 엄마가 거지를 데려다가 밥을 먹이면서 자녀들에게 너네들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현장 실습을 시킨 몰상식한 일화도 있을 정도이니. 암암리에 깨끗하고 숭고하고 존경받는, 그 반대로 더럽고 유해하고  멸시받는 직업에 대한 관념이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결국 사회적인 직업군 분류가 인간의 등급이 된다는 이론이 '파친코' 소설에서 드러나듯이.


다른 나라의 침탈로 인해 학대와 차별을 받는 것도 서럽지만 같은 민족끼리 외모와 물질로 평가받는 사회 역시 또 다른 서러움을 유발한다.


한때는 외출복은 등산복, 피부는 물광이나 도자기, 백설기 피부여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다이어트 전략은 어떤가.

살 빼고 입는다고 작은 사이즈의 옷을 마구마구 사놓고 살을 뺏다고 치자.

누구나 다 알듯이 다이어터보다 더 힘든 것이 유지어터라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게 학습해서 알 것이다.

안 먹고 달리고 어지럼증에 시달리면 5킬로 정도까지는 뺄 수 있다. 그러나 풀떼기로 버티는데 한계가 와서 밥풀떼기를 좀 먹으면 저울에 오르기 전에 체중이 불은 것은 눈바디로 알고 있다. 무서워서 재는 것을 기피하다 보면 그 원수 같은 요요현상으로 가라는데로는 안가는  몸무게 숫자역주행에 절망하곤 한다.

그래서 작아진 옷들을 바라보며 다시 투지를 불태워보지만 글쎄.

 한번 몸무게가 빠지면 영원할 줄 알고 콧노래를 부르며 샀던 옷들을 중고 거래에 내놓고 다시 낙낙한 옷을 사고.

그러다 보니 중고시장만 활황이라는.


타인의 시선이 내 철학이 되는 개연성 없음으로 인한  한쪽으로의 쏠림현상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경제를 일으킨 주요 원인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음을 지금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지만.


1932년 수학여행과 1954년 아침 조회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를 발현시키려 하다가 전범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손 털고 나간 후에 잿더미의 일본 땅에서 망연자실하였으나 다시 일어나는 역사를 썼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20년 등으로 일본 제품의 섬세함과 정교성이 이제는 더 이상 '와 와'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지경에 왔다.

일본은 기술엔 강했고 한국은 적용에 빠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지금의 디지털 세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부품 조달국으로.


'파친코'의 작가는  일제 강점기의 재일 한국인들이 겪는 고초를 통해서 어쩌면  전 세계에 퍼져 사는 동양인들이 그 본토에 사는 사람들에게 받는 직업적, 교육적, 사회적 불평등 및 차별을 우회적으로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침략국의 식민지에 대한 횡포만이 아닌.

미국과 캐나다에 살아본 나는 차별보다 더 마음이 상한 것은 너무나 친절하고 모르는 것을 세세히 가르쳐주던 일들이다.

드러내 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너는 내가 가르쳐주어야만 하는 대상이다'라는 호의 뒤에 숨어있는 오만함을 똑똑히 보았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그 느낌, 그 감정은 결국 당해본 자의 몫일 것이다.


일제 치하를 살아온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알면 안 되는 이야기를 일본어로 하시곤 했다. 그리고 그 시절이 더 청결하고 학교 교육도 규율이 엄격해서 학생들도 예의가 바르고 선생님과 어른들을 존경했다는 등

가 들으면 친일파라고 할까 봐 낮은 목소리로 말하시곤 했다. 모친의 어릴 때 이름은 ' 아이꼬'였다고. 그 시절의 아이꼬 입맛은 세월에도 지지 않아서  깔끔하고 맛깔스러웠던 일식을 좋아하다 돌아가셨다. 사람의 뇌는 얼마나 세뇌되기 쉬운지 또 얼마나 잊지 못하는지.

그래서 인생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본다.

                          일본식 상차림


일제 강점기에 이북의 진남포에서 시댁에서 Ford회사 차량으로 운영하던 택시회사

이북 5 도청에서 보관하던 사료 사진을 돌려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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