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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17. 2022

잊혀진 전쟁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이라고 믿지 말고 일본은 일어난다

참전용사라 함은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을 일컫는다. 해외의 한국 공관에서는  한국전에 나가서 싸웠던 군인들을 위한 모임을 자주 한다. 캐나다에도 'Veterans Day'라고 해서 역전의 용사들이었던 분들을 위한 기념행사를 한다.

한국전이 끝난 지 70여 년이 되니 고령자들이 사망하는 등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캐나다인들 중에서도 한국전에 참전해서 한국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가진 분들도 많고.

내가 거주했던 터키에서는 터키군들이 한국에 가서 직접 전쟁에 참여해서 싸웠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한국인들을 피로 맺어진 형제의 나라라며 과장된 몸짓으로 반색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물건을 사라는 상인들도 있다.


베트남 전쟁은 몇 년을 끌면서 엎치락뒤치락, 아프간의 내전에서는 말이 종전이지 미군이 철수하면서도 오래도 질질 끌었다. 그에 비해 한국전은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나서 1953년에 끝났다.

대륙의 끝에 붙어 있는 지형이 뭐라고 그냥 평화롭게 살도록 놔둘 것이지 그렇게 못 살게

굴었는지. 그 당시 열강이란 국가들은 미국. 영국, 소련 등이며 세계의 전장에 늘 었다.


 가까스로 남의 나라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상흔이 남아있는 한국 땅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불과 5년도 안 되어서 진짜 전쟁터로 변했다.

무고한 국민들과 참전한 군인들이 죽어 나가고 곳곳이 초토화되었다.


나의 외가와 친가도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을 와서 부산에서 난민 생활을 했다.

피난 오던 길에 겪고 보았던 참상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렇게 비참한 한국전쟁은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난 다른 전쟁에 비해서 일명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부른다고.

나는 전후에 70년 이상 해결되지 않고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얼어버린 전쟁(frozen war)이라고 부르고 싶다.

무슨 일이든지 겪은 당사자는 뼈가 저린데 외부에서 보는 것은 그저 객관적일 뿐이므로.


미국에서는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제패할 야욕으로 일으킨 침략을 막으려는 전쟁을 '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대동아 전쟁'이라고 불렀다.

나의 시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동경 유학생이었다가 학도병으로 징병되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일본 군인으로 그 대동아 전쟁에 징집되었다고. 내선 일체라는 화합 정책과 황국 신민이라는 정체성의 강조와 함께.

일본이 패망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학업이고 뭐고 대혼란의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은행에 가서 잔고를 찾으려고 수정으로 만든 도장을 갖고 가려고 꺼내다가 그만 떨어뜨려 깨져 버려서 돈을 찾지도 못하고 몸만 일본에서 빠져나왔다는 웃지 못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시던 시아버지의 표정 또한 영혼 없는 딴 나라 사람 같았다.

영화로 만들었다면 이 부분은 공감이 안 되어서 편집했을지 모를 정도로 어이없는 장면이었는데.

통일이 되면 평안도 남포(진남포) 시부모님의 집을 찾아가 보라고 그려주신 약도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는지 말로 다 못한다.

미국의  구호 밀가루 포대에서 나온 밀가루로 수제비를 해 먹고 딱딱하게 굳은 분유 덩어리를 쪄서 먹고 퍽퍽하고 거친  옥수수 찐빵을 학교 급식으로 받아먹으며 자라던 세대는 이제 령화 시대에 진입하였다.

IMF라는 경제 전쟁과 코로나라는 세균 전쟁으로 기막힌 풍파를 겪었는데

이번엔 유럽에서  총과 탱크로 밀고 들어오는 물리적인 전쟁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하면 옛날에 크림반도 전쟁 중에 활약을 했던 백의의 천사 ' 나이팅게일' 위인전으로 기억되는 지형이라는 것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터키의 이스탄불에 살면서 북쪽에 흑해가 있고 바로 그 위가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Black Sea 즉 흑해 연안이 비옥해서인지 터키와 우크라이나 모두 곡창지대이다. 식량과 자원이 무기가 되었던 시대를 점점 벗어나서 고도의 기술로 승부하는 시대에 영토를 물리적으로 침공하고 서로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크림반도의 얄타 회담


누구의 발상인지 모르지만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말을 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 백신도 1차 2차 3차로 부르는데.

결국 3차 세계 대전도 일어날 거라는 예지력으로 지었다는 것 밖에는 안 된단 말인가.


2차 세계대전의 일부 결말도 일본에서의 원자폭탄 투하로 천황이 항복을 하면서 끝이 났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가면서 강점기 기간 중에 겪었던 일본인들의 근성을 알아챘사람들은 ' 일본은 반드시 일어난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러시아가 된 소련 하면 소련 군인들이 한국전에서나 미국의 첩보영화에서나 시계를 무척 좋아해서 옷소매를 걷어 올리면 팔 전체에 대 여섯 개의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한국산 초코파이가 러시안들의 생일상 단골일 정도로 인기라는데.


소설가 전광용의 ' 꺼삐딴 리' 즉 캡틴이라는 러시아 식 발음의 목인 소설에서 일제 치하와 소련군의 참전과 소련이 물러간 후에 미군의 영향력 하에서 갈팡질팡하던 한 시민의 약삭빠른 현실감각을 보여준다. 기회주의자라고만 폄하하기엔 조국의 미래가 험난했고 현실주의자라고 하기엔 세상이 난해했다.

그 소설의 주인공도 예측 불가한 미래에  머리를 쥐어짜서 배팅하는듯한 눈물겨우면서도 불안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소련을 믿고 살았던 그도  미국이 들어오자 소련에게 속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미국이 당시에 신사적이고

우호적으 한국 전후 복구를 도와준다 해도 어떤 속셈이 있는지  모르니 미국이라고 믿지 말라던 당부 같은.

마치 서동요처럼 내려오던 이 말들이  갑자기 생각나네.

도대체 주위에서 온통 침략만 하고 우리 민족은  당하기만 하니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자각에서였을까?

또한 톨스토이의 단편 중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 땅을 가져야 만족할까라는 질문이 동시에 떠 오르는 요즈음이다.


내가 속한 모임에 러시안 커플이 있는데 모임에 안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모임엔 러시안과 우크라이나 출신들이 같이 있는데 그들은 다 같이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란다고.

외교적이거나 정책적인 문제를 떠나서 서로 포격하고 민간인이나 군인들이 피 흘리는 것을 멈추기를 바랄 뿐이다.


캐나다에서도 수도인 오타와의 한 도로명을 '젤렌스키'로 바꾸자거나 특색 없는 캐나다 음식 중에서 대표 명물인 감자튀김 위에 진한 소스를 얹은 ' 푸틴'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그냥 '프라이'라고 부르는 등 소극적이나마

시민 저항을 하고 있다.

전직 군인들은 우크라이나로 출전한다는데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 총과 비자를 그 자리에서 준다는 소문도 떠 돈다.


돌아가신 양가 부모님들이 살아생전에 남북한이 통일이 되는 것을 보기를 학수고대하셨으나 못 보고 돌아가셨다.


 한반도 통일도 감감무소식인데 이젠 유럽에서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사는 것 자체가 총성 없는 전쟁인데 진짜가 나타났으니 할 말이 없네.

아들이 지원했던 캐나다 예비군 훈련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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