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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Feb 07. 2022

고마운 후추

신세경을 좋아하는 서양 며느리

한국 드라마 '초콜릿 '이나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보고 울었다고 하는 나의 서양 며느리 스테파니의 한국식 이름은 현숙.

남편이 현숙한 여인이 되라고 지어주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은 촌스럽다고 큭큭 웃다가 사귀어 보면 이름에 걸 맞는 캐릭터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의 희망사항도 현모양처라니 말이다.

 나보다도 더 보수적이며 자기 치장은 잘 안해도 아이들 세명을 위해서는 헌신을 한다.

 남편에게 순종적이면서도 의사는 정확히 밝히는 서양인. 이웃과 친구들의 어려움에 적극 나서는데 자기처럼 아이가 셋인 친구의 차가 작다고 그 집 아이들까지 축구 시합에 데리고 다니려고 큰 밴을 샀다나. 절대 선을 넘지 않고 개인 침해를 극혐 하는 매너, 그래서 어떤 때는 정이 없어 보이는. 차분하면서도 지혜로운 며느리가 강아지를 데려왔다.


나는 어렸을 때 큰 셰퍼드 종의 개에게 물린 이후로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개에게 물린 직후에 왜 그 개의 털을 잘라서 불에 그을려서 물린 상처에 붙여주는 응급처치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어떤 의학적 근거였을까?

그 털의 탄 노린내가 물린 곳보다 더 고약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가족 중에서 개를 싫어하는 딱 한 사람만 암컷이라고 하고 나머지는 다 girl이라고 한다.


서양 식당의 어디를 가든지 테이블 위에는 항상 'salt and pepper', 'olive oil and vinegar'이 있다.

고기를 많이 먹는 육식파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인 후추. 그것 때문에 소금과 함께 중세 유럽에서 전쟁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했는가. 결국 입으로 들어가는 것 때문에 탐욕의 끝을 보아야 했던 시대를 지나 요즘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흔하디 흔한 양념들이 되고 말았다.

후추, 소금과 튤립 같은 당시의 희소성과 필요에 따라서 매점매석을 해서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몇몇 아이템들의 피에 젖은 이야기가  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일꾼들의 월급이 후추 몇 알로 대치되고 후추가 없이는 음식을 못 먹는다던 귀족들의 편벽증은  다가 올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게걸스러웠던 것 같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큰 방죽도 바늘구멍 하나로 시작해서 터지듯이 일상에서 필요한 양념류나 차 같은 소소한 생필품으로 신경전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살육으로 치닫곤 했다. 모든 물품은 유럽으로 향하던 때에 다른 지역으로 가면 참지 못했던 유럽  전제 군주들의 자존심과 탐욕으로 뭉뚱그려진 귀족들의 허영심이 교집합을 이루면서 전쟁도 불사했던 것 같다.

어쨋든 후추가루 없이는 고기랑 떡국이랑 먹긴 힘들지.


그런데 하필이면  강아지 이름을 후추라고 지었을까?

며느리가 어릴 때 키웠던 순하고 귀여운 강아지가 그만 낯선 사람을 따라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리웠던 강아지의 이름인  '페퍼'로 지었다고 한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주인과 개가 닮은 것을 종종 본다.

곱슬머리 주인과 몸 전체가 곱슬거리는 털로 뒤덮힌 그런 종의 개, 날씬한 아가씨는 사슴처럼 긴 다리를 가진 개와 시원 시원하게 걸어간다. 키가 작고 통통한 아저씨는  배를 땅에 끌 정도로 납작한 그 종의 개둘 다 뒤뚱뒤뚱 느림보로 걸어가고.


강아지가 오고 아이들이 배변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는 등 바빠서 아이패드를 덜 본단다.

매일 당번을 정해서 학교에서 오자마자 페퍼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막내는 피곤하다든가 어제 자기가 했다는 등 핑계를 대서 형들이 많이 하곤 한다.

페퍼를 목욕시키는 것은 아빠 담당이라는데

집의 욕조에서 시키기도 하지만 'dog bath'라는 강아지 목욕탕이 있어서 가끔 그곳으로 데려간다.

집에서 하면 다 하고 몸을 털 때 사방에 물이 튀기도 하고 그곳에서는 뭔가 전문적으로 해주나 하고.

처음에 갔을 때 사방이 타일로 된 욕조로 포니테일을 한  청년이 비닐 앞치마를 입고 내를  하는데  건들건들해 보여서 개 목욕을 꼼꼼히 잘 시킬까 잠깐 의심.

아니나 다를까 욕조 및 샴푸 등 시설만 빌려줄 뿐 목욕은 주인이 시키는 거였다네.

개를 키우니 개 목욕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강아지 한 마리에 따른 용품도 어마어마하다.

비가 많은 밴쿠버에서 산책을 시키려면 장화도 필요하고 코스코에서 애들 간식과 소의 간으로 만든 강아지 간식까지 사느라 바쁘다.


며느리가 아들 셋 외에 딸을 낳고 싶어서 넷째를 생각해서 어찌 키우나 걱정부터 앞섰는데

페퍼를 딸처럼 생각하는지 '페퍼'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아이들 어릴때 부르던 코맹맹이 성이  한다.

페퍼도 얌전하고 영리하며 와서 착착 감긴다. 그래도 막내와는 서열 정리를 위해서 건드리면 짖으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코로나가 극성이었던 2020년에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하니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 재택근무와 집콕으로 인한 우울감과 할 일이 없어서 생긴 무료함 때문에 갑자기 강아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멕시코의 에이전시에는 주로 한국의 유기견이 많았다고 했는데 거기도 웨이팅이 길었다고. 그래서 개를 키워서 분양하는 다른 도시의 주인에게서 받아왔다.


어찌어찌해서 강아지가 아들네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지 않아도 자연과 가까운 캐나다에서 반려견을 통해서  경쟁사회와는 거리가 먼 자연인을 닮아가는

순박함이라니.


배우 신세경의 강아지 이름이 '후추'라고 해서 '페퍼'의 주인인 나의 서양 며느리가 신세경을 좋아한다면서 그녀의 드라마를 찾아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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