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하여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믿는다는 것.


사람을 믿는다는 것.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




시스템을 벗어나, 땅바닥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게 필요하다.

의지, 열정, 자본.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함께할 사람.


대기업에서 일할 땐, 사람을 믿고 말고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서로 간의 합의는 메일이란 증거로 남았고, 합의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땐 사규가,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한 회사의 시스템이 버티고 앉아 감시하는 든든함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의 역할만 다하면 됐고, 해야하는 일을 나와 같이 '알아서' 뽑혀 있는 동료에게 부탁하거나, 요청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의 시스템 밖에서 스타트업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 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갖춰진게 하나도 없다. 특히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게 참 힘든데,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하나가 터졌다.


지난 달부터 함께 일을 해보기로 하고, 며칠을 노력해서 규칙도 만들고 나의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앞으로의 미래도 함께 그려가자고 동기부여도 해가면서 '동반자'로 나 나름대로 동기부여를 지속적으로 했는데, 덜컥 오늘 아침에 연락이 안되더니 저녁이 되어 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함께 하기 힘들어요.

더 좋은 분 만나길 바라요.


건승을 빕니다.


흔히 이별 통보는 문자로 하는 거 아니라고 하던데, 연인 사이는 아닐지라도 함께 웃으며 꿈을 키워보자던 지난 주의 다짐이 무색한 블랙 메일.


그러곤 건승을 빈다는 그 분의 말에서 이 문구가 이렇게 허탈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 5분을 멍하게 있었다.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던 걸까? 돈? 가능성? 나?

이번엔 괜찮겠지, 이번엔 믿을 수 있겠지 했던 나의 마인드 컨트롤이 무색하게, 또 이렇게 원하지 않는 이별을 했다.


그래도 10분이 지나니, 다시 괜찮아졌다. 앞서 경험한 몇번의 이별이 알려준 나름의 노하우다.


그래, 차라리 떠날 사람은 지금 정리하는게 맞다.
가장 가진게 없을 때 함께할 사람을 찾아야지

지금은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털이지만,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다보면 가장 큰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당장 줄 수 있는게 얼마 없다보니, 삭막한 세상에선 생각보다 꿈과 희망으로만 버텨내는 게 쉽진 않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음이 남는다.

사람은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사람이란 무엇인가? (두둥)


아니, 음. 사실 다른 사람은 타인이니 내가 애초에 이해하는게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제 3자와 나의 관계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게 더 순리에 맞아 보인다.


그리고 또한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람의 머릿 속에서 지어졌다 허물어지기를 반복한다. 애초에 손에 붙잡듯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만, 내 생각대로 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허상일수도 있겠다.


어렴풋이 드는 생각은, 결국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

나를 믿고, 내가 만들어가는 비전을 믿으면, 결국 사람은 따라오게 될 것이다.


오늘도 아쉽고, 안타깝게도 인연 하나를 흘려 보낸다.


앞으로의 성공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떠나가기로 한 분께는 진심으로 행복한 미래를 그려가셨으면 좋겠다.

결국 인연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그래도, 메일 한 통으로 이별 통보는 아니지 않나?

갑자기 울컥.


여기서 오늘 글을 마친다.


2020년 6월 1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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